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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령리 절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108
한자 內靈里-
이칭/별칭 갈궁사지(葛宮寺址)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터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내령리 산72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태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내령리 절터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내령리 산72(N35°26'33.8"/E127°17'26.5")지도보기
성격 절터
지정 면적 55,394㎡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내령리에 있는 조선 시대의 절터.

[변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에는 “내령리 동쪽으로 약 오백간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단으로 추정되는 천연석 2~3개 및 와편이 현존한다.”고 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내령리 절터갈궁사지(葛宮寺址)라고 부른다. 주민들에 따르면 내령리 절터 아랫마을에 장수 황씨의 집성촌이 있었는데, 이들의 세도에 견디지 못하여 승려들이 절을 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위치]

순창군 동계면 내령리 내령 보건소에서 내령길을 따라 풍악산(楓岳山) 방향으로 약 960m를 간 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약 460m 정도를 더 가면 길이 끝나는 지점이 나오는데, 그곳에서 산길로 약 80m 정도 올라가는 곳에 위치해 있다. 지정 면적은 5만 5394㎡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1940년경 이곳에서 약 30㎝가량의 금동불이 발견되었다고 하며 주변에 좌불상대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확인할 수 없다.

[현황]

현재 내령리 절터에는 밤나무 밭이 조성되어 있다. 동쪽의 계곡에 석단으로 추측되는 석재 조각 2~3개가 흩어져 있고 주변에 기와 조각과 자기 조각, 토기 조각 등이 흩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폐사된 사찰의 경우 대부분 사격(寺格)이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조선 시대는 유림세력의 확장에 따라 작은 사찰이나 암자의 경우 지방 유림의 세력으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내령리 절터의 경우도 그러한 경우로 판단되며, 이러한 경우 사암(寺庵)을 지키던 승려들은 스스로 모든 유물을 땅에 묻거나 태워 버리고 절을 떠나는 식으로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 하였다. 따라서 문헌 근거가 없는 경우 당시의 자취를 찾는 작업은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역(寺域)의 범위와 창건 연대, 경영 시기 등의 성격 규명을 위한 정밀 발굴 조사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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