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402 |
---|---|
한자 | 睦進恭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로 252-18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대남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426년 - 목진공 묘표 건립 |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716년 - 목진공 묘갈 건립 |
현 소재지 | 목진공 묘 소재지 -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2(N37°39'49.4876"E127°01'26.9375") |
성격 | 묘 |
양식 | 단분 |
관련 인물 | 목진공(睦進恭)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사천 목씨 묘역에 있는 조선 전기 문신 목진공의 묘.
[개설]
목진공(睦進恭)은 고려 말 사마시에 입격하였고, 조선조에 들어와 태조·태종·세종을 차례로 섬겼다. 문장과 경학, 청덕 및 재간으로 삼대 조정의 명신이 되었다. 내직으로는 이조 낭관·판통례 겸 상서 소윤·예조참의·병조참의·형조참의·공조참의·승정원 대언·한성 부윤·호조참판을 지냈고, 외직으로는 경기도와 강원도의 관찰사를 지냈다.
부인은 면천군(沔川郡) 사습(事習)의 딸인 안산 안씨(安山安氏)로, 아들 둘을 낳았는데 목보남(睦寶男)은 군수를 지냈고, 목계남(睦繼男)은 참군을 지냈다. 목진공의 묘는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위치를 잃어버렸다가 뒤에 찾았다. 부인 안산 안씨의 묘는 충청남도 공주시 유성면 도장동 묘향의 언덕에 있다.
[위치]
목진공 묘(睦進恭墓)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방학동 산62번지에 위치해 있다. 사천 목씨 묘역은 양효공 안맹담과 정의 공주 묘역이 위치한 능선의 동쪽 계곡부에 자리하고 있다. 묘역 입구에 목서흠 신도비가 있고, 북쪽으로 50m 더 올라가면 능선 가장 위쪽에 충정공 목서흠 묘역이 있으며, 그 아래에 목진공·목림일(睦林一)·목천현(睦天顯)의 묘가 차례로 있다.
[형태]
목진공 묘는 단분 단독장으로 좌향은 남향이다. 묘표 2기, 혼유석, 상석, 향로석, 문인석 등 석물과 근래에 건립한 망주석을 갖추고 있다. 묘표는 모두 원수형(圓首形)으로, 봉분 앞과 우측에 세워져 있다. 우측 묘표는 비좌와 비신이 한 몸으로 이루어진 1면 비이다. 크기는 비신이 32×12×60㎝이다. 묘갈은 높이 103㎝, 너비 50㎝, 두께 18㎝ 크기이다. 봉분 앞의 묘표는 3면 비이다. 문인석은 복두 공복(僕頭公服)을 착용하였고, 홀을 맞잡은 손을 소매 안에 넣어서 표현하였다. 복두 뒤에는 각(脚)을 한 차례 꼬아서 위로 올렸으며[交脚], 허리 뒤에는 야대(也帶)[조선 시대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증서를 받을 때 매던 띠. 한 끝이 아래로 늘어져 ‘也’ 자 모양으로 된다]를 하였다.
[금석문]
오른쪽 묘표 비신 앞쪽에는 ‘가정대부 호조참판 목진공 묘 선덕 병오 사월 일(嘉靖大夫戶曹參判睦進恭墓宣德丙午四月日)’이라 새겨 1426년(세종 8)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봉분 앞 묘표의 비신 앞쪽에는 ‘가정대부 호조 참판 목진공 묘(嘉靖大夫戶曹參判睦進恭墓)’라고 새겼다. 목진공 묘갈(睦進恭墓碣)로 목진공의 8세손인 목임일이 글을 지었고, 9세손인 목천근(睦天根)이 글씨를 썼다. 입석 연대는 ‘숭정 갑신 후 칠십삼 년 사월 일 개립(崇禎甲申後七十三年四月日改立)’으로 1716년(숙종 42)이다. 간략한 가계와 관력이 나와 있다.
[현황]
목진공 묘는 사천 목씨 묘역 안에 위치해 있으며, 후손들에 의해 비교적 보존 관리가 잘되어 오고 있다. 조선 시대의 묘제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