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 시대 행정 구역. 가림군(加林郡)은 백제가 6~7세기에 설치·운영한 37군(郡) 가운데 하나이다.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가림성(加林城)[옛 이름 성흥산성(聖興山城)]이 가림군 중심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가 멸망한 뒤에 757년(경덕왕 16) 통일 신라의 경덕왕(景德王)이 ‘가림군(嘉林郡)’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
충청남도 부여 지역 금강 변에 있었던 조선 시대의 나루. 고다진(古多津)은 조선 시대 임천군(林川郡)과 석성현(石城縣) 사이 금강 변에 있는 강 나루[진도(津渡)]이다. 위치는 임천군에서 동쪽으로 29리[약 11.39㎞], 석성현에서는 서쪽으로 10리[약 3.93㎞]에 있었으며, 임천군과 석성현을 잇는 교통로 상에 있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수세가 매우 험하...
-
충청남도 부여군의 공동 브랜드. 충청남도 부여군의 공동 브랜드인 굿뜨래는 부여의 기름진 땅과 천혜의 깨끗한 자연환경인 좋은[Good, 굿] 뜰에서 생산된 최고의 제품을 표현한다. 영어로 좋다는 의미인 GOOD과 자연을 상징하는 나무라는 뜻인 TREE의 합성어로 ‘좋은 자연’을 상징한다. 프랑스어로 미각, 식용, 입맛, 심미안, 안목, 센스의 의미를 가진 Gout(굿)과 몹시, 매우...
-
충청남도 부여군이 발행하는 공동체 순환형 지역화폐. 굿뜨래페이는 충청남도 부여군이 발행하는, 블록체인 기술 기반으로 만든 전자식 화폐다. 굿뜨래페이로 결제하면 현금으로 정산되어 들어오지 않고 굿뜨래페이로 들어오기 때문에 그대로 타 가맹점에서 재사용되는 공동체 순환형 지역화폐이다. 굿뜨래[goodtrae]는 부여군의 공동 브랜드로서, 부여의 좋은[Good] 뜰에[trae]서 만들어진...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에서 마을의 운영과 화합을 도모하고자 조직한 대동회의 자치 규약.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는 백마강 기슭의 자온대(自溫臺) 근처에 있는 마을로서 부여읍과 규암면을 잇는 교통의 요지이다. 규암리는 조선 후기 나루터와 규암장을 배경으로 인근에서 가장 번성한 시장촌으로 성장하였으며, 마을이 생겨난 이래로 대동회를 구성하여 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의 특수 행정 구역. 고려 시대에는 일반적인 행정 구역인 군현과 함께 지방의 특수한 행정 구역인 향·부곡·소와 장(莊)·처(處)가 있었는데, 장·처는 고려 말까지 존속되다가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 대부분 폐지되거나 일반 군현에 흡수되었다....
-
삼국 시대 538년부터 660년까지 사용된 백제의 별칭. 백제 성왕은 538년(성왕 16) 백제의 중흥을 위해 사비(泗沘)로 천도하면서 나라 이름을 ‘남부여(南扶餘)’로 하였다. 남부여로의 개칭은 부여를 계승한다는 정체성을 천명한 것으로, 왕실 세력을 결집하고 이성 귀족과 차별화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 설치된 백제 시대 행정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지리지3에 따르면 웅주(熊州)에 속한 가림군(嘉林郡)에는 2개의 현(縣)이 소속되어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한산현(翰山縣)은 본래 백제 대산현(大山縣)이며 경덕왕이 이름을 고쳤다”라고 한다. 고려 시대에는 한산현을 홍산현(鴻山縣)으로 불렀다. 대(大)·한(翰)·홍(鴻)은 모두 ‘크다’는 뜻...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 행정 지명. 선사 시대부터 대규모 청동기 마을을 형성한 정치 세력이 자리 잡았고 삼한 시대에는 마한의 소국이 있었으며, 4세기 중엽에 백제 영토로 편입된 뒤 538년부터 백제의 새로운 왕도(王都)로 개발되어 660년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였다. 백제 시대의 이름은 소부리(所夫里), 사비(泗沘)였으며, 부여군(...
-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발행하는 지류 상품권. 부여사랑상품권은 충청남도 부여군이 발행하여 부여군 관내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지류 상품권이다. 1,000원권, 5,000원권, 1만원 권, 3만원 권으로 총 4종이 발행된다....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살펴보면 부여현은 옛 백제의 도읍으로 조룡대(釣龍臺)·낙화암(落花巖)·자온대(自溫臺)·고란사(皐蘭寺)와 같은 백제 시대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었다. 『택리지』에서는 부여의 지역적 특징으로 경치가 매우 훌륭하며, 땅이 기름져 부유한 사람들이 많다고 하였다. 다만 도읍으로는 지대가 좁아...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지역에 있었던 백제 왕도 지명. 사비(泗沘)는 소부리(所夫里)에서 연원하며, 성왕이 538년(성왕 16)에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천도함으로써 백제의 왕도가 되었다. 660년 나당 연합군의 침략으로 사비성이 함락된 후 당나라가 사비도성에 백제도호부를 설치하였으며, 신라가 672년에 사비 지역을 차지하여 소부리주(所夫里州)를 두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석성현은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지역에 설치되었다. 석성현은 백제 때 진악산현(珍惡山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이후 757년 신라 경덕왕 때 석산현(石山縣)으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며, 부여군의 속현이었다. 고려 초 940년 석성현(石城縣)으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부터 공주에 예속되었다. 1172년(명종...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의 행정 구역. 백제가 멸망한 뒤 통일 신라 시대인 686년(신문왕 6)에 백제의 왕도였던 사비(泗沘)[지금의 충청남도 부여군 일대]에 소부리군(所夫里郡)이 설치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웅진도독부 소속 지방 행정 구역. 우이(嵎夷)는 고대 중국에서 해가 뜨는 동쪽 바닷가 이민족의 땅을 가리키는 이름이었는데, 당(唐)나라가 백제를 공격할 때 군사 진격로의 이름을 ‘우이도(嵎夷道)’라 하였다. 또한 백제를 멸망시킨 뒤에는 백제 땅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와 13개 현(縣)을 설치할 때 백제왕도 사비 지역에 설치한 현을 우이현(嵎夷縣)이라...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삼국 시대 당이 설치한 군정 기관. 나당 연합군이 백제를 정벌한 후 당나라는 백제 고토에 대한 직접 지배를 위하여 통치 기구를 설치하였다. 본래 5도독부를 두려고 하였으나 백제의 격렬한 부흥 운동의 전개로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로 단일화하였다. 신라가 672년에 사비 지역을 차지하여 소부리주를 설치함으로써 실질적인 기능은 정지되었으나 웅진도독부가 요동...
-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행정 구역. 석성현은 현재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일대에 위치한 행정 구역이었고, 이산현은 현재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에 위치한 군현이었다. 두 군현은 백제 때부터 다른 영역으로 설정되어 각기 다른 행정 영역을 이루고 있었는데, 1414년(태종 14) 전국 지방 군현의 통폐합 과정에서 통합 대상이 되어 이산현의 이(尼) 자와 석성현의 성(...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일대에 있었던 고려 시대 행정 구역. 임천 지역은 통일 신라 이래로 가림군(嘉林郡)이라 불리다가 고려 시대인 995년(성종 14)에 임주(林州)로 개편되면서 자사(刺史)가 설치되었다. ‘임주’라는 명칭이 995년에 처음 등장하였다. 그 후 1018년(현종 9)에 다시 가림현으로 바뀌었고, 1315년(충숙왕 2)에 지임주사(知林州事)로 승격되었다....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지역에 있었던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를 살펴보면 임천군은 성주산(聖住山) 남쪽에 위치한 고을로 서천(舒川)·한산(韓山)과 함께 모시를 가꾸기 알맞은 곳이며 모시가 지역의 특산물로서 전국에서 제일인 지역이라고 하였다. 또한 강과 바다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교통이 편리하며 금강을 사이에 두고 전라도와 인접한 곳이라고 설...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에서 마을의 운영과 화합을 도모하고자 조직한 대동계의 자치 규약.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조현리는 홍산면의 동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북쪽으로는 천보산과 월명산의 높은 고개를 뒤로하고, 마을 앞으로는 넓은 들이 펼쳐져 있다. 지역에 토착하고 있던 성씨인 경주 김씨(慶州 金氏)가 20여 호로 집성촌을 이룬다. 1930년대에는 근로청년단을 조직하여 농촌계몽...
-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일대에 있었던 백제 시대의 행정 지명. 『삼국사기(三國史記)』 권7 신라본기 문무왕 11년(671) 6월 조에는 “마침내 당나라 군사와 석성(石城)에서 싸워 5,300명을 목 베고 백제 장군 2명과 당나라 과의(果毅) 6명을 사로잡았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때의 석성을 석산현[진악산현]과 같은 곳으로 보기도 한다. 부여군 석성면 현내리의 파진산 지맥에는 석...
-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일대에 있었던 통일 신라 시대 행정 구역. 본래 백제 대산현(大山縣)이던 곳을 757년(경덕왕 16)에 한산현(翰山縣)으로 고치고 가림군(嘉林郡) 소속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6 지리지3 웅주(熊州) 조에 전한다. 고려 초에 한산현을 홍산현(鴻山縣)으로 고쳤는데, 대(大)·한(翰)·홍(鴻)은 모두 ‘크다’는 뜻을 지닌 한자이다....
-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 있었던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 행정 구역. 조선 시대 인문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에서는 홍산현(鴻山縣)을 성주산(聖住山) 동편에 위치한 고을로 인근의 임천(林川)·정산(定山) 등과 함께 풍속이 비슷하며 여러 대에 걸쳐 거주한 사대부 집안이 많다고 설명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서는 홍산현의 풍속에 대해서 문무를 숭상하며, 누에 치기에 힘쓴다고 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