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699
한자 扶餘 陵山里寺址 石造舍利龕
이칭/별칭 창왕명석조사리감(昌王銘石造舍利龕)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기명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
시대 고대/삼국 시대/백제
집필자 윤형원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567년 - 능산리사지 창건
출토|발굴 시기/일시 1995년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발견
문화재 지정 일시 1996년 5월 30일연표보기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국보 제288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국보로 변경 지정
현 소장처 국립부여박물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동남리 산16-1]지도보기
출토|발견지 부여 능산리사지 목탑지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87번길 19-7[능산리 산15-1번지]지도보기
성격 사리감
재질 화강석제
크기(높이) 74㎝[높이]|50㎝[가로]|50㎝[너비]
소유자 국유
관리자 국립부여박물관
문화재 지정 번호 국보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백제 사비 시기의 사리감.

[개설]

충청남도 부여군 능산리 고분군 좌측의 부여 능산리 사지 목탑터 중심에 있는 심초석 상면에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사리감은 심초석의 가장자리에서 동쪽으로 약 45도로 뉘어져 있었다.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형태의 사리 장치로서 삼국 시대 유물로서는 처음으로 사리 공양자와 연대를 정확히 밝히고 있어, 백제 사비기의 사리장엄(舍利莊嚴)과 진단구(鎭壇具)의 의미를 밝힐 수 있다. 1996년 5월 30일 국보 제28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국보로 변경되었다. ‘창왕명석조사리감(昌王銘石造舍利龕)’이라고도 부른다.

[형태]

화강암으로 제작된 사리감은 윗면의 좌단과 우단을 둥글게 깎은 직육변형으로, 전체적인 외형은 마치 무령왕릉의 입구를 연상시킨다. 크기는 높이 74㎝, 가로와 너비는 각각 50㎝이다. 사리감은 앞면과 뒷면에 감실이 마련되어 있는데, 윗쪽은 높이 45㎝, 깊이 25㎝이지만 파다 만 형태이며, 앞쪽의 사리공은 높이 45㎝, 너비 25.5㎝, 깊이 25.5㎝이다. 감실의 뚜껑을 씌웠던 것으로 보이는 4㎝의 틈을 제외하면 실제 사리장엄을 넣을 수 있는 깊이는 약 21.5㎝에 해당한다.

사리기를 넣었던 전면 감실의 좌면과 우면에는 각각 10자씩의 명문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각자(刻字)하였다. 기록된 명문은 ‘백제창왕십삼계태세재, 정해매형 공주공양사리(百濟昌王十三季太歲在, 丁亥妹兄 公主供養舍利)’로, “백제 창왕 13년 정해에 [창왕의] 매형 공주가 사리를 공양하였다”라는 내용이다.

[의의와 평가]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은 삼국 시대 유물로서 처음으로 사리 공양자와 연대를 정확하게 밝히고 있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이 발견됨에 따라 부여 능산리 사지의 초창 연대가 567년경이라는 사실과 백제가 유년칭원법을 사용하였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