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1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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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成女子大學校博物館所藏墨竹圖 |
분야 | 역사/근현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물/서화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경섭 |
작가 생년 시기/일시 | 1864년 4월 14일 - 묵죽도 작가 김규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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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몰년 시기/일시 | 1933년 6월 28일 - 묵죽도 작가 김규진 사망 |
소장처 |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419 |
성격 | 회화 |
양식 | 사군자 |
작가 | 김규진 |
재질 | 지본수묵 |
소유자 | 덕성여자대학교 |
관리자 |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김규진의 사군자 그림.
[개설]
김규진(金圭鎭)[1864~1933]은 근대 서화가로, 본관은 남평(南平). 자는 용삼(容三), 호는 해강(海岡), 백운거사(白雲居士), 취옹(醉翁), 만이천봉주인(萬二千峯主人) 등 10여 개가 있다. 평안남도 중화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평양에서 유명한 명필이었던 외숙 이희수(李喜秀)에게 서예를 배우고, 18세 때 청나라에 유학하여 서화가(書畵家)로서 자질을 키웠다. 산수화, 화조화(花鳥畵)를 잘 그렸으며, 난죽(蘭竹)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사군자(四君子)를 즐겨 그렸고, 글씨는 큰 글씨를 특히 잘 썼다.
한편 안중식(安仲植), 조석진(趙錫晋)과 함께 서화 협회를 창설하여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전국 각지에서 서화전을 개최하여 서화 예술의 계몽에도 많이 노력하였다. 저서로는 『해강난죽보(海岡蘭竹譜)』, 『육체필론(六體筆論)』, 『서법진결(書法眞訣)』, 『금강유람가(金剛遊覽歌)』 등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외금강만물상도(外金剛萬物相圖)」, 「덕수궁희정당벽화」, 「소상대죽도(瀟湘大竹圖)」, 「대부귀길상도(大富貴吉祥圖)」 등이 있다.
김규진이 활동하였던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시대 문화를 애호하고 수호하는 계층들이 강하게 뿌리박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말기에 성행한 사군자 그림의 열기가 그대로 지속되었다. 사군자 그림은 근대 전통 화단 대부분의 화가들과 서예가들이 하나의 풍류적 격식 내지는 기본 종목으로 즐겨 다루었던 것으로, 이 분야에서 가장 크게 활약했던 대표적 인물이 바로 김규진이었다. 특히 뛰어난 서예의 필력을 바탕으로 묵란도와 묵죽도에서 독특한 경지를 이루었던 서화가였다.
[내용]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묵죽도(德成女子大學校博物館所藏墨竹圖)는 화면 왼편 아래의 바위에서 솟아난 긴 대나무가 수직으로 화면 밖까지 연결되고, 작은 대나무들은 포물선을 그리며 뻗어 올라가 있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대나무의 대담한 구도와 호방하고 활달한 필력이 돋보이는 그림이다. 김규진은 여러 가지 대나무 그림을 골고루 잘 그렸는데,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성한 잎이 많이 달린 굵은 왕죽(王竹)을 즐겨 그렸다. 대나무 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윤묵으로 곧게 뻗어 올리고, 마디와 마디 사이의 간격을 최소로 남겨 대나무의 곧고, 강직한 인상을 강조하였다.
그 밖에도 달밤의 대나무 숲을 자연주의적인 경향이 짙게 변화가 많은 먹의 농담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묵죽도는 왼편 아랫부분에 묘사된 바위에서 솟아난 커다란 대나무가 수직을 이루며 화면 밖까지 연결되도록 그렸는데, 평소에 김규진이 즐겨 그렸던 대죽(大竹)이다. 중간의 키가 낮은 대나무들이 포물선을 그리며 뻗어 올라 구도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대나무 잎의 표현과 구도에서 전형적인 남종 문인 화풍의 묵죽도의 형식을 갖고 있다.
[특징]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묵죽도는 묵의 농담 차이가 극명하며, 화면 밖으로 거침없이 뻗어 나가는 대나무 배치 구도가 특징이다. 김규진이 즐겨 사용했던 대죽을 주제로 한 남종 문인 화풍의 묵죽에 기초를 두고 있다. 김규진의 대나무는 청나라에서 유학으로 연마한 대륙적 필력과 호방한 기풍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어 개성적인 화풍이 잘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