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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당을 팔러 다니는 홍성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810
한자 明堂-洪成文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집필자 박정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12월 - 「명당을 팔러 다니는 홍성문」 『순창의 구전 설화』상에 수록
성격 풍자담|풍수담
주요 등장 인물 홍성문|노 진사
모티프 유형 명당을 찾기 위한 양반의 횡포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명당을 파는 홍성문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명당을 팔러 다니는 홍성문」은 지리에 통달한 홍성문에게 억지로 명당을 얻어 내고자 하였으나 결국은 명당을 받지 못한 노 진사에 대한 풍자담(諷刺談)이자 풍수담이다. 홍성문이 명당을 팔러 다닌 이유는 세상에 가득한 양반의 횡포를 조롱하기 위함이었다. 홍성문도 명당을 찾고자 하는 양반으로부터 납치되어 학대를 받지만, 이는 완력으로 받아낼 수 있는 명당이 아니었다. 세상을 희롱한 홍성문의 이야기로부터 당시의 양반의 횡포를 읽어낼 수 있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12월 양상화가 엮어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구전 설화』상의 194~195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사자암에서 공부하면서 지리에 통달하게 된 홍성문은 세상을 희롱하기 위하여 명당을 팔러 다녔는데, 주로 사람이 많이 모이는 오일장을 택해 시장 거리로 나섰다. 사자암을 나서서 제일 먼저 가는 곳은 강진장이었고, 다음으로 덕치면 사곡리를 지나 가곡 마을 후록재를 넘어 뒷내장으로 갔다.

홍성문은 뒷내장에 가면 늘 “황새나 우렁 사려!” 하고 외치며 다녔다. 특히 노 진사의 집 앞을 지날 때면 유독 큰소리로 외쳤다. 그래서 노 진사는 분명 홍성문 대사가 지리에 통달한 것으로 믿고 홍성문을 집으로 데려왔다. 하인에 이끌려 노 진사 앞에 당도한 홍성문은 “황새나 우렁을 사시렵니까?” 하였다. 그러자 노 진사는 “황새는 얼마이고 우렁은 얼마인가?” 하고 물었다. 홍성문은 “황새는 오천 량이고 우렁은 삼천 량입니다.” 하였다. 노 진사는 “일신천금인데 삼천 량이란 부당하지 않은가?” 하자 홍성문은 “그러면 못 사시지요.” 하고는 돌아보지도 않고 떠나 버렸다. 그 뒤로 뒷내장 날만 되면 노 진사 집 앞에서 “학사려 우렁 사려!”라고 외쳤다.

몇 달이 지난 후 어느 날 홍성문은 노 진사와 마주쳤다.

“진사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우렁 값을 조금 깎아 드릴 것이니 사십시오.”

“얼마나 깎아 줄 것인가?”

“삼백 냥을 감해 줄 것이니 사시지요.”

노 진사는 아무 말 없이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노 진사는 ‘제 놈이 적은 돈으로는 혈을 주지 않을 것이고 어떻게 한다?’ 속으로 생각하였다.

그런 후로 또 몇 달이 흘렀다. 역시 명당을 사라고 외치던 장날, 노 진사는 하인을 시켜 홍성문을 잡아 오도록 하였다. 그리고 준비하여 놓은 콩으로 태장을 시작하였다. 콩을 전대에 넣고 홍성문의 몸통과 머리에 둘러 묶은 뒤에 하인들을 시켜 계속 물을 길어다 붓게 하였다. 해가 질 무렵이 되니까 콩이 불어 홍성문은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견디다 못한 홍성문이 “진사님, 우렁이를 드릴 것이니 풀어 주십시오.” 하였다. 노 진사는 “그렇다면 지금 혈 자리를 가르쳐 주시게.” 하였다.

결국 홍성문은 노 진사에게 혈 자리를 잡아 주기로 하였다. 홍성문이 잡아 준 혈 자리는 노 진사의 마음에 꼭 들었다. 노 진사도 어느 정도 풍수지리는 이론적으로 알고 있었다. 다만 개안이 되지 못해 현장을 찾지 못할 뿐이었다.

“그래, 지금 얘기한 혈 자리는 어디인고?” 노 진사가 물었다.

“아이고, 진사님.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무슨 정신으로 재혈하겠습니까? 그러니 대태를 풀어 주십시오.”

노 진사가 듣고 보니 정말 그럴 것 같았다. 그래서 태장을 풀어 주고 재혈을 하라고 하였다. 홍성문은 나경을 들고 앞뒤로 왔다 갔다 기회를 노리다가 그냥 도망을 쳤다. 노 진사는 화가 나서 하인들에게 잡아 오라고 하였으나 잡힐 홍성문이 아니었다. 홍성문은 높은 대 위에 올라가서 소리를 쳤다.

“너희 노씨들 전부가 나와서 겨릅대 한 다발씩을 가지고 이곳에 꽂아서 한 개라도 정확한 자리에 꽂은 놈이 있으면 재혈을 하여 주마.”

결국 우렁이는 노 진사에게 점유되지 못하고 후일 노 진사가 죽은 후에 이곳에 묘지를 썼으나 정혈에는 가지 못하였다 한다. 혈 근처에 묘를 쓴다고 하여 그 혈의 기를 받을 수는 없었던 것이다.

[모티프 분석]

「명당을 팔러 다니는 홍성문」의 주요 모티프는 ‘명당을 찾기 위한 양반의 횡포’이다. 풍수지리에 통달한 것으로 알려진 홍성문이 명당을 매개체로 하여 양반을 희롱한 설화는 순창을 비롯하여 남원, 임실 지방에 여러 형태로 전해지고 있다. 「명당을 팔러 다니는 홍성문」은 명당을 얻으려고 홍성문을 납치한 노 진사를 희롱하고 있지만, 기실 그 당시 세간에 횡행하던 양반의 횡포를 고발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하위 계층인 민중이 상위 계층인 양반의 횡포에 대항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그렇기에 양반은 권세와 재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입지를 굳혀 나갔고, 이런 상황을 잘 알고 있었던 홍성문이었기에 풍수지리 지식을 이용하여 양반을 놀렸던 것이다. 홍성문이 양반을 희롱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풍수지리에 대한 민간의 믿음이 견고했음을 보여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외에 순창 지역에서 전승되고 있는 홍성문과 관련된 설화로는 「사자암과 홍성문 대사」, 「홍성문과 만석 거부」, 「보은하고 신선이 된 홍성문」, 「더벅머리 총각과 홍성문」 등을 들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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