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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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窺岩 浮山書院 |
영어공식명칭 | Busanseowon confucian academy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136번길 11-5[진변리 산3-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장인성 |
건립 시기/일시 | 1719년 - 규암 부산서원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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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19년 - 규암 부산서원 사액 |
훼철|철거 시기/일시 | 1871년 - 규암 부산서원 훼철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77년 - 규암 부산서원 복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5년 10월 30일 - 규암 부산서원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28호 지정 |
현 소재지 | 규암 부산서원 -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136번길 11-5[진변리 산3-3] |
성격 | 서원 |
양식 | 전학후묘식 |
정면 칸수 | 3칸[사우]|3칸[서재] |
측면 칸수 | 3칸[사우]|2칸[서재] |
문화재 지정 번호 |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28호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사원.
[개설]
규암 부산서원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1574~1656]과 백강(白江) 이경여(李敬輿)[1585~1657]를 배향한 서원이다. 김집이 지방관으로 출사한 최초의 부임지가 부여이다. 김집은 1623년부터 4년 동안 부여현감으로 재직하며 교화를 우선하는 선정을 베풀었다. 이후 동부승지, 우부승지, 공조참판, 대사헌, 이조판서, 좌참찬, 판중추부사 등 중앙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김집은 이이의 학문과 김장생의 예학을 계승하고 송시열에게 전하여 기호학파가 형성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김집은 아버지 김장생과 함께 조선의 대표적인 예학자로 부자가 문묘에 배향되었다.
이경여는 인조와 효종 때 대사헌, 우의정, 영의정 등 중앙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배청친명파(排淸親明派)로 청나라 심양에 억류되었던 이경여는 효종의 북벌 계획에 참여하여 십만 양병을 목표로 군비와 국방 체제의 확립을 꾀하였다. 이경여는 시문에 능하고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당파에 초연하고 청렴결백하여 후대의 사표가 되었다. 말년에 부여의 부산에 은거하였다. 김집과 이경여는 학문과 도덕은 물론이고 17세기의 시대적 과제인 북벌 운동을 이끈 인물들이다. 규암 부산서원은 2015년 10월 30일 부여군 향토문화유산 제128호로 지정되었다.
[위치]
규암 부산서원은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136번길 11-5[진변리 산3-3]에 있다. 부여읍에서 백제교를 건너 오른쪽으로 백마강을 따라가면 나오는 진변리의 부산(浮山) 능선 아래에 있다.
[변천]
규암 부산서원은 1719년 건립되었고, ‘부산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았다. 1871년(고종 8) 훼철되었으나 1977년 예산군 덕산면 시량리에 있던 충의사(忠義祠) 건물을 이건하여 규암 부산서원을 복원하였다.
[형태]
규암 부산서원은 위쪽 높은 곳에 사우를 두고 아래쪽 낮은 곳에 서재를 둔 전학후묘식 배치이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고, 사우 앞에는 정면 3칸의 솟을삼문이 있다. 서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황]
규암 부산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9월 18일 추향제를 지내고 있다.
[의의와 평가]
규암 부산서원은 부여 지역과 인연이 깊었던 김집과 이경여의 학문, 덕행, 공적을 기리는 서원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