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야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436
한자 勞動夜學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기관 단체/학교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헌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계몽 운동

[정의]

1920년~1930년대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농촌 계몽을 목적으로 설립 운영된 비정규 학교.

[교육 목표(교훈 포함)]

농촌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설립된 노동야학(勞動夜學)은 교육을 통하여 노동자와 농민들의 인격적 주체로서의 성장을 돕고 문맹 퇴치를 통한 계급적 각성과 민족정신을 일깨워 저항 민중 문화를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변천]

일제 강점기 다양한 교육 기관이 있었지만 제도 교육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지역 유지와 사회단체들이 설립한 야학에서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부여 지역의 대표적인 야학은 1921년 남면 대선리에 세워진 노동야학이다. 부여 지역의 노동야학은 지역 내 유지들과 청년들의 협의로 설치되었다. 대선리 노동야학의 학생은 1925년을 기준으로 40명이었으며 교사들은 무보수로 학생들을 지도하였다. 교사는 이상호(李相湖), 김윤성(金允成), 구병열(具秉悅), 장종원(張鍾遠), 장정원(張精遠), 이만순(李萬順) 등이었다.

이후 1926년~1927년에는 대왕리[현 왕포리]와 수원리 등 다수 지역에 노동야학이 개설되었다. 대왕리 노동야학은 농업보습학교 학생 민창식(閔昌植)과 공립 보통학교 교사들이 교육을 담당하였다. 수원리 노동야학의 학생은 40명 정도였다.

부여 지역의 노동야학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격이 변화하였는데 설립 주체와 교육 내용에서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1930년 12월에는 임천면의 칠산노동조합과 노동친목회의 발기로 칠산 노동야학이 개설되었다. 칠산 노동야학에서는 학예회와 운동회, 소인극(素人劇)을 개최하였고 혁명가를 가르쳤는데 저항 민중 문화를 창출하는 효과가 있었고, 이러한 과정에서 사회주의 사상이 보급되었다.

1930년대 노동자 단체가 설립한 노동야학은 문맹 퇴치와 같은 계몽 운동을 넘어 노동자 교육을 통한 사회 운동으로 발전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고, 야학 운동으로 발전하였다. 민중 야학의 세력이 강해지자 조선총독부는 야학을 강제로 해산시킨 후 1933년경부터 황국 신민 교육을 위하여 농촌 진흥회 중심의 관제 야학을 설치하기 시작하였다.

[교육 활동]

일제 강점기 부여 지역에 설립된 노동야학은 경제적으로 빈곤한 일반 대중과 자녀들을 대상으로 무상 교육을 실시하였다. 노동야학의 경비는 대개 지역 유지들의 기부금과 찬조금 등으로 운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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