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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거 성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032
한자 世居姓氏
이칭/별칭 토착 성씨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집필자 이성용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여러 세대에 걸쳐 계속하여 살아오고 있는 성씨.

[개설]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씨(姓氏)는 이미 단군 조선(檀君朝鮮) 때부터 있었다고 하는데, 그것은 예맥(濊貊)의 군장(君長) 여수기(余守己)의 아들이 나라에 공을 세워 서성(徐姓)을 하사 받은 것에 기인한다. 이후 차차 성씨(姓氏)가 생겨 신라는 건국 초 개국에 공이 큰 여섯 마을[六村]을 32년(유리왕 9)에 육부(六部)로 고치고 다음과 같이 육성(六姓)을 하사하였다.

양부(梁部)[알천양산촌(閼川梁山村)]에 이씨(李氏), 사량부(沙梁部)[돌산고허촌(突山高墟村)]에 최씨(崔氏)[『삼국유사』에는 정씨(鄭氏)], 본피부(本彼部)[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에 정씨(鄭氏)[『삼국유사』에는 최씨(崔氏)], 점량부(漸梁部)[무산대수촌(茂山大樹村)]에 손씨(孫氏), 한지부(漢祇部)[금산가리촌(金山加利村)]에 배씨(裵氏), 습비부(習比部)[명활산고야촌(明活山高耶村)]에 설씨(薛氏) 등이다.

이 밖에 신라에는 왕족인 박(朴)·석(昔)·김(金) 삼성(三姓)에 관한 신화 전설이 있고, 고구려의 시조는 주몽(朱蒙)이지만 국호가 고구려이므로 왕족을 고씨(高氏)라 하였다. 그 후 고려조(高麗朝)에는 성씨 외에 본관(本貫)까지 구별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고려 왕실계(王室系)를 기록한 선원록(璿源錄)은 우리나라 족보(族譜)의 효시(嚆矢)라 할 수 있는데, 왕씨(王氏)의 선원록을 본받아 고려의 귀족층도 족보를 만들었을 것이므로 성씨마다 보첩(譜牒)을 만드는 것은 고려 때부터로 추정된다.

그러나 모든 고사(古史)를 살펴보면 백제는 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재위 346~375] 때부터, 신라는 24대 진흥왕(眞興王)[재위 540~576] 때부터 성(姓)을 갖게 되고, 고구려는 중국과의 외교가 일찍부터 시작되었으므로 동명성왕(東明聖王)[재위 B.C. 37~19] 건국 초부터 성씨를 가져온 기록이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전해온다.

성씨를 갖게 된 순서는 처음에 왕족(王族), 그 다음에 공신(功臣)의 순으로 하였으며, 군왕(君王)이 공신에게 성(姓)을 지어주는 것을 사성(賜姓)이라 한다.

[변천]

조선 영조(英祖)[재위 1724~1776] 때 문간공(文簡公) 이의현(李宜顯)[1669~1745]이 지은 문집(文集)에는 우리나라 성씨를 268종(種)으로 기록하였고, 고종~순종 연간에 발간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는 무려 466종(種)의 성씨를 나열하였다. 이후 1960년 12월 1일 실시한 국세 조사에 따르면 남한(南韓)에 현존하는 성씨는 모두 258종(種)으로 밝혀졌다. 그러면 이 많은 성씨 가운데 순창(淳昌) 지역에 분포하고 있는 성씨는 몇 종(種)이나 될까?

우선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를 참고로 본래 순창 지역에 살고 있었다는 토착 성씨(土着姓氏) 즉, 토성(土姓)을 살펴보면, 본군(本郡)[읍내]에는 설(薛)·염(廉)·임(林)·조(趙)·호(扈)[혹은 옹(邕)으로 쓰기도 한다]·김(金), 복흥(福興)에는 임(林)·조(趙), 적성(赤城)에는 송(宋)·이(李)·정(程)·황(黃)·현(玄), 유등(柳等)에는 정(程)·이(李)·송(宋), 감물토(甘勿土)에는 최(崔), 치등(置等)에는 이(李)·정(井)·임(林)·백(白)·경(景)·김(金) 등이다. 1760년(영조 36), 지금으로부터 240여 년 전에 편찬된 『순창 군지(淳昌郡誌)』 성씨 편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다름없이 23성(姓)이 기록되어 있다.

1957년에 발간한 『순창 군지』 신증(新增)에서는 지역별 구분 없이 다음과 같은 성씨가 기록되었다.

양(楊)·윤(尹)[남원(南原)]·신(申)[고령(高靈)]·김(金)[울산(蔚山)]·한(韓)[청주(淸州)]·권(權)·김(金)[안동(安東)]·홍(洪)[남양(南陽)]·박(朴)·김(金)[순천(順天)]·양(梁)[제주(濟州)]·윤(尹)[여주(驪州)]·유(柳)[문화(文化)]·설(薛)[옥천(玉川)]·정(鄭)·최(崔)[초계(草溪)]·박(朴)[밀양(密陽)]·임(林)·오(吳)·노(盧)[함양(咸陽)]·강(姜)[진주(晉州)]·남(南)[의령(宜寧)]·인(印)[교동(喬洞)]·황(黃)[장수(長水)]·송(宋)[여산(礪山)]·전(全)[천안(天安)]·국(鞠)[담양(潭陽)]·공(孔)[화순(和順)]·고(高)[장흥(長興)]·이(李)[성산(星山)]·김(金)[분성(盆城)]·김(金)[강릉(江陵)]

[현황]

순창을 본관으로 하는 토착 성씨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세종실록지리지』 및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문헌에 따라 설(薛)·염(廉)·임(林)·조(趙)·호(扈)[혹은 옹(邕)]·김(金)·임(林)·조(趙)·송(宋)·이(李)·정(程)·황(黃)·현(玄)·정(程)·이(李)·송(宋)·최(崔)·이(李)·정(井)·임(林)·백(白)·경(景)·김(金) 등 모두 23성(姓)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이들 23성 중, 순창을 본관으로 쓰고 있는 성씨는 설(薛)·조(趙)·옹(邕)의 3성 외에는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그 중의 조씨(趙氏)는 위에서 본군조에 있는 조씨와 복흥조에 있는 조씨가 있는데, 본군의 조씨는 옥천(玉川)으로, 복흥의 조씨는 순창으로 본관을 쓰고 있다. 이들 3성 외에 순창 또는 복흥, 적성, 유등, 감물토, 치등의 어느 곳도 본관으로 쓰고 있는 성씨는 찾아 볼 수 없다. 한편 『한국 성씨 보감』(한국 민족 문화 진흥회, 1995, 1343쪽)에 의하면 복흥 서씨(福興徐氏)가 있다. 복흥 서씨의 시조는 서희량(徐希亮)으로 고려조 병부 상서에 증직되었다 하는데, 이 외 본관의 유래나 세계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2000년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전국에 복흥 서씨는 134가구 434명이 있었다 한다. 이들 외에 본관을 다른 곳으로 쓰고 있으면서 순창에서 오랫동안 세거하고 그 숫자도 많으며 인재도 많이 배출한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성씨들도 토성의 범주로 볼 수 있다.

18세기 중엽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순창 지역의 세거 성씨에는 옥천 조씨(玉川趙氏)·옥천 설씨(玉川薛氏)·울산 김씨(蔚山金氏)·청주 한씨(淸州韓氏)·안동 권씨(安東權氏)·남원 양씨(南原楊氏)·고령 신씨(高靈申氏)·남원 윤씨(南原尹氏)·남양 홍씨(南陽洪氏)·순천 박씨(順天朴氏)·제주 양씨(濟州梁氏)·여주 윤씨(驪州尹氏)·경주 설씨(慶州偰氏)·문화 유씨(文化柳氏)·초계 정씨(草溪鄭氏)·밀양 박씨(密陽朴氏)·함양 오씨(咸陽吳氏)·진주 강씨(晋州姜氏)·의령 남씨(宜寧南氏)·완산 최씨(完山崔氏)·완산 이씨(完山李氏)·창녕 조씨(昌寧曺氏)·교동 인씨(喬棟印氏)·밀양 임씨(密陽林氏)·옥천 옹씨(玉川邕氏)[혹은 옥천 호씨(玉川扈氏)]·장수 황씨(長水黃氏)·여산 송씨(礪山宋氏)·천안 전씨(天安全氏)·창녕 성씨(昌寧成氏)·담양 국씨(潭陽鞠氏)·함양 노씨(咸陽盧氏)·화순 공씨(和順孔氏)·장흥 고씨(長興高氏)·성주 이씨(星州李氏)·순천 김씨(順天金氏)·분성 김씨(盆城金氏)·강릉 김씨(江陵金氏)·초계 최씨(草溪崔氏)·안동 김씨(安東金氏)·경주 김씨(慶州金氏) 등의 40개 성씨가 기록되어 있다.

1985년 당시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순창에 거주하는 인구는 1만 4278가구 6만 576명이며 성씨를 인구 순으로 정리하면, 김(金)·이(李)·박(朴)·최(崔)·정(鄭)·양(楊)·강(姜)·임(林)·조(趙)·서(徐)·한(韓)·신(申)·권(權)·오(吳)·윤(尹)·장(張)·유(柳)·설(薛)·양(梁)·홍(洪)·황(黃)·전(全)·조(曺)·송(宋)·고(高)·배(裵)·문(文)·허(許)·남(南)·손(孫)·안(安)·설(卨)·노(盧)·공(孔)·주(朱)·유(劉)·성(成)·심(沈)·진(陳)·백(白)·구(具)·채(蔡)·제(諸)·변(卞)·나(羅)·엄(嚴)·정(丁)·하(河)·방(房)·진(晋)·지(池)·우(禹)·차(車)·하(夏)·곽(郭)·전(田)·임(任)·소(蘇)·추(秋)·여(呂)·노(魯)·옹(邕)·선(宣)·국(鞠)·원(元)·천(千)·모(牟)·복(卜)·변(邊)·유(兪)·기(奇)·봉(奉)·도(都)·주(周)·방(方)·현(玄)·신(辛)·은(殷)·민(閔)·탁(卓)·정(程)·위(魏)·형(邢)·마(馬)·석(昔)·범(范)·왕(王)·반(潘)·강(康)·인(印)·함(咸)·신(愼)·연(延)·빙(氷)·진(秦)·계(桂)·표(表)·육(陸)·경(景)·우(于)·석(石)·묵(墨)·염(廉)·호(扈)·온(溫)·강(强)·옥(玉)·사(史)·시(施)·어(魚)·시(柴)·화(化)·여(余)·유(庾)·목(睦)·빈(賓)·전(錢)·노(路)·태(太)·감(甘)·길(吉)·공(公)·채(菜)·금(琴)·궉(鴌)·국(菊)·구(丘)·동(董)·도(陶)·국(國)·두(杜)·편(扁)·명(明)·방(龐)·방(邦)·봉(鳳)·음(陰)·부(夫)·순(荀)·내(乃)·야(夜)·가(賈)·황보(皇甫) 등 143종이다.

2000년 현재 순창에 거주하는 인구는 1만 1766가구 3만 447명이며 성씨를 인구 순으로 정리하면, 김(金)·이(李)·박(朴)·최(崔)·정(鄭)·강(姜)·임(林)·조(趙)·서(徐)·양(楊)·한(韓)·신(申)·오(吳)·권(權)·윤(尹)·장(張)·설(薛)·양(梁)·유(柳)·전(全)·황(黃)·홍(洪)·조(曺)·고(高)·송(宋)·안(安)·문(文)·허(許)·배(裵)·남(南)·손(孫)·주(朱)·노(盧)·공(孔)·심(沈)·설(卨)·성(成)·백(白)·유(劉)·나(羅)·구(具)·진(陳)·제(諸)·정(丁)·채(蔡)·엄(嚴)·하(河)·지(池)·임(任)·우(禹)·소(蘇)·변(卞)·여(呂)·방(房)·추(秋)·전(田)·차(車)·노(魯)·곽(郭)·천(千)·진(秦)·선(宣)·주(周)·진(晋)·원(元)·하(夏)·정(程)·옹(邕)·국(鞠)·변(邊)·강(康)·봉(奉)·모(牟)·민(閔)·방(方)·도(都)·기(奇)·유(兪)·복(卜)·육(陸)·현(玄)·은(殷)·위(魏)·염(廉)·탁(卓)·마(馬)·한(漢)·공(公)·형(邢)·신(愼)·함(咸)·호(扈)·왕(王)·석(石)·경(景)·명(明)·신(辛)·연(延)·옹(雍)·인(印)·구(丘)·범(范)·강(强)·강(彊)·석(昔)·내(乃)·국(國)·예(芮)·반(潘)·빙(氷)·유(庾)·빈(彬)·범(凡)·송(松)·양(樑)·표(表)·지(智)·장(蔣)·우(于)·이(伊)·전(錢)·옥(玉)·여(汝)·용(龍)·종(鍾)·어(魚)·여(余)·시(柴)·진(眞)·소(邵)·창(倉)·서(西)·사(謝)·십(□)·사(史)·빈(賓)·방(邦)·태(太)·초(楚)·미(米)·목(睦)·학(□)·마(麻)·두(杜)·도(道)·단(段)·노(路)·남궁(南宮)·국(菊)·견(甄)·감(甘)·황보(皇甫)·야(夜) 등 153종(種)이다. 이 통계에는 2000년 성씨 조사 때 세대를 이루지 못한 채 순창에 거주한 성씨가 포함되어 있다.

이 가운데 18세기 중엽 이후 2000년까지 순창에 세거해 온 성씨는 남원 양씨(南原楊氏)가 361가구 791명, 김해 김씨(金海金氏)가 1,136가구 3,033명, 전주 이씨(全州李氏)가 879가구 2,259명, 안동 권씨(安東權氏)가 247가구 582명, 경주 정씨(慶州鄭氏)가 201가구 556명, 초계 최씨(草溪崔氏)가 150가구 377명, 밀양 박씨(密陽朴氏)가 793가구 2,124명, 김녕 김씨(金寧金氏)가 187가구 464명, 진주 강씨(晋州姜氏)가 358가구 927명, 순창 설씨(淳昌薛氏)가 154가구 349명, 고령 신씨(高靈申氏)가 197가구 440명, 평택 임씨(平澤林氏)가 213가구 523명, 청주 한씨(淸州韓氏)가 272가구 697명, 흥덕 장씨(興德張氏)가 121가구 329명, 안동 김씨(安東金氏)가60가구 144명, 경주 설씨(慶州偰氏)가 52가구 118명, 울산 김씨(蔚山金氏)가 65가구 147명, 이천 서씨(利川徐氏)가 177가구 424명, 칠원 제씨(柒原諸氏)가 25가구 73명, 나주 임씨(羅州林氏)가 129가구 322명, 나주 진씨(羅州陳氏)가 13가구 31명,

장수 황씨(長水黃氏)가 124가 295명, 언양 김씨(彦陽金氏)가 35가구 80명, 연안 김씨(延安金氏)가 21가구 59명, 의령 남씨(宜寧南氏)가 55가구 144명, 문화 유씨(文化柳氏)가 92가구 215명, 남양 홍씨(南陽洪氏)가 105가구 240명, 곡부 공씨(曲阜孔氏)가 60가구 130명, 경주 김씨(慶州金氏)가 334가구 862명, 제주 고씨(濟州高氏)가 66가구 165명, 해주 오씨(海州吳氏)가 179가구 419명, 풍천 노씨(豊川盧氏)가 42가구 100명, 전주 최씨(全州崔氏)가 252가구 630명, 옥천 조씨(玉川趙氏)가 212가구 544명, 초계 정씨(草溪鄭氏)가 60가구 144명, 경주 최씨(慶州崔氏)가 163가구 426명, 달성 서씨(達城徐氏)가 139가구 353명, 평강 채씨(平康蔡氏)가 26가구 68명, 대구 배씨(大邱裵氏)가 2가구 8명, 남원 윤씨(南原尹氏)가 138가구 303명으로 조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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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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