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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091
한자 回文山-回門山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정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회문산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임실군 강진면 회진리
해당 지역 소재지 회문산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지도보기
성격
높이 830m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 임실군 강진면 회진리 경계에 있는 산.

[명칭 유래]

회문산에는 바위로 된 천연의 문이 있어 ‘회문(回文)’을 ‘회문(回門)’으로 쓰기도 한다. 예부터 회문산은 영산으로 이름났는데, 풍수지리의 대가인 홍성문 대사가 그 산에서 도통하여 『회문산가(回文山歌)』 24혈(穴)의 명당 책자를 만들었다. 이 책에는 회문산 정상에 24명당과 오선위기(五仙圍碁)가 있는데, 그곳에 관(棺)을 보토(補土)하여 묘를 쓰고 나면, 당대부터 발복하여 59대까지 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을 입증하듯 회문산 정상과 주변에는 많은 묘들이 자리 잡고 있다. 반석같이 웅장한 바위들이 약 4㎞에 걸쳐 뻗어 있고 높고 우뚝 솟은 봉우리는 항상 구름에 잠겨 있다고 옛 문헌에 나와 있다.

[자연환경]

회문산은 순창군 북부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줄기는 백두 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서북쪽으로 갈려나온 금남 호남 정맥이 완주군과 진안군의 경계인 주화산에서 북쪽으로 금남 정맥을 보내고 호남정맥은 남진하게 된다. 이 정맥은 내장산, 백암산, 추월산을 지나 용추봉에서 동쪽으로 회문산 산줄기를 나누고 강천산, 봉황산, 설산을 형성한 뒤 전라남도 광양시 백운산으로 뻗어간다. 용추봉에서 동진하는 회문산 산줄기는 밤재, 세자봉, 여분산, 장군봉을 지나 회문산을 일구어 놓는다. 회문산의 물줄기는 치천과 일중천을 통해 섬진강에 합수되어 남해의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회문산 주봉인 회문봉을 위시하여, 장군봉, 깃대봉 등 수많은 연봉과 골짜기들이 첩첩으로 둘러싸여 있다. 구림천과 옥정호에서 흘러내린 섬진강회문산을 휘감고 장천을 따라 흘러간다. 회문산에 분포하는 식물은 신갈나무·떡갈나무·졸참나무·굴참나무 등 참나무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단풍나무·산벗나무·철쭉·진달래·붉나무·개옻나무·으름·담쟁이덩굴 등도 서식한다.

[현황]

해발 830m의 회문산은 영산으로 불릴 만큼 신비로운 산이다. 산의 둘레가 순창, 임실, 정읍, 담양 등 수 개의 시·군에 접해 있다. 회문산에는 고려 말 무학 대사(無學大師)이성계를 위해 기도했다는 만일사(萬日寺)와 무학 바위 전설이 전해온다. 다섯 선인(仙人)이 바둑을 두는 모양의 오선위기(五仙圍碁)라는 명당이 있어 예로부터 풍수객이 많이 드나들고 있다. 회문산 금강암은 청학동 도인으로 불리는 갱정유도(更定儒道)의 발상지로서, 신도들이 매년 산제를 올리고 있다.

회문산동학 혁명과 한말의 일제 침략에 항거하던 면암(勉庵) 최익현(崔益鉉), 돈헌(遯軒) 임병찬(林秉瓚), 양윤숙(楊允淑) 의병 대장의 활동 무대가 되었고, 광복 이후에는 여수·순천 반란군의 잔당이 찾아들어 총격이 벌어지기도 했다.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빨치산의 근거지로서 뼈아픈 역사가 깃든 산이기도 하다. 100만 권의 책이 팔려 화제가 되고, 관객 70만 명을 기록했던 영화 「남부군」빨치산 활동 무대가 바로 회문산 주변이다. 지금은 이들의 근거지였던 장군봉 아래 287만 6033㎡의 휴양림이 조성되었고, 정치 간부 정치 훈련장이었던 노령 학원 자리는 삼림욕장으로 가꾸어졌다.

산림청에서 1993년에 개장한 회문산 자연 휴양림은 1일 300~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며, 회문산 역사관, 양민 학살 위령탑, 곤충 표본실, 숙박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회문산에는 6·25 전쟁 당시 700여 명의 빨치산이 주둔했던 빨치산 사령부가 있었으며, 저항과 투쟁, 격동의 근현대사로 인한 아픈 상처를 씻기 위해 역사 테마 관광지로 조성되었다. 남부군 사령부 복원, 역사 기행 테마 관광 코스 발굴, 국민정신 교육관 건립, 비목 공원 조성, 비목제 행사 개최 등을 추진하고 있다.

또한 김대건(金大建)[1821~1846] 신부가 처형을 당할 때, 3족이 멸하는 화를 면하기 위하여, 동생 김란식과 조카 김현채가 영산인 회문산으로 찾아들어 기거하였으며, 아직도 그들의 묘소가 남아 있다. 회문산 북동 능선 끝봉에 ‘조평 선생 사패지(趙平先生賜牌地)’라는 깃대를 꽂아 놓고, 이름을 깃대봉으로 부른다. 조선 시대 학문과 창의에 빛나던 조평(趙平)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33.05㎢[1,000만 평]의 사패지(賜牌地)를 하사하였고, 사패지에 깃대를 꽂도록 하였다.

회문산 중턱에 있는 만일사 유허비에는 고려 말 이태조의 등극을 기원하기 위해 무학 대사가 만 일 동안을 기도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약간 검붉은 색깔에 윤기가 돌고 감칠맛이 나는 순창 고추장이 세상에 알려진 계기는 고려 말 무학 대사이성계의 등극을 위해 만일사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이성계무학 대사를 찾아오다가 어느 농가에서 고추장을 먹어보고, 그 맛을 잊지 못해 등극 후 순창 현감에게 순창 고추장을 진상토록 한 데서 유명해졌다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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