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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 학원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071
한자 盧嶺學院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주철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설립 시기/일시 1951년연표보기 - 노령 학원 설립
성격 교육 기관

[정의]

1951년 조선 노동당 전북도당이 전라북도 순창군에 설치했던 교육 기관.

[설립 목적]

노령 학원조선 노동당 전북도당빨치산을 교육시키기 위해 도당 차원에서 회문산 북서쪽 해발 780m의 장군봉 아래에 당학교로 설립하였으며 유격대원을 양성하기 위한 예비 교육 과정을 담당하였다.

[변천]

노령 학원은 1951년 초에 문을 열었으며 40여 명의 인원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1기를 마지막으로 더 이상 활성화되지 못했다. 이유는 도당 사령부가 군경 토벌대의 공세로 사령부의 아지트[근거지]를 운장산으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노령 학원은 주로 17세 이상의 남자들로 구성되었으며 여자들은 없었다. 학생들은 임실군이나 순창군의 해방구 주민들로서 권유를 받았거나 아니면 자원 입교한 사람들이었다. 교육 기간은 하루에 5~6시간씩 일주일에 서너 번 2주간 교육을 받았다. 그들이 교육을 받는 동안 학교에서 숙식을 제공하였다. 교육은 주로 유격 전술과 정치학 강좌로 편성되었는데, 유격 전술은 조철로[경상남도 거제 출신], 맹봉, 백암 등이 가르쳤고, 정치학 강좌는 최태환이 담당하였다.

최태환은 1929년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나 1947년 만주의 팔로군 군정 대학을 졸업한 뒤 인민군 역사 기록부장 및 제6사단 정치 보위부 책임 장교로 복무하던 중 6·25 전쟁을 맞이하였다. 낙동강 전선에서 교전 중 부상당한 후 퇴로가 막혀 전북도당 유격대에 합류하여 ‘외팔이 부대’ 부대장으로 활약하였다. 최태환은 만주의 팔로군 군정 대학에서 배웠던 ‘인민과 우리들은 물과 물고기의 관계’라는 대민 관계를 주로 역설했고, ‘6·25 전쟁은 동족간의 싸움이 아니라 미제와의 싸움이다’, ‘이 전투는 우리들이 반드시 승리하고야 만다’라는 제목으로 6·25 전쟁에 관한 의의를 설명하고 투쟁심이 고취되는 내용을 강의하였다.

[의의와 평가]

노령 학원조선 노동당 전북도당의 유격대원을 양성하기 위한 예비 교육 과정으로 설치되었다. 조선 노동당 전북도당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빨치산 및 임실군과 순창군 지역의 해방구에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하는 데 주요한 연구 소재이다. 특히 최태환은 1951년 겨울 군경 토벌대에 의해 체포된 이후 9년간 대전 형무소에서 복역하고 1960년 10월에 출소하였다. 최태환은 1989년에 『젊은 혁명가의 초상』이란 저서를 남기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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