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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적굴과 여인의 슬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815
한자 盜賊窟-女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집필자 박정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2년 12월 - 「도적굴과 여인의 슬기」 『순창의 구전 설화』상에 수록
성격 기지담|지명 유래담
주요 등장 인물 도적|하씨|하씨의 부인
모티프 유형 여인의 기지로 위기 모면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서 도적굴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도적굴과 여인의 슬기」는 졸지에 추령 고개에서 활개를 치는 도적의 무리로 몰린 한 사람이 부인의 기지로 포졸에게 잡혀 가지 않고 위기에서 벗어났다는 여인의 기지담(奇智談)이다. 또한 도적들이 모여 살던 골짜기라서 도적굴이라고 불린다는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2002년 12월 양상화가 엮어 순창 문화원에서 간행한 『순창의 구전 설화』상의 211~213쪽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순창군 복흥면과 정읍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 능선에 인적이 드문 고갯길이 있다. 이 고갯길의 이름은 추령이다. 옛날에 인적이 드문 이 고갯길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의 돈이나 물건을 털어서 사는 도적떼가 있었고, 이들이 무리를 이뤄 산골짜기에 형성한 마을의 이름이 도적굴이다.

이 골짜기에 모여든 수십 명의 도적들은 추령을 지나가는 행인들의 봇짐을 터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인근 마을에서 여인들까지 잡아다가 마누라를 삼기도 하였다. 또한 인근 마을에 있는 소를 훔쳐다가 잡아먹기도 하였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를 관아에 고발할 것을 염려하여 잡은 소의 고기를 마을 주민들의 사립문에 밤에 몰래 걸어 놓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밤에 다시 가서 소고기가 없으면 자기들한테 동조한 것으로 간주하고 주소와 이름을 적어 놓았다.

도적굴에 도적떼가 모여들어 많은 사람이 살게 되니 그 횡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그 골짜기에 도적들이 모여 산다는 소문도 나게 되어 결국은 관아에서도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관아에서는 골짜기의 도적을 소탕하기 위해 포도청과 합동으로 도적굴을 급습하여 도적떼를 소탕하였다. 도적들의 집을 수색하는 과정에서 소고기를 얻어먹은 사람들의 명단이 나오자 포도청에서는 그 명단에 있는 사람들도 도적들과 한패라고 여기고 이들을 잡아들였다. 누가 그랬는지도 모른 채 사립문에 걸려 있던 소고기를 먹었다는 이유로 억울한 누명을 쓴 주민들도 많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 마을에 하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이 사람도 소고기를 먹었기에 ‘도적기’에 기록되어 있었다. 영락없이 포졸들에게 끌려갈 처지가 된 상황에서 하씨의 부인은 한 가지 꾀를 내었다. 부인은 남편을 안방에 눕혀 놓고 하얀 홑이불을 덮어 놓은 뒤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포졸이 들이닥쳤지만 이미 죽은 사람을 어찌할 수 없어 결국 그냥 돌아갔다. 포졸들이 돌아간 뒤 하씨와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인의 기지로 하씨는 체포되지 않고 포도청의 소탕 작전은 끝이 났다.

이후 사람들은 하씨를 큰 도적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이 모두 큰 도적놈이라고 하니 불안하여 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느 날 밤 하씨는 가솔들을 데리고 그 마을을 떠나 버렸다. 지금까지도 이 골짜기는 도적굴이라고 하여 전해 내려오고 있다.

[모티프 분석]

「도적굴과 여인의 슬기」의 주요 모티프는 ‘여인의 기지로 위기 모면’이다. 추령 고개의 골짜기에 모여 살던 도적들은 인근 주민이 관아에 고발할 것을 염려하여 고기를 몰래 갖다 주어 먹게 하였다. 그리고 그 고기를 먹은 마을 사람을 기록하여 도적떼와 한패로 묶어 버렸다. 「도적굴과 여인의 슬기」는 포도청의 소탕 작전에서 억울하게 도적 누명을 쓰게 된 하씨가 부인의 슬기로 위기를 모면했다는 기지담인데, 결국 졸지에 큰 도적이 된 하씨는 마을에서 살지 못하고 떠날 수밖에 없었다. 도적들이 모여 살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도적굴은 지금까지도 그 골짜기의 지명으로 남아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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