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7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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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敬輿 |
영어공식명칭 | Lee Gyeongyeo |
이칭/별칭 | 직부(直夫),백강(白江),봉암(鳳巖),문정(文貞)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근호 |
출생 시기/일시 | 1585년 - 이경여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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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01년 - 이경여 생원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609년 - 이경여 증광시 문과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11년 - 이경여 예문관검열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17년 - 이경여 충원현감 부임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이경여 사간원헌납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23년 - 이경여 이조좌랑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24년 - 이경여 이조정랑 역임 |
활동 시기/일시 | 1625년 - 이경여 경상도 암행어사 파견 |
활동 시기/일시 | 1643년 - 이경여 우의정 제수 |
활동 시기/일시 | 1650년 - 이경여 영의정 제수 |
몰년 시기/일시 | 1657년 - 이경여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83년 - 이경여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음 |
묘소|단소 | 이경여 묘소 -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산31-3 |
사당|배향지 | 부산서원(浮山書院)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136번길 11-5[진변리 산3-3] |
사당|배향지 | 동산서원(東山書院) 터 -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전주(全州) |
대표 관직 | 영의정 |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 문신.
[가계]
이경여(李敬輿)[1585~1657]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직부(直夫), 호는 백강(白江)·봉암(鳳巖)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구수(李耉壽)이고, 할아버지는 이극강(李克綱)이다. 아버지는 이유록(李綏祿)이고, 어머니는 송제신(宋濟臣)의 딸 진천 송씨(鎭川 宋氏)이다. 첫 번째 부인은 윤승훈(尹承勳)의 딸 해평 윤씨(海平 尹氏)이고, 두 번째 부인은 임경신(任景莘)의 딸 풍천 임씨(豐川 任氏)이다. 동생은 이정여(李正輿)이고, 아들은 이민장(李敏章)·이민적(李敏迪)·이민서(李敏叙)·이민채(李敏采)이다.
[활동 사항]
이경여는 1601년 생원시에 합격하였고, 1609년(광해군 1) 증광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1년 예문관검열을 시작으로 예문관의 대교와 봉교를 지냈고, 사간원정언과 성균관직강을 거쳐 경기도도사로 부임하였다. 1617년 이천현감에 제수되었으나 부인이 사망하여 부임하지 않았으며, 4월에 충원현감으로 나갔다.
이경여는 인조반정 이후인 1623년(인조 1) 사간원헌납·홍문관부교리·이조좌랑을 거쳐 1624년 이조정랑을 역임하였다. 1625년에는 경상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돌아와서 홍문관응교와 홍문관교리, 홍문관전한, 사헌부집의, 의정부사인 등을 지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호남에 있다가 강화(江華)의 행재소(行在所)로 나아가서 사헌부집의와 승정원승지를 역임하였고, 충청도관찰사가 되었고 1628년 성균관대사성을 지냈다. 1629년(인조 7) 이조 참의가 되었다가 가을에 부여 백마강 가에 정거(定居)하였다. 1630년 청주목사로 부임하였고, 1631년 홍문관부제학이 되었다가 어머니의 병환을 이유로 사직하고 부여로 내려왔다. 1633년 전라도 관찰사를 역임하였고, 다음 해 다시 부제학이 되었으나 사직하고 부여로 내려왔다.
이경여는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仁祖)를 수행하여 남한산성으로 들어갔으며, 전란이 종식된 뒤에는 경상도관찰사·형조판서·여주목사를 지냈다. 1642년 이계(李烓)가 청(淸)의 연호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밀고하자 주모자로 심양(瀋陽)에 억류되었다가 1643년 소현세자(昭顯世子)와 함께 귀국한 뒤 1643년 우의정이 되었다. 1646년 세자빈인 강빈(姜嬪)의 사사(賜死)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되었고, 1648년 삼수와 아산으로 이배되었다.
이경여는 1650년(효종 1) 유배에서 풀려나 영의정에 올랐으나, 사은사로 청나라에 다녀온 뒤 청 조정의 압력으로 영중추부사로 옮겼다. 1654년 청나라에서 사신이 파견되었을 때는 지방에 피신하기도 하였고, 1657년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문집인 『백강집(白江集)』이 있다.
[묘소]
이경여의 묘소는 경기도 포천시 내촌면 음현리 산31-3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경여는 사망한 뒤 부여 부산서원(浮山書院), 진도 봉암사(鳳巖祠), 고창 동산서원(東山書院)에 배향되었다. 1683년(숙종 9)에는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하사받았다.
1700년(숙종 26) 손자 이이명(李頥命)이 이경여의 뜻을 기리기 위해 백마강가의 암벽에 새긴 부산각서석과 대재각(大哉閣)이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