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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리의 유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785
한자 鼎山里-由來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정산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정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12월 - 「정산리의 유래」 『순창의 구전 설화』상에 수록
관련 지명 정산리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정산리
성격 지명 유래담|풍수지리담
주요 등장 인물 부자|대사
모티프 유형 욕심 많은 부자|대사의 응보|명당 훼손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정산리에서 마을 이름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정산리의 유래」는 솥을 뒤엎어 놓은 형상을 한 마을에 가마솥의 배꼽에 해당하는 지형을 부자 스스로 훼손하게 유도하여 온 마을을 망하게 하였다는 풍수지리담이자 지명 유래담이다. 인계면 정산리는 인계면 소재지에서 약 500m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마을로, 선암산에서 내려온 산맥 아래 동남쪽을 향하여 있다. 정산리의 뒷산은 노란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 즉 '황계 포란(黃鷄抱卵)'의 형상이어서 원래 '객산리'라고 불렸던 동네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12월 양상화가 엮어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구전 설화』상의 63~65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지금부터 약 300년 전 선암산 아래 용샘 바위 아래쪽에 경주 이씨가 집성촌을 이루며 사는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에는 큰 부자가 살고 있었는데, 욕심이 아주 많아 시주승이 동냥을 오면 오히려 바랑을 빼앗을 정도로 인색하였다. 그래서 그 인근은 물론 멀리 외지에까지 욕심쟁이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소문이 퍼지자 어느 대사가 욕심 많은 그를 깨우치고자 이 마을을 찾았다. 그런데 이 부자는 대사의 말에 귀도 기울이지 않았다. 대사는 말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는 부자에게 말하였다.

"시주승의 바랑을 뺏을 것이 아니라 저 앞산에 있는 바위 위의 돌을 굴려 버리면 더욱 큰 부자가 될 것인데, 겨우 불쌍한 시주승의 바랑을 뺏느냐? 그것이 얼마나 된다고."

이 말을 들은 욕심 많은 부자는 귀가 솔깃하였다. 부자가 된다는 말에 당장 마을 사람들을 동원하여 바위 위의 돌을 굴려 버렸다. 이 일을 지켜보던 대사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이어 마을에 큰 불이 났다. 불은 마을을 모두 불태웠고, 사람들도 죽어 결국 마을은 폐허가 되었다.

산 위의 바위에 있던 돌을 굴렸더니 불이 난 이유는 이 마을의 터가 솥이 엎어져 있는 형상인데, 앞산에 있는 바위 위의 돌이 바로 가마솥의 배꼽이었던 것이다. 가마솥의 배꼽을 떼어 버렸기 때문에 솥이 터져 솥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없어 마을이 패망하게 된 것이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이 마을을 정산리(鼎山里)라고 불렀다.

[모티프 분석]

「정산리의 유래」의 주요 모티프는 '욕심 많은 부자', '대사의 응보', '명당 훼손' 등이다. 「정산리의 유래」는 풍수지리를 이용하여 욕심 때문에 시주승의 바랑까지 빼앗는 부자를 징치한다는 대사의 이야기로, 전국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장자못 설화'의 변이형이다. 「정산리의 유래」는 인간의 욕심을 경계하는 내용으로, 풍수지리와 관련된 설화에서 흔하게 나타나는 '명당 훼손'의 모티프도 드러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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