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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흥면 향토방위 의용 경찰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069
한자 福興面鄕土防衛義勇警察隊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노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0년 11월연표보기 - 복흥면 향토 방위 의용 경찰대 창설
최초 설립지 복흥면 향토방위 의용 경찰대 -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성격 의용 경찰대

[정의]

1950년 11월에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에 설치된 지역 방위 의용 경찰대.

[설립 목적]

6·25 전쟁 기간 동안 순창군 일대에서 빨치산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빨치산들에 의한 민간인들과 군경의 피해가 커지게 되었다. 이에 순창군에서는 지역을 방위하기 위한 지역 방위 특공대들이 설치되었다. 복흥면 향토방위 의용 경찰대는 복흥의 수복과 관련해 생겨났다.즉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국군이 인민군에게 밀리자 복흥면도 7월 중순 경찰 지서가 철수하고 치안 공백 상태가 되었다. 좌익은 남로당 순창군당 지도하에 인민 공화국 복흥면당을 조직하고 우익에 대한 가산 몰수와 인민재판을 시작하였다. 우익 인사들은 일단 정읍으로 피신해 박명규 집 행랑채를 빌려 본부를 마련하고 탈출한 복흥 출신 청·장년을 규합해 수복 계획을 세웠다. 1950년 11월 15일 33명이 순창에 도착하여 순창 경찰서에 신고하고 복흥 수복 의지를 밝히니 순창 경찰서장은 이들을 의용 경찰대로 편성하였다. 대장 김종환, 부대장 황용택으로 하고, 이들 중 몇 명은 국민 방위군 순창 대대에 입대했고, 노년층은 구련을 발족시켜 위원장에 김학수가 선출되어 의용 경찰대에 대한 후원과 일반인 구호에 전력하였다. 복흥면 향토방위 의용 경찰대에 편성된 인원은 26명이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복흥면 향토방위 의용 경찰대 대원들은 매일 강한 훈련과 군경 합동 작전에 참여해 심신을 단련하였다. 12월 4일 당시 순창에 주둔하고 있던 육군 11사단 20연대 1대대 4중대의 1개 소대와 복흥 지서 병력 30명, 의경 26명이 복흥 수복을 시작하였다. 12월 16일 마침내 복흥 소재지에 입성하였는데, 당시 인민군들은 복흥 초등학교 교정에서 인민재판을 하던 중이었다. 아군 진격 사실을 알고는 산속으로 도망하였다.

복흥 수복 부대는 정동 고지에 진지를 구축하고 주간에는 잔비 토벌과 입산자 귀순 활동을 벌이고, 야간에는 진지 사수로 약 1개월간 작전하면서 면민들의 호응을 받았다. 그 사이 학도병도 조직되어 병력 20여 명이 증강되었다. 그러나 1·4 후퇴의 여파로 1951년 1월 15일 군 작전 명령에 따라 병력 전원이 순창 경찰서로 철수하였다. 같은해 2월 10일 작전 계획에 따라 복흥 지서 병력 의경 포함 57명과 국민 방위군 30명은 복흥면 2차 수복에 나서게 되었다. 1951년 3월 10일 정동 고지 전투, 8월 19일 추월산 전투, 낙덕 전투, 백방산 전투, 서마리 전투, 가마골 전투 등 수많은 전투를 치른 끝에 결국 수복에 성공하게 되었다.

복흥면 향토방위 의용 경찰대는 총과 옷 등을 직접 준비하고 아군 표시를 위해 왼쪽 어깨에 천을 달아 비표로 표시하였으며, 빨치산들의 활동을 저지하고 지역을 방위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하다 6·25 전쟁 이후 해산되었다.

[현황]

1958년 4월 생존한 의용 경찰 대원들이 복흥면 수복 동지회를 결성하였다. 1962년 4월 복흥면 수복 동지회와 지역민이 힘을 합쳐 각처에 산재해 있는 의용 경찰대의 유골들을 복흥면 정산리 616번지에 묘역을 조성, 안장하여 후손들에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역사 체험의 산 교육장으로 조성하였다. 부지는 863.95㎡이고, 한국 전쟁 때 빨치산 토벌 작전에서 전사한 의용 경찰, 방위군 청년단원, 공무원 등이 안치되어 있다. 명단은 다음과 같다.

조영기[1951년 8월 석보 전투], 박인기[1951년 8월, 낙덕 전투], 유기문[1952년 7월, 답동 전투, 순경], 양대길[1951년 7월, 밀재 전투, 순경], 박문용[1951년 3월, 정동 전투], 박중학[1951년 3월, 정동 전투], 박재근[1951년 3월, 정동 전투, 순경], 박재완[1951년 3월, 정동 전투], 변재준[1952년 8월, 금과 전투], 김봉술[1951년 7월, 정동 전투, 순경], 박영두[1951년 7월, 밀재 전투, 순경], 박찬중[1951년 3월, 정동 전투], 강승원[1951년 3월, 정동 전투], 신현구[1951년 3월, 정동 전투], 유필수[1951년 7월, 밀재 전투, 순경], 구창수[1951년 7월, 밀재 전투, 순경], 김판길[1951년 8월, 정동 전투], 김진호[1951년 3월, 정동 전투], 황종연[1951년 7월, 밀재 전투], 유한열[1951년 7월, 밀재 전투], 장채섭[1952년 6월, 임실 전투]

1988년 6월에는 복흥면 수복 동지회에서 충혼탑을 건립하였는데, 기단 높이 1.2m, 탑 높이 1.3m 이다. 복흥면 수복 동지회에서는 매년 6월 호국 보훈의 달 현충일에 복흥 면장과 수복 동지회 회원들, 경찰 서장 이하 관계자 등이 모여 추념 행사를 거행한다.

[의의와 평가]

복흥면 향토방위 의용 경찰대는 국난 속에서 향토를 방어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일어난 조직으로서, 국가에 대한 지역민의 충성을 엿볼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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