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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211
한자 盧秉準
이칭/별칭 정보(精父)
분야 문화·교육/교육,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운암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최영성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3년연표보기 - 노병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9년 4월 - 노병준 사립 순성 학교 설립
출생지 노병준 출생지 -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운암리 지도보기
성격 학자|교육자
성별
본관 풍천
대표 경력 사립 순성 학교 공동 설립자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북도 순창군 출신의 학자이자 교육자.

[가계]

본관은 풍천(豊川). 자는 정보(精父). 조선 전기 예조 판서를 지낸 옥계(玉溪) 노진(盧禛)[1518~1578]의 13세손이다.

[활동 사항]

노병준(盧秉準)은 1883년(고종 20)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 운암리에서 출생하였다. 간재(艮齋) 전우(田愚)의 문인이다. 평소 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이 국권 회복의 급선무임을 자각하고 신식 학교 설립을 추진하였다. 1909년 4월 중추원 의관(中樞院議官)을 지낸 종형 노병훈(盧秉勳)과 함께 순창군 쌍치면에 사립 순성 학교[현재의 쌍치 초등학교]를 설립하였고, 이어 1913년에는 공립 학교로 전환하였다. 스승 전우를 기리는 일에도 앞장서 1933년 전라북도 부안에 계양사(繼陽祠) 건립을 주도하였다. 재력 있는 지역 유지로서 교육·언론계 등에서 활약하였다.

이용자 의견
강** [쌍치면사무소 홈페이지 지명 유래] 백제가 멸망하면서 신라의 아찬이라는 벼슬을 한 관리가 이곳에 와서 터를 잡으니 그의 벼슬을 따서 아찬마을이라고 부르다가 ~ 운교 등의 이름을 가진 4개 마을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 1914년 운교와 구암의 첫 자와 끝 자를 따서 운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 답변
  • 디지털순창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항목은 인물에 대한 항목이므로 인물의 생애와 업적에 대한 기술이 중심을 이룹니다. 귀하께서 요청하신 지명 유래의 경우 운암리 항목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이 점 참고 바랍니다.
2019.08.27
강** [활동사항] 중 운암리 옆에 '옛 지명은 아찬리'라고 병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20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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