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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63
한자 金海金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집성지 김해 김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복실리 지도보기|순창읍 순화리지도보기|순창읍 백산리지도보기|풍산면 대가리지도보기|팔덕면 월곡리지도보기|유등면 건곡리지도보기|구림면 율북리지도보기|구림면 안정리지도보기
성씨시조 김수로(金首露)
입향시조 김치준(金致浚)|김정(金錠)

[정의]

김수로를 시조로 하고 김치준, 김정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개설]

김해 김씨(金海金氏)는 가락계 김씨의 종통으로 가락국의 개조인 김수로왕(金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삼고 옛 가락국이었던 김해를 본관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김유신의 후대에서 가세가 크게 번창함에 따라 148여 개 파(派)로 분파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고려조의 김목경(金牧卿)을 중조로 하는 경파(京派)[김녕군파(金寧君派)]와 아우 김익경(金益卿)을 중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감무공파(監務公派)], 김관(金管)을 중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이다.

순창 지역 김해 김씨는 경상도 지역에서 인근 전라북도의 장수, 남원 지역으로 흘러들어 고창, 부안, 김제 등의 지역으로 퍼져 가는 중에 일부가 순창에 정착해 세거해 온 것으로 판단되며, 대부분 삼현파의 계보를 잇는 문민공(文愍公) 김일손(金馹孫)의 후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연원]

『고려사(高麗史)』,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따르면 김수로왕은 서기 43년 3월 하늘에서 내려온 금합에 담겨진 황금 알 여섯 개 중에서 태어나 가락국의 아도(我刀), 오도(五刀), 피도(彼刀), 여도(汝刀), 오천(五天), 신귀(神鬼), 유수(留水), 유천(留天), 신천(神天) 등 구간(九干)에 의해 추대되어 왕이 되었다. 여섯 개의 알 중에 맨 먼저 나왔다 하여 수로(首露)라고 이름 짓고 금합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김씨로 하였다.

『가락 선원 세계(駕洛璿源世系)』에 따르면, 김해 김씨김수로왕의 11세손 김무력(金武力) 때부터 크게 번창한 것으로 나타난다. 김무력은 신라에서 각간(角干)의 벼슬을 지낸 뛰어난 무장이었으며, 김무력의 아들인 김서현(金舒玄)은 신라 진흥왕의 아우 숙흘종(肅訖宗)의 딸과 혼인함으로써 신라 종성(宗姓)과 인척 관계를 맺고 가락국을 신라와 합병, 소판 대량주 도독 안무 대량주 제군사 장군(蘇判大梁州都督按撫大梁州諸軍事將軍)의 지위에 올랐다.

김서현의 아들 김유신은 삼국 통일에 큰 공을 세워 벼슬이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렀고, 죽은 후 흥무 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면서 김해 김씨의 중시조가 되었다. 이후 김해 김씨경주 김씨(慶州金氏)와 함께 우리나라 김씨의 양대 산맥을 이루면서 후손이 크게 번성해 왔다. 김해 김씨는 우리나라에서 그 수가 가장 많은 성씨이며, 순창 지역 또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입향 경위]

순창의 김해 김씨는 대부분 삼현파의 한 사람인 문민공 김일손의 후예들이다. 김해 김씨 집성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풍산면 대가리김해 김씨 입향조는 문민공의 후예인 통정대부(通政大夫) 김치준(金致浚)으로 남원에서 선조 연간에 들어왔다고 전하며, 같은 문민공의 후예인 석공재(石貢齋) 김정(金錠)도 이곳 대가리로 들어와 두 사람의 후손들이 함께 세거지를 이루고 있다. 대가리의 이장 김종범[2013년 12월 현재] 말에 따르면, 대가리김해 김씨 입향조는 김치준이 아니라 김치세(金致世)로, 자신이 그 후손이라고 하였다. 김치세임진왜란 때 순창에서 의병을 일으켜 구례, 곡성 등지에서 왜병을 무찌른 공이 있어 원종공신(原從功臣) 2등에 녹훈된 인물이다.

또 팔덕면 외월(外月) 마을 입향조는 문민공 김일손의 후예인 김치영(金致永)으로, 남원에서 들어왔다. 순창읍 복실리김일손의 후예인 김현욱, 백산리는 김태경이 입향조이며, 구림면 율북리는 삼현파의 후손 김고가 1560년(명종 15) 입향하였다. 이 밖에 유등면 건곡리, 구림면의 산내 마을, 안심 마을 김해 김씨문민공의 후예들이지만 입향조와 관련한 문헌 기록도 없고 자세한 내력을 아는 이도 없다.

유명 인물로 조선 후기 학자인 대곡(大谷) 김석구(金錫龜)[1835~1885]가 있다. 판도판서 김관의 후손으로, 타고난 자질이 총명하고 학문이 깊고 넓었으며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학식이 뛰어나고 품행은 단정했다. 조의곤(曺毅坤)과 더불어 여산(廬山) 문인의 쌍벽을 이루었고 기우만(奇宇萬), 정재규(鄭載圭) 등과 막역 지우였다. 스승 기정진이 항상 김맹자(金孟子)라 부르며 그의 학문과 인격을 칭송하였다 한다.

김영무(金英武)[1891~1953]는 근대의 육성 사업가로서 쌍치면 피노리 출신이다. 광양 군수 김우근(金宇根)의 둘째 아들이며, 뒤에 백부(伯父)인 참봉 김택근(金澤根)에게 입계(入系)되었다. 17세에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914년 가인(街人) 김병로(金炳魯) 등과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 대학[明治大學] 법학부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광주 지방 법원 순천 지원 판사를 역임하였으나 일제 치하에서의 법관 생활이 못마땅하여 사임하고, 1919년 중국 상하이로 들어가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였다.

김영무는 귀국 후 민족 자본 형성에 매진하여 모은 돈을 임시 정부에 보내 주었고, 순창 공립 농림학교[현 순창 제일 고등학교] 설립에 기여하였다. 순창읍 담순로 1411길[순창읍 장덕리 100번지]에 있는 순창 제일 고등학교는 1942년 개교 이래 1만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학교로, 2013년 교육 과학 기술부 지정 기숙형 공립학교로서 제2의 도약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현황]

2000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순창의 김해 김씨는 1,136가구, 3,033명으로 조사되었다. 가구 및 인구수에서 단연 1위를 차지하며 집성촌 또한 아홉 개 마을이나 된다. 가장 많은 가구가 살고 있는 마을은 풍산면 대가리로 80가구이다. 그밖에 순창읍 복실리 20가구, 옥천리 20가구, 백산리 8가구이며, 팔덕면 외율 마을 31가구, 유등면 건곡리 49가구, 구림면 율리 마을 12가구, 산내 마을 15가구, 안심 마을 7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살고 있다. 순창군 구림면 율북리문민공 김일손의 후예인 김남곤 효행 기적비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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