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0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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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盈德寧海鄕校 |
영어공식명칭 | Yeonghae Hyanggyo in Yeongdeok |
이칭/별칭 | 영해향교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예주8길 14-5[성내리 24-1]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백지국 |
건립 시기/일시 | 1346년 - 영덕영해향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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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시기/일시 | 1529년 - 영덕영해향교 이전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940년대 초 - 영덕영해향교 폐쇄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590년 - 영덕영해향교 보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671년 - 영덕영해향교 명륜당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706~1709년 - 영덕영해향교 경각·전사청·주방·별고·하인청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01년 - 영덕영해향교 일부 건물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838년 - 영덕영해향교 일부 건물 중건 |
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9년 - 영덕영해향교 복설 및 대성전 등 중수 |
개축|증축 시기/일시 | 2009년 - 영덕영해향교 동무·서무·내삼문 중건 |
문화재 지정 일시 | 2006년 9월 14일 - 영덕영해향교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13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영덕영해향교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예주8길 14-5[성내리 24-1] |
원소재지 | 영해향교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
성격 | 향교 |
양식 | 겹처마 맞배지붕[대성전]|홑처마 맞배지붕[동무·서무·동재·서재·태화루]|홑처마 팔작지붕[명륜당] |
정면 칸수 | 5칸[대성전]|3칸[동무·서무]|5칸[명륜당]|3칸[동재·서재]|6칸[태화루] |
측면 칸수 | 1.5칸[대성전]|1칸[동무·서무]|2칸[명륜당]|1칸[동재·서재]|2칸[태화루] |
소유자 | 경상북도향교재단 |
문화재 지정 번호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13호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에 있는 고려 후기 교육기관.
[개설]
영덕영해향교(盈德寧海鄕校)는 고려 후기 경상도 영해부(寧海府)에 설치된 국립교육기관이다. 1346년(충목왕 2)에 건립하였으며, 현재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태화루(太和樓)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면소재지 동쪽 산기슭에 북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향교 서쪽에는 영해초등학교가 있으며, 입구 쪽에는 전통생활 정신문화 체험지구가 조성되어 있다.
[변천]
1346년 장서기(掌書記) 이천년(李天年)이 고을의 부로(父老)들과 상의하여 작지산(勺芝山)[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괴시리] 아래에 대성전과 동무(東廡)·서무(西廡)를 갖춘 향교를 처음 건립하였다. 1529년(중종 24) 영해도호부사(寧海都護府使) 공서린(孔瑞麟)이 지금의 영해면 성내리로 이건하였으며, 이때 명륜당과 누각인 태화루(太和樓)가 함께 건립하였다. 16세기 후반에는 이황(李滉)의 제자인 김언기(金彦璣)가 영해향교 교수(敎授)로 부임하여 학문적 영향을 크게 끼쳤다. 1590년(선조 23) 보수가 이루어졌지만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당시 장의(掌議) 박응천(朴應川)이 위패를 등운산으로 피난시켰다가 이후 환안(還安)하였다.
1671년(현종 12) 지금 자리에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706년(숙종 45) 고을 사람들의 공의로 대대적인 중건을 시작해 3년 만에 완성하였다. 당시 중건으로 경각(經閣)·전사청(典祀廳)·주방(廚房)·별고(別庫)·하인청(下人廳)이 갖추어졌다. 1801년(순조 1)과 1838년(헌종 4)에도 일부 건물이 중수되었다. 1830년(순조 30) 향교에서 향약(鄕約)이 거행되었으며, 1840년에는 향사(享祀) 주관을 둘러싸고 전통적 사족인 구향(舊鄕)과 서얼(庶孼) 가문이 주축이 된 신향(新鄕) 간의 치열한 향전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개항기 신식 교육이 실시됨에 따라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의 기능만 남게 되었다. 1914년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영해가 영덕에 합병되면서 영해향교를 폐쇄하고, 영덕향교에 합쳤다. 6.25전쟁 중인 1951년 영해향교는 영해중학교 교사로 사용되었다. 1964년에는 향교 부지를 영해여자중학교와 영해여자상업고등학교에 희사하였다. 한편, 6.25 전쟁 중에 영덕향교가 소실되어 버리자 옛 영해 지역 주민을 중심으로 영해향교 복설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1979년 대성전을 비롯해 여러 건물이 중수되고 영해향교가 복설되었다. 2009년에는 조선시대 기록에 따라 동무·서무·내삼문을 새롭게 중수하였다.
[형태]
영덕영해향교는 산기슭 아래에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현재는 대성전·동무·서무·내삼문·명륜당·동재·서재·태화루·외삼문·관리사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그중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동무·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강당인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인데, 건물 양측에는 온돌방이 설치되어 있다. 동재·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온돌방과 부엌을 갖추어 놓았다. 누각인 태화루는 한동안 신식 학교의 교사로 사용되어 원래의 모습에서 변형된 것이다. 현재는 정면 6칸 측면 2칸의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홑처마 맞배지붕 형식이다.
[현황]
2006년 9월 14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교육 기능이 사라지고 제의 기능만 남아 있으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향사를 거행하고 있다. 원래 영덕영해향교는 중설위(中設位) 향교였는데, 현재는 5성(五聖), 송조 2현(宋朝二賢), 동국 18현(東國十八賢)의 위패만 봉안하고 있다. 한편, 영덕영해향교는 전통혼례 문화를 전승·보전하려는 취지에서 2009년부터 전통혼례를 거행하고 있으며, 2003년을 시작으로 격년마다 개최되고 있는 목은문화제의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덕영해향교는 조선시대 영해도호부 지역의 동향을 잘 보여주기에 학술적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현재에는 지역 전통문화 계승에도 앞장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