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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866
한자 慶州鄭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성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집성지 경주 정씨 세거지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내령리 지도보기|동계면 서호리지도보기|동계면 수장리지도보기|구림면 방화리지도보기
성씨시조 지백호(智伯虎)
입향시조 정명백(鄭明白)

[정의]

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정명백, 정두언 등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순창군 세거 성씨.

[개설]

경주 정씨(慶州鄭氏)지백호(智伯虎)를 시조로 하고 정진후(鄭珍厚)를 중시조로 삼는다. 경주를 비롯하여 연일(延日), 동래(東萊), 온양(溫陽), 초계(草溪), 하동(河東), 진양(晉陽), 진주(晉州) 등 여러 본관으로 나누어져 계보를 이어 오고 있다. 순창 지역 경주 정씨 세거지로 대표적인 마을은 동계면 내령리 강촌 마을인데, 중조 정효상(鄭孝常)의 후손 정명백(鄭明白)이 임진왜란 직후에 들어와 정착하였다. 2000년 통계청이 조사한 인구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주 정씨는 전국에 총 9만 4465가구, 30만 3443명이 거주하고 있다.

[연원]

시조 지백호는 삼한 시대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의 하나인 진지부(珍支部) 촌장으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왕으로 옹립한 공으로 신라 개국 좌명공신이 되었고, 32년(유리왕 9) 진지부가 본피부(本彼部)로 개칭되면서 낙랑후(樂浪侯)에 봉하여졌다. 516년(법흥왕 3)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되었고, 658년(태종 무열왕 3) 감문왕(甘文王)에 추봉되었다.

경주 정씨 시조가 된 것은 32년(유리왕 9) 지백호의 5세손 정동충(鄭東沖)이 정씨로 사성(賜姓)되면서였다. 그래서 『경주 정씨 족보(慶州鄭氏族譜)』는 모두가 지백호를 시조로 하고 있다. 그 뒤 후손들은 연일·동래·온양·초계·하동·진양·진주 등 120여 성씨로 분관되었고, 경주 정씨 본종(本宗)은 계림(鷄林)·월성(月城) 등으로 쓰이다 고려 때 문정공(文正公) 정진후(鄭珍厚)가 월성군에 봉해지면서 경주로 고쳐 부르고, 정진후를 중시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 오고 있다.

조선 시대에 문과 급제자 22명을 포함한 총 182명의 과거 급제자를 배출하였는데, 그중 조선 개국 공신 정희계(鄭熙啓)가 잘 알려져 있으며, 임진왜란 때 부산진 첨절제사로서 부산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정발(鄭撥)정희계의 5세손인 군수 정명선(鄭明善)의 아들이다. 이밖에 세종(世宗) 때 좌찬성에 추증된 정지년(鄭知年), 명종(明宗) 때의 성리학 대가 정지운(鄭之雲) 등이 대표적 인물이다.

[입향 경위]

순창 지역 경주 정씨 세거지는 다섯 곳이다. 이 중 동계면 내령리 강촌 마을에는 임진왜란 바로 뒤에 정만적(鄭萬迪)이 경기도 교하(交河)에서 낙향하여 남원부 서쪽 죽방동에서 은거하다가 순창 설씨(淳昌薛氏)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아들 풍곡(楓谷) 정명백이 외가 순창 설씨를 따라 강촌 마을로 옮겨 와 정착한 이래 400여 년 동안 13세가 대를 이어 살고 있다. 증조 정효상[1432~1481]은 이조 판서를 지냈고 좌리공신(佐理功臣)에 녹훈되었다. 동계면에는 서창(西倉) 마을과 상외령(上外靈) 마을에도 경주 정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데, 서창의 경주 정씨는 문헌공파 56세손 정안보(鄭安寶)가 임실군 삼계면에서 동계면 서호리에 이주, 정착하여 70세에 이르며, 1998년 당시 50여 가구가 살았다. 상외령 마을의 경주 정씨는 57세 정만적(鄭萬迪)이 입향한 이후 70세손에 이르며 1998년 당시 30가구가 살고 있었다.

적성면 평지(平地) 마을[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평지리와 구남리를 병합하여 평남리가 됨] 경주 정씨 입향조는 양경공(良景公) 정희계(鄭熙啓)의 후손인 난호정(鸞湖亭) 정두언(鄭斗彦)으로 서울에서 낙향하였다. 구림면 방화리에도 경주 정씨 집성촌이 있는데, 1510년(중종 5) 문헌공파의 후예인 정충이 입향한 이후 그 후손이 세거하고 있다.

[현황]

2000년 11월 1일 현재 순창 지역에는 경주 정씨 201가구, 556명이 살고 있다. 1989년 순창군에서 실시한 인구 통계 자료에 의하면 당시 순창 지역 경주 정씨 집성촌은 다섯 개로 조사되었으나, 현재는 적성면 평남리에 있던 경주 정씨가 서울 등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여 1가구도 남아 있지 않다.

2011년 현재 동계면 내령리 강촌 마을에 14가구, 서호리 서창 마을에 51가구, 수장리 상외령 마을에 25가구, 구림면 방화리 방화 마을에 10가구가 집성촌을 이루며 세거하고 있다. 또한 동계면 수장리 하외령 마을에도 5가구, 현포리 현포 마을에 7가구가 살고 있고, 현포리 신촌 마을, 어치리 어치 마을, 동심리 아동 마을, 오동 마을, 주월리에 각각 1가구씩 살고 있다.

[관련 유적]

구림면 방화리경주 정씨 삼효비가 있다. 삼효자란 조선 영조(英祖) 때의 인물 정시태(鄭時泰)와 그의 손자 정채룡(鄭采龍), 증손자 정상신(鄭商臣)을 말한다. 정시태는 어머니의 병환이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어머니에게 마시게 함으로써 천수를 누리게 하였다고 한다. 정채룡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를 모셨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색동옷을 입고 재롱을 부려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렸으며,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시묘를 살았다. 정상신은 가난한 살림에도 어머니를 모시는 데 한 치 소홀함이 없었으며, 시묘를 살 때 효심에 감동한 호랑이가 그를 지켜 주었다고 전한다. 삼효비각은 6·25 전쟁 때 불탔으나 최근에 다시 세웠다.

동계면 현포리 자치 센터 내에 2007년 9월에 세워진 경주 정씨 충순위공 정희교의 14세손 서암(西巖) 정만조(鄭萬朝)의 공적비가 있다. 정만조는 사회 복지와 장학 사업에 수억 원을 기탁하여 고향 발전과 인재 육성에 기여한 공이 컸다고 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