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1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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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士巖里金寧金氏集姓村 |
영어공식명칭 | Single-Clan Village of Kimnyeong-Kim Clan in Saam-ri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사암1리 적암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창기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사암리에 있는 김녕 김씨 집성촌.
[개설]
김녕김씨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관향으로 하고, 김시흥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영덕군 남정면 사암리 적암마을에는 김녕김씨가 다수 거주하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나 언제, 어느 선조가 입촌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마을입지]
남정면 소재지인 장사리에서 달산면으로 향하는 지방도 제930호선을 따라 6㎞ 지점에 있는 마을이다. 크고 작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마을 북서쪽 골짜기에 텃골저수지가 축조되어 있어 사암1리와 사암2리 마을 앞 논들의 농업용수로 쓰이고 있으며, 마을 앞으로는 세천이 흐르고 있다. 계곡을 따라 농토가 산재하고 있으나 논[2.0㏊]보다 밭[10.7㏊]이 훨씬 많다. 동쪽으로 도천리를 지나 해안마을인 구계리에 이른다. 서쪽으로는 사암2리와 접하고 있다.
[명칭 유래]
마을 아래에 붉은 바위가 솟아 있어 '붉은바우[赤巖]'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 외남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을 개편할 때 다사리(多士里)[현재의 사암2리]와 적암리를 합하여 사암동이라 하고 영덕군 남정면에 귀속하였다. 1959년에 사암1동과 사암2동으로 분동되었다.
[형성 및 변천]
1400년경에 박씨 성을 가진 선비가 현재의 뒷골에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하나, 임진왜란 때에 김씨 성을 가진 사람이 피난을 와서 현재의 마을을 개척함으로써 뒷골마을은 없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마을을 ‘박씨터전에 김씨골매기’라고 한다. 임진왜란 때 마을을 개척한 사람이 김씨라고만 전할 뿐 본관은 알 수 없어 김녕김씨인지는 확인할 수가 없다. 현재 이 마을에 거주하는 김녕김씨가 이 사람의 후손들인지, 아니면 그 후 어느 시기에 김녕김씨가 입촌하여 집성촌을 형성하였는지 분명하지 않다.
[현황]
1964년에 이 마을에는 32가구 170명이 거주하였으나 1992년에는 20가구 45명으로 줄었다. 주민의 성씨 구성을 보면 1992년에 김녕김씨 18가구, 타성 2가구로 총 20가구였으며, 2006년에는 김녕김씨 14가구, 전주이씨 2가구, 경주김씨 1가구, 안동김씨 1가구[총 18가구]로 김녕김씨가 다수를 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