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2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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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泰壹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208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무정 |
창작|발표 시기/일시 | 2000년 11월 9일 - 「전태일」 제1회 공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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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시연장 | 한국 교회 100주년 기념관 -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 135(37.5743682, 127.0004287) |
제작 단체 | 극단 한강 - 인천광역시 |
성격 | 연극 |
감독(연출자) | 장소익 |
출연자 | 최용진|송연수 |
주요 등장 인물 | 분노하는 전태일[1]|의젓한 전태일[2]|공부하는 전태일[3]|기쁜 전태일[4]|슬픈 전태일[5]|발로 뛰는 전태일[6]|절망하는 전태일[7]|분열된 전태일[8]|사랑하는 전태일[9]|지도자 전태일[10]|어린양 부리는 전태일[11]|순덕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서 살다가 노동 환경의 개선을 위하여 분신자살한 노동자 전태일의 생애를 다룬 연극.
[공연 상황]
2000년 11월 9일 한국 교회 100주년 기념관에서 초연되었으며, 2회의 서울 공연과 9회의 지방 순회공연을 하였다. 극단 한강이 제작하였으며 장소익이 연출하였고 최용진과 송연수 등이 출연하였다.
[구성]
「전태일」은 총 11명의 전태일을 등장시켜 전태일의 삶을 다각적으로 들여다본 연극이다. 전태일의 삶을 보는 것뿐만 아니라 노동에서 나오는 소리, 노동에서 나오는 움직임, 노동에서 나오는 정서를 고스란히 무대에 담아 노동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내용]
연극의 배경이 되는 1960년대 말은 농촌의 해체로 도시에 값싼 노동력이 넘쳐나고 있다. 성장과 속도만이 미덕일 뿐 노동 조건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다. 가난에 시달리던 전태일은 언젠가 가족이 함께 살 날을 그리며 동생 순덕을 업은 채 대구에서 상경하고, 순덕을 고아원에 맡긴 뒤 평화 시장 봉제 공장의 시다가 된다. 전태일은 평화 시장에서 순덕 또래의 어린 여공들과 일하게 되는데, 그들은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에 혹사당하며 공부는 꿈도 못 꾼다.
전태일은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의 집에서 청계천 6가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 다니며 아낀 차비로 평화 시장에서 점심을 굶고 있는 시다들에게 풀빵을 사 주며 온정을 베푼다. 그러나 미싱사의 각혈과 부당 해고에는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다. 아버지를 통해 근로 기준법이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자 온정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동료 노동자들을 조직한다. 철야와 야근에 지친 젊은 재단사들에게 근로 기준법을 설명해 주고 여공들에게 글을 가르친다. 근로 감독관을 찾아가 평화 시장의 근로 기준법 위반 실태를 고발하고 폭로한다. 그러나 전태일의 노력에도 평화 시장은 바뀌지 않고 사회의 무관심은 최소한의 근로 조건 개선도 허용하지 않는다. 동료 노동자들 또한 현실의 벽 앞에서 길을 잃고 방황하며 어렵사리 결성한 바보회를 탈퇴한다.
평화 시장을 떠났던 전태일은 공사장 인부의 죽음을 접하며 온 세상이 비정하고 잔혹한 현실 때문에 신음 소리로 가득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현실을 도피할 것이 아니라 고통의 한가운데 있는 평화 시장과 어린 동심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이후 여러 차례의 시위와 노동청 항의 방문을 감행하나 현실의 벽은 높을 뿐이다. 전태일은 몸에 불을 지핀 뒤 “근로 기준법을 지켜라!”, “일요일은 쉬게 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죽는다. 작업장 미싱사들의 몸에서 분열이 일어나고 그 속에서 푸른 싹이 돋고 그 싹은 전태일을 덮는다.
[의의와 평가]
전태일의 삶을 통해 그의 정신적 의지와 노동자들의 삶, 노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였다. 실업자가 늘어 가고 정리 해고가 횡행하는 2012년 현재에도 「전태일」의 ‘노동함은 곧 희망함’ 이라는 메시지는 빛을 잃지 않는다.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208번지는 전태일이 살던 집이 있던 곳으로, 전태일은 1966년부터 쌍문동의 무허가 판잣집에서 어머니 이소선과 함께 살았다. 서울특별시 도봉구에서는 도봉 역사 문화 길을 만들었으며 그 중 7코스를 도봉 현대사 인물 길로 선정하였다. 도봉 현대사 인물 길에는 함석헌와 계훈제 등 민주화 운동가들의 집터와 함께 전태일 열사의 옛 집터도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