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4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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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江坡軒正寢 |
분야 |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5길 38[인량리 42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찬영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학자 권상임이 지은 고택.
[개설]
강파헌정침은 권상임(權尙任)[1622~1700]의 살림집이다. 권상임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사중(士重), 호는 강파(江坡)이며, 인량리에서 출생하였다. 1669년(현종 10)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나, 어머니의 상을 당하여 집으로 돌아와 시묘살이를 하였다. 관직에 복귀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는데, 특히 고성현감 등 목민관으로서 평생 자신을 수양하고 백성에게 선정을 베풀었다. 문집으로 『강파문집(江坡文集)』이 전한다.
[위치]
강파헌정침은 인량리 마을 가운데인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5길 38[인량리 422]에 있다.
[변천]
권상임이 살림집으로 건립하였다. 중문과 사랑채가 화재로 소실된 후 작고 소박하게 사랑채를 다시 지었다.
[형태]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5칸 규모이다. 평면은 안마당 뒤로 2칸 마루방을 두고 그 우측으로 상방 2칸통과 좌측으로 안방 2칸통과 뒤로 고방 1칸을 두었다. 안방 앞으로는 정지 2칸통으로 좌익사를 이루었는데, 1칸은 원래 마구였다. 특히 마을 내 정침과 비교해 안채의 안대청 전면에는 각기 창호를 단 점이 특징인데, 판벽에 쌍여닫이 굽널살문과 쌍여닫이 널문이다. 구조는 평지에 높게 자연석 기단을 쌓고 자연석 초석을 놓은 뒤 네모기둥을 세워 민도리 형식으로 처마를 받쳤다. 안대청의 지붕가구는 3고주 3량가이고 그 외 좌익사는 평주에 3량가이다.
상방 난방은 방 앞 기단에 둔 함실아궁이로 하는데, 굴뚝이 아궁이 옆에 나란히 설치된 되돈고래[아궁이 불길이 고래를 돌아 아궁이 옆 굴뚝으로 나오도록 설치한 고래의 한 형식]이다. 정지문은 하부에 하인방에 둔테[문짝을 회전시키는 장부를 고정하는 장치]가 같이 만들어진 통둔테, 상인방에는 장둔테에 한 짝씩으로 된 문널의 장부로 끼운 구조이다. 마구 앞문은 정지처럼 판벽에 작은 크기의 외여닫이 띠장널문[여러 장의 널을 각재로 고정한 문]이 남아 있다.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1칸에 '一' 자형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평면은 마루를 중앙에 두고 그 양측으로 사랑방과 건너방을 둔 평면 형식이며, 안마당을 등지고 서향하고 있다. 사랑방 뒤에는 반침이 있고, 안마당 쪽으로 짧은 토석담을 두어 안채 공간과 구분지었다. 사랑마루의 앞뒤로는 판벽에 쌍여닫이 굽널살문[살대에 널을 붙인 문]을 달아 내부화하였다. 구조는 자연석 쌓기를 한 기단에 자연석 초석을 놓아 네모기둥을 세운 뒤 민도리 형식으로 처마를 받쳤다. 지붕가구는 간략한 3량가에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좌측 박공면의 대들보에 강파헌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현황]
1999년 3월 11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마을 내 'ㅁ' 자형 뜰집의 정침이었으나 화재로 중문간과 사랑채가 소실되어 'ㄱ' 자형 정침만 남은 것을 후대 '一' 자형 사랑채를 지어 튼 'ㄷ' 자형이 된 살림집이다. 정침은 이 지역의 살림집 평면 유형이나 안대청 전면에 각기 다른 형식의 창호를 달아 내부화한 점, 상방에 아궁이와 굴뚝이 나란히 설치된 보기드문 되돈고래 존재, 안채를 등지고 앉은 작고 소박한 사랑채 등이 특징이다. 'ㄱ' 자형 안채에 후대 사랑채를 익사(翼舍)에 연접 배치하였음에도 이 지역 상류주택의 제반 특성 중 하나인 남녀공간의 분리 및 공간구성의 특성을 살필 수 있는 중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