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 운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467
영어공식명칭 Saemaul Movement|New Village Movement
이칭/별칭 신향촌 운동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70년 4월 22일연표보기 - 박정희 대통령 새마을 운동 제창
발단 시기/일시 1972년 1월 17일 - 부여군 새마을 운동 전담 부서로 내무부 내에 새마을계 신설
전개 시기/일시 1973년 1월 - 부여군 새마을운동협의회 구성
전개 시기/일시 1984년 3월 22일 - 새마을운동중앙본부 충청남도지부 부여군지회 결성
성격 사회 운동
관련 인물/단체 박정희|새마을운동중앙본부|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새마을운동중앙회

[정의]

1970년 충청남도 부여군을 포함하여 전국에서 시작된 범국민적 지역 사회 개발 운동.

[개설]

새마을 운동은 1970년 박정희 대통령이 제창한 지역 사회 개발 운동이다. 신향촌 운동이라고 하며 근면·자조·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하고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을 포함하여 범국민적·범국가적으로 추진된 새마을 운동은 농촌 개발 사업으로 시작되었다가 점차 공장, 도시, 직장 등으로 확대되어 한국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전 국민적인 개발 운동으로 뿌리를 내렸다.

[역사적 배경]

1960년대 한국은 본격적인 경제 성장의 단계에 들어섰다. 그러나 공업화를 우선적 목표로 하는 산업화 전략으로 인하여 지역 간의 불균형이 심화되었고 도시와 농촌 사이의 격차도 확대되었다. 또한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어 농촌 지역은 도시에 비하여 낙후성을 면치 못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70년부터 전국 3만 3000여 자연 촌락을 대상으로 새마을 가꾸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어 1972년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였다.

[경과]

부여군은 1972년 1월 17일 새마을 운동 전담 부서로 내무부 내에 새마을계를 신설하고, 1973년 1월에는 군수를 위원장으로 하고 유관 기관의 단체장과 간부 및 지역 인사 등을 위원으로 하는 부여군 새마을운동협의회를 구성하였다. 새마을 운동 추진 체계를 마련한 부여군은 ‘근면·자조·협동’을 기본 정신으로 하여 본격적으로 새마을 운동을 전개하여 나갔다. 새마을 가꾸기 사업, 주택 개량 사업, 자연 보호 활동, 광산 지역 개발 사업 등이 주요 사업들이었다.

새마을 가꾸기 사업은 1972년부터 시작된 농촌의 생활 환경 개선 사업이며 정부로부터 양회, 철근, 기타 자재 등을 지원 받아 생산 기반 시설 조성, 농로 개발 및 정비, 마을 안길 확장과 진입로 포장, 교량과 하천 정비, 담장 개량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주택 개량 사업은 1977년부터 불량한 농촌 주택 환경을 개선하기 위하여 추진하였다. 우선 주요 도로변과 중요 지역의 불량 주택을 개량하고 희망자 위주로 주택 개량을 실시하였다. 자연 보호 활동 역시 1977년부터 전개되었는데 자연 정화와 자연 보존, 자연 보전 등으로 나누어 추진되었다. 각 마을과 직장, 단체별로 ‘자연보호회’를 조직하였으며, 자연보호회 별로 책임 구역을 지정하고 각종 자연 보호 활동을 실시하였다.

광산 지역 개발 사업은 광산 지역의 생활 기반 및 복지 시설을 확충함으로써 광산 노동자의 생활 안정과 정착 의식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었다. 광산 지역 개발 사업은 1979년부터 본격화되었는데, 탄광 지역을 대상으로 하여 사택 단지 내에 복지 회관과 노인 회관 건립, 공동 목욕탕 설치, 광산 노동자 자녀 교육비 지원, 광산 도로의 확장과 포장 등이 이루어졌다.

1980년대 들어 새마을 운동이 관 주도형에서 민간 주도형으로 전환되면서 1980년 12월 13일 「새마을운동조직 육성법」이 공포되었다. 부여군에서는 「새마을운동조직 육성법」에 의거하여 1984년 3월 22일 새마을운동중앙본부 충청남도지부 부여군지회를 조직하고 산하에 새마을지도자협의회, 새마을부녀회, 새마을문고 부여군지부, 새마을금고협의회, 직장새마을협의회, 청소년연합회, 새마을조기체육회, 학교새마을어머니회 등 8개 단체를 설치하였다.

1980년대 주력 사업은 새마을 소득 특별 지원 사업, 오지 도로 개발 사업, 새마을 광역권 사업, 낙후 지역 개발 사업 등이다. 1982년부터 시작된 새마을 소득 특별 지원 사업은 농촌 저소득 마을의 소득 증대를 목표로 하였다. 특히 대도시 이주 영세민에게 한우 입식을 지원하여 농촌에 정착하도록 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오지 도로 개발 사업 역시 1982년부터 시작되었는데 부여군 내 오지 도로를 확장·포장하여 오지 및 낙후 지역의 생활 기반을 확충하고 지역 간 균형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것이었다. 새마을 광역권 사업은 지역 내 개발 가능성이 높거나 낙후 지역으로 개발 성과가 클 것으로 기대되는 권역을 설정하여 도로 포장, 농로 개발 및 확장, 교량 가설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1983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주민 총회에서 추진 위원회를 구성하여 추진하였다.

낙후 지역 개발 사업은 1988년 지역 간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하여 산간 오지인 충화면을 낙후 지역 개발 대상 지역으로 선정하고 도로 확장, 교량 가설, 하천 개수, 복지 회관 건립, 양수장 설치, 어린이 놀이터 설치, 트랙터 구입 등을 지원한 사업이었다. 낙후 지역 개발 사업을 통하여 주민들의 소득을 극대화하는 한편 환경·문화·유통 시설의 확장으로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이외에도 1986년 아시안 게임에 대비하여 전 국토의 공원화 사업, 주요 도로변 정비 사업, 성화 봉송로 주변 정비 사업 등이 추진되었다.

그러나 새마을 운동은 1988년 제6공화국 들어 새마을운동중앙본부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각종 비리가 폭로되면서 타격을 받았다. 결국 1989년 새마을운동중앙본부는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로 개편되었고 새마을 운동 역시 순수한 민간 주도 운동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여 나갔다. 2000년 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는 다시 새마을운동중앙회로 명칭을 바꾸었으며 ‘더불어’ 잘 사는 국민 운동을 표방하고 생활·의식 개혁 운동, 민간 사회 안전망 운동, 환경 보전 운동, 지역 활성화 운동, 통일 및 국제화 운동으로 영역을 확대하였다.

또한 선진 시민 의식 향상과 지방화 시대를 이끌어 갈 지역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여 새마을 지도자뿐 아니라 지역 사회 봉사자, 일반 군민, 청소년을 대상으로 새마을 교육 사업을 실시하였다. 새마을 주민 소득 지원 사업을 통하여 농촌 지역 주민들의 소득 증대에도 기여하였다.

2022년 현재 새마을운동중앙본부 충청남도지부 부여군지회[회장 조세연]는 이사회와 사무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하 단체로 새마을지도자부여군협의회, 부여군새마을부녀회[회장 이창순], 직장새마을운동부여군협의회[회장 박재훈] 등을 두고 있다. 또한 16개 읍·면에 새마을지도자협의회와 새마을부녀회가 조직되어 활동 중이고, 437개 리에서 새마을 지도자와 부녀회장을 중심으로 지역 개발 및 새마을 운동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결과]

새마을 운동을 추진한 결과, 부여군은 농가 소득이 증대되고 농촌 지역의 낙후된 환경이 개선되는 등 크게 변화하였다. 또한 주민들의 참여를 통하여 새마을 운동이 진행됨으로써 공동체 의식과 자발적 참여 의식이 향상되었다.

[의의와 평가]

1970년대 범국민적 지역 사회 개발 운동으로 시작된 새마을 운동은 산업화 과정에서 소외된 농촌 지역을 근대화하고 국민에게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이는 부여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마을 운동은 박정희 유신 독재를 뒷받침하는 정치적 도구라는 평가를 받았고 1980년대에는 각종 비리로 비난을 받았지만 2022년 현재 새마을 운동은 생명과 평화를 지향하는 공동체 운동으로서 부여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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