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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948
한자 田愚
이칭/별칭 자명(子明),구산(臼山),추담(秋潭),간재(艮齋),전경륜(田慶倫),전경길(田慶吉)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41년연표보기 - 전우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56년 - 전우 임헌회에게 수학
활동 시기/일시 1908년 - 전우 순창, 왕등도, 군산도 등에서 강학
활동 시기/일시 1912년 - 전우 계화도 정착
몰년 시기/일시 1922년연표보기 - 전우 사망
출생지 전우 출생지 - 전라북도 전주시
거주|이주지 전우 이주지 - 서울
수학|강학지 전우 강학지 - 전라북도 순창군
묘소|단소 전우 묘소 -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사당|배향지 계양사 - 계화도
사당|배향지 의산사 - 의령
사당|배향지 용암사 - 고창
사당|배향지 태산사 - 정읍
성격 유학자
성별
본관 담양(潭陽)

[정의]

개항기 전라북도 순창군 쌍치면훈몽재에서 강학한 유학자.

[가계]

본관은 담양(潭陽). 자는 자명(子明), 호는 구산(臼山)·추담(秋潭)·간재(艮齋), 초명은 전경륜(田慶倫)·전경길(田慶佶). 아버지는 전재성(田在聖)이다.

[활동 사항]

전우(田愚)[1841~1922]는 1841년(헌종 7) 전주에서 출생하였고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서울에서 살았다. 이때 당대의 유학자 임헌회(任憲晦)[1811~1876]를 만났으며, 21세 때에는 직접 아산의 신양(新陽)까지 찾아가 사제의 의를 맺었다. 41세였던 1882년(고종 19)에 선공감 가감역(繕工監假監役), 전설사 별제(典設司別提), 강원도 도사, 사헌부 장령, 순흥 부사, 중추원 찬의(中樞院贊議)를 제수받았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1910년 “도가 행해지지 않으면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간다”는 공자의 말에 따라 군산 앞바다에 있는 왕등도(暀嶝島), 고군산도(古群山島) 등에 들어갔다.

도학(道學)을 일으켜 국권을 회복하겠다고 결심하고, 제자를 키우는 데 진력하였다. 순창의 훈몽재 뿐만 아니라 부안, 군산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들을 옮겨 가면서 학문을 연마하고 교육을 펼쳤다. 72세 되던 해에 계화도(界火島)에 정착하여 중화를 잇는다는 뜻에서 계화도(繼華島)라 부르면서 1922년 82세로 죽을 때까지 약 3,000여 명의 제자를 길러 냈다.

[학문과 저술]

전우의 학문 성향은 스승인 임헌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임헌회홍직필(洪直弼)의 문인으로서 인성(人性)과 물성(物性)이 같다는 낙론(洛論) 계열의 학자였다. 그는 특히 미발기질체청설(未發氣質體淸說)을 창안하였는데, 이는 낙론계의 학설을 한층 발전시킨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학문적 성격은 전통적인 유학 사상을 그대로 실현시키고자 했던 점에서 조선 최후의 유학자로서 추앙받고 있다. 저서에는 『안자편(顔子篇)』, 『오현수언(五賢粹言)』, 『연원정종(淵源正宗)』, 『간재집(艮齋集)』 60책, 『간재 사고(艮齋 私稿)』 30책, 『추담 별집』 2책이 있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에 있다.

[상훈과 추모]

계화도의 계양사(繼陽祠), 의령의 의산사(宜山祠), 고창의 용암사(龍巖祠), 정읍의 태산사(台山祠) 등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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