항목 ID | GC08500169 |
---|---|
한자 | 七星里 |
영어공식명칭 | Chilseong-ri |
이칭/별칭 | 성호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경근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칠성리는 영덕군 축산면의 북서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칠성1리와 칠성2리로 분리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는 칠성마을·진밭(陳田)마을·꽃밭[花田]마을 등이 있다.
[명칭 유래]
칠성리(七星里)에는 칠성사(七星寺)가 있다고 하여 칠성 또는 성호(星湖)라 칭하였다. 일설에는 칠봉산(七峰山) 아래 별이 달렸다고 하여 칠성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칠성1리 자연 마을인 칠성마을은 칠성리 동쪽 평야지에 자리하며, 1447년(세종 31) 안씨(安氏)라는 선비가 개척하였다. 칠성2리는 칠성지 동쪽에 자리하며, 진밭마을은 1623년(광해군 15) 영양남씨(英陽南氏)가 들어와서 망전(亡田)이라 하였는데, 1780년(정조 4)대 초반 전씨(田氏)라는 선비가 입주하여 마을을 개척하면서 니전(泥田)[진흙밭]이라 하였다. 그 후 다시 정씨(鄭氏)라는 선비가 들어와서 진밭(陳田) 또는 니전(泥田)이라 하였다. 꽃밭마을은 1760년(영조 36)대 초반 월성이씨(月城李氏)가 입주하여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이때 마을 앞에 작은 연못이 있어 연꽃이 무성하다고 하여 꽃밭이라 불렀다. 1992년 발행한 『영덕군 향토사』에 따르면, 한만화(韓晩化)라는 선비가 들어와서 마을 형상이 꽃봉오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꽃밭'이라고 불렀다는 기록도 있다.
[형성 및 변천]
1789년 간행된 『호구총수(戶口總數)』에 따르면, 칠성리는 조선 중기까지는 영해부(寧海府) 남면(南面)에 속하였다가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로 지방관제 개편 시 영해부가 영해군(寧海郡)이 되어 묘곡면(畝谷面)에 소속되었다. 1914년 4월 1일 일제 총독부령(總督府令) 제111호로 전국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화전동(花田洞)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축산면에 편입하였으며, 1945년 칠성1동과 칠성2동으로 분동하였다가 1988년 5월 1일 군조례(郡條例) 제972호로 '동(洞)'을 '리(里)'로 개칭할 때 칠성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칠성리는 대부분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서쪽에는 높이 약 350~450m 산지가, 동쪽에는 높이 약 150m 산지가 분포하며, 서쪽에서 동쪽으로 산지 높이가 점차 낮아진다. 서쪽 산지에서 발원한 조항천이 칠성지를 거쳐 동쪽으로 흘러 북쪽에서 발원한 대곡천을 합류하며 동로천으로 유입된다. 산지 소하천을 따라 곡저평야가 발달하고 칠성1리에서부터 조항천과 동로천이 만나는 지점까지 넓은 범람원이 형성되어 있다.
[현황]
칠성리의 2020년 말 면적은 5.07㎢이며, 2021년 5월 기준 총 68가구[칠성1리 23가구, 칠성2리 45가구]에 135명[남 70명, 여 65명][외국인 제외]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으로는 부곡리, 서쪽으로는 조항리, 남쪽으로는 기암리·대곡리, 북쪽으로는 영해면 묘곡리와 면계(面界)를 이루고 있다. 마을은 남북으로 산지가 감싸고 있어 동서로 길게 뻗은 형태이다. 마을 서쪽으로는 칠성저수지가 있으며, 마을 동쪽 입구에서 시작되는 칠성길이 마을을 관통한다. 칠성길을 따라 평야가 형성되어 있어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문화유적으로는 남신명(南愼明)의 서거지소(棲居之所)인 이매당(二梅堂), 영양남씨(英陽南氏) 재실인 화재(花齋) 및 육영루(毓英樓)[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진밭에 있는 정자인 사인정(思仁亭) 등이 있다. 과실류인 사과·배·복숭아 등과 특용작물인 참깨·들깨 등을 재배하고, 경제작물인 시금치·토마토·파·양파·고추 등을 점차 확대하는 추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