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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068
한자 踏布-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대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대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답포 고개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대정리지도보기
해당 지역 소재지 답포 고개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대정리
성격 고개
높이 96m
길이 4㎞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가남리 남산 마을에서 대정리로 넘어가는 고개.

[명칭 유래]

답포 고개, 즉 베를 밟고 가는 고갯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 고개의 명칭 유래는 다음과 같다.

조선 연산군 때 일이다. 남산대에 사는 귀래정(歸來亭) 신말주(申末舟)의 장손인 신공제(申公濟)는 청렴결백하여 청백리로 유명하였다. 신공제는 대소과에 급제하여 병조 좌랑으로 있다가 1499년(연산군 5)에 능주 현령으로 부임하여 백성 위주의 선정을 베풀었다. 그는 세금을 감면해 주고 부역을 줄여주는 등 위민 애육을 실천하여 고을 백성으로부터 칭송이 자자하였다. 흉년이 들고 가뭄으로 농사를 망치면 백성과 더불어 죽물을 마셨으며 괴질이라도 번지는 날엔 관원을 동원하여 보살펴 주었다. 아무리 어려워도 공물에 손대지 않았으며 받지도 않았다. 이에 백성들은 신공제를 부모와 같이 따랐다.

1503년에 할아버지인 신말주가 수명을 다하자 신공제는 벼슬을 그만두고 향리인 순창 남산대로 돌아왔다. 이때 능주 백성들이 포목을 갖고 나와 바치고자 하였으나 신공제는 일절 받지 아니하였다. 백성들은 신공제의 귀향 행렬에 베를 짊어지고 따라나서 순창 남산대까지 이르렀다. 여기서도 신공제는 끝까지 사절하매 할 수 없이 신말주의 상여가 지나가는 남산대에서 신담리까지 십리 고갯길에 포목을 깔고 경배하기로 작정하였다. 연산군의 폭정이 민생을 도탄에 빠지게 하고 사회 기강이 해이해진 때였지만 그 길에 깔린 포목은 도적도 걷어가지 않아 오래도록 사람들에게 청백리 신공제의 선정을 알리는 증표가 되었다고 한다. 그 후부터 이 고개를 답포 고개라 부른다. 순조 때 전라 감사로 부임한 이서구(李書九)는 신공제의 청백리 갈문에서 “전라 56고을이 모두 답포 고개여.”라고 칭송한 적이 있다.

[자연환경]

순창읍 남쪽 병풍산[414m]의 북동쪽 능선에 위치한 답포 고개가남리 남산 마을에서 대정리까지 4㎞ 정도 이어진 완만한 고갯길이다. 북위 35°21′43″, 동경 127°08′39″에 해당한다.

[현황]

해발 96m의 답포 고개는 순창 읍내에서 남쪽으로 1.5㎞가량 떨어져 있으며, 남쪽에는 순창 가남 농공 단지가, 동쪽에는 순창 인터체인지 등이 입지해 있다. 답포 고개에서 광주 대구 고속 도로국도 27호선이 교차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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