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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양주 별산대 탈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901260
한자 德成女子大學校博物館所藏楊州別山臺-
이칭/별칭 양주 별산대 놀이 탈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미술과 공예
지역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경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가 생년 시기/일시 1907년 - 양주 별산대 탈 작가 김성대 출생
작가 생년 시기/일시 1918년 - 양주 별산대 탈 작가 유경성 출생
작가 몰년 시기/일시 1970년 - 양주 별산대 탈 작가 김성대 사망
작가 몰년 시기/일시 1987년 - 양주 별산대 탈 작가 유경성 사망
소장처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419지도보기
성격
작가 김성대|유경성
재질 박|채색
소유자 덕성여자대학교
관리자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정의]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양주 별산대 놀이의 탈.

[개설]

양주 별산대 놀이 탈은 중부 지방에서 ‘산대놀이’에 주로 사용되는 탈로서 경기도 양주 지역에 전해져 오는 ‘양주 별산대 놀이’에서 사용되던 탈이다. 양주 별산대 놀이는 경기도 양주시 주내면 유양리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로 국가 무형 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어 있다. 양주 별산대는 국가적인 산대놀이가 폐지된 후인 19세기 초·중엽 본산대패 계통의 놀이를 모방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전한다. 양주 별산대 놀이는 1929년 9월에 ‘조선 박람회’에서의 공연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양주 별산대 탈[德成女子大學校博物館所藏楊州別山臺탈] 은 양주 별산대 공연에 필요한 23개의 탈 중에서 22개가 전하고 있다. 이들 22개 중에 21개는 김성대(金成大)[1907~1970]가, 1개[말뚝이 탈]는 유경성(柳敬成)[1918~1987]이 제작하였다. 김성대는 경기도 양주군 주내면 유양리에서 태어났으며, 18세 말 당시 양주 별산대의 뛰어난 연희자이자 탈을 직접 제작하였던 이창유(李昌裕)[1894~1962]로부터 탈 제작법과 춤을 배웠다.

이어 1962년 김성태(金星泰)[1894~1962]는 김성대로부터 배운 대로 탈을 만들었고, 그 뒤 연희본을 충실히 채록하여 6·25 전쟁 이후에 거의 인멸되다시피 한 양주 별산대 놀이를 원형대로 복원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하여, 1964년 12월에 국가 무형 문화재 제2호인 양주 별산대 놀이의 가면 제작 및 탈춤 교습 기능 보유자로 인정되었다. 당시 탈 제작은 김성대가 주도하였으며, 이후 지금까지 이 유형의 탈이 양주 별산대의 탈로 사용되고 있다. 말뚝이 탈을 제작한 유경성은 양주 별산대 놀이의 기예능 보유자로 김성대에게서 탈 제작 방법을 익혔으며, 이는 그의 아들인 유한수에게 전해져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형태]

덕성 여자 대학교 박물관 소장 양주 별산대 탈 은 현재 양주 별산대 탈의 비교적 옛날 형식으로 알려져 있는 서울 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퇴계원 산대탈[1865년]과 비교하여 입체감이 강조되었고, 여러 가지 원색의 색채가 사용되어 화려한 것이 특징이다. 탈의 전체적인 외형은 원형이나 타원형 박바가지 형태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지만 커다란 코와 눈썹, 불룩 튀어나온 광대뼈 등은 이전보다 입체감을 강조함으로써 강렬한 인상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일부 노인 탈에 많이 사용되던 주름살 표현이 생략되어 사실적 표현이 감소되기도 하였다.

먹승 탈이나 취발이 탈 등에 채색된 주황색은 밝은 주홍의 원색으로 과감하게 변화되었다. 전반적으로 주홍색과 흰색이 중심이 되고 갈색이 보조색으로 사용되어 화사하면서 화려함을 강조하였다. 또한 세부 묘사에 색채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으며, 수염과 머리카락 등에 동물과 사람의 털을 많이 사용하였다.

[내용]

덕성 여자 대학교 박물관 소장 양주 별산대 탈 은 신할아비, 포도부장, 원숭이, 취발이[쇠뚝이], 팔목, 신주부, 노부, 미얄할미, 외장녀, 눈꿈적이, 상좌, 연잎, 샌님, 말뚝이, 먹승[4개], 소좌[2개], 상좌, 옴중 등 총 22개이다. 이전 시기에는 나무탈과 박바가지탈 등의 2가지가 사용되었지만,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양주 별산대 탈은 박바가지로 제작되었다. 이들은 1970년 김성대가 사망하기 직전에 직접 본인에게서 구입하여 소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유경성이 제작한 말뚝이는 1976년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양주 별산대는 경기 지역 별산대의 중심이었으며, 20세기 초까지도 가장 왕성하게 활동하였던 탈춤놀이이다. 김성대의 양주 별산대 탈은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단절된 양주 별산대 탈의 전통을 복원하고 계승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현전하는 고식의 양주 별산대 탈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그 연원을 정확히 밝히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만 퇴계원 산대나 구파발 산대 등 경기 지역에 전하고 있는 지역별 산대탈을 바탕으로 양주 별산대 탈의 복원을 시도하였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20세기 초의 이창유에게서 전수받은 김성대김성태, 유경성으로 이어져 현재의 유한수에 이르고 있다. 덕성여자대학교 박물관 소장 양주 별산대 탈은 전통적으로 작은 규모, 대사를 하기에는 불편한 형태 등 춤사위 위주에 맞추어진 특징을 반영하고 있지만 볼륨감 넘치는 입체감과 원색의 화려함, 그리고 장식성을 강조한 이미지 등에서 전대의 전통을 이어받으면서도 김성대의 개성을 강하게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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