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34300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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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東淸溪寺淨土寶書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길 67-182[안계리 801-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종민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4년 3월 20일 - 하동 청계사 정토보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57호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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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11월 19일 - 하동 청계사 정토보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
간행 시기/일시 | 1686년 - 하동 청계사 정토보서 간행 |
소장처 | 청계사 -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길 67-182[안계리 801-1] |
성격 | 불경 |
간행자 | 성총(性聰) |
권책 | 1책 |
행자 | 10행 18자 |
규격 | 14.2㎝[반과 가로]|20.3㎝[반곽 세로] |
어미 | 무어미 |
권수제 | 淨土寶書 |
판심제 | 淨土寶書 |
문화재 지정번호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
[정의]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청수사에 있는 조선 후기 승려 성총이 간행한 불교 경전.
[개설]
정토보서는 염불 법문에 의지하여 정토(淨土)의 업을 닦고 일과 염불로 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경서이다. 백암(栢庵) 성총(性聰)[1631~1700]이 간행한 197권의 불서 중에서 정토보서는 1권의 분량에 불과하다. 성총이 직접 편찬 내지 회편(會編)한 책으로 정토보서, 『치문경훈』, 『대승기신론소필삭기회편』이 있으며, 직접 저술한 책으로 『정토찬』[4운 8구 100수]이 있는 점에 비추어 볼 때 정토보서는 매우 중요하다. 정토보서는 또한 18세기 삼문수업(三門修業)의 정립과 유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18세기는 선(禪)의 경절문(徑截門), 교(敎)의 원돈문(圓頓門)과 더불어 염불문(念佛門)이 불교의 한 축으로서 중요시되었던 시기였다. 하동 청계사 정토보서는 이러한 염불문이 본격적으로 각인되기에 앞서 간행된 서적이라는 점에서 주목되며, 2014년 3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5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저자]
성총은 17세기 선사로서 당시 각 사찰의 강원에서 필요한 여러 책을 간행하여 승가 교육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화엄경과 그 주석서를 간행하여 18세기에 화엄학이 번성할 수 있도록 기여한 인물이다. 부휴(浮休) 문파 제3대 제자로서, 부휴(浮休) 선수(善修)[1543~1615]-벽암(碧巖) 각성(覺性)[1575~1660]-취미(翠微) 수초(守初)[1590~1668]-백암 성총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이었다.
「백암당 성총 대선사 비문(栢庵堂性聰大禪師碑文)」과 『동사열전(東師列傳)』의 「백암종사전(栢庵宗師傳)」에 따르면, 성총은 1631년(인조 9) 전라북도 남원에서 태어났다. 13세에 순창 취암사(鷲岩寺)에서 출가하여 16세에 법계를 받았다. 18세에 지리산 취미(翠微) 대사에게 나아가 9년간 수학하고 법을 전해 받았으며, 30세부터는 명산을 두루 다니면서 송광사(松廣寺), 징광사(澄光寺), 쌍계사(雙溪寺) 등지에서 강석을 펴서 후인을 지도하였다. 불경 이외에 외전에도 능통했고 시를 잘 지어 당시의 명사들과 교유가 있었는데, 김문곡(金文谷), 정동명(鄭東溟), 남호곡(南壺谷), 오서파(吳西坡), 최동강(崔東岡) 등이 유명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하동 청계사 정토보서 와 동일한 간본인 1686년(숙종 12) 개간한 정토보서가 국립 중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밖에 1721년(경종 1) 간행된 자료도 국립 중앙 도서관에서 확인된다. 본문 하단에 ‘최무선(崔武善)’, ‘김선립(金善立)’, ‘이만재(李萬才)’, ‘비구 도준(比丘道俊)’, ‘만원(萬原)’ 등의 시주자가 확인된다. 권말에 “강희 이십오년 병인초하 전라도 약안 김화산 징광사 개간(康熙二十五年丙寅初夏全羅道藥安金華山澄光寺開刊)”이라는 간행 기록이 있어 ‘1686년’에 전라도 ‘징광사’에서 개간하였음을 알 수 있다. 간기 외에도 간행에 참여한 각수는 ‘道俊’, ‘萬原’, ‘文粲’ 등이 확인되며 化士 ‘印凞’도 기록되어져 있다.
[형태/서지]
2권 1책의 목판본으로, 표지 서명은 ‘淨土寶書(정토보서)’이며, 권수제와 판심제 모두 ‘정토보서’이다. 제책의 형태는 오침안선장본(五針眼線裝本)이다. 판식은 사주단변(四周單變)에, 반곽의 크기는 가로 14.2㎝, 세로 20.3㎝이다. 계선이 있고[有界], 10행 20자로 배열되어 있다. 판심은 상하백구(上下白口)에 무어미(無魚尾)이며, 닥종이로 만들었다. 세로 발끈 폭은 1.8~1.9㎝로 확인된다. 본문에는 약체 구결(口訣) 표시가 묵서로 쓰여 있다.
[구성/내용]
권두에 저자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간기가 있다. 서문에서는 염불의 필요성과 책을 짓는 까닭을 밝히고 있다. 본문에는 아미타불의 인지(因地)[최초의 행적]와 유래를 경전에서 인증하였고, 「정토기신문(淨土起信文)」에서는 정토 신앙을 일으키는 이유와 조건을 서술하고 정토업(淨土業)을 닦을 것을 권하였다.
「염불 법문」에서는 염불할 때 의식을 장엄하게 하는 것보다 진실한 수행을 하는 것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함을 밝혔고, 재가 거사(在家居士)는 검은 옷을 입거나 도건(道巾)을 착용할 것 없이 평소의 의복 그대로 염불하되 북을 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고요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소리를 내지 않고 묵묵히 하여도 좋으며, 애써 무리를 모아 할 것은 없으며, 문을 닫고 하는 것도 무방함을 밝혔다. 다만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맑게 한 뒤 서쪽을 향하여 묵묵히 앉아 눈을 감고 아미타불의 진금색신(眞金色身)이 칠보(七寶)의 연못 위에 앉아 있는데 미간의 흰털에서 광명을 놓는 것을 관상(觀想)할 것과, 입으로 불명(佛名)을 부르며 일념으로 부처를 생각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이어 염불의 10종 공덕을 밝혔고, 『아미타경(阿彌陀經)』을 옮겨 실은 다음 염불의 영험에 대한 20가지 영험담을 모아 편집하였다. 「일과 염불(日課念佛)」에서는 옛날 하루 1만 번 또는 3만 번, 10만 번 염불한 예를 들었고, 역대의 고승 대덕이 염불을 권고한 것들을 뽑아 놓았다. 「정토과험(淨土果驗)」에서는 염불 수행하던 고승들이 염불 왕생한 실적 40종을 수록하였고, 역대 왕신(王臣)의 염불 왕생 고사 70여 건, 부녀의 왕생 30여 건, 악인의 왕생 5건, 출생의 왕생 6건, 습유(拾遺) 1건을 수록하였다. 끝으로 정토왕생 다라니(陀羅尼)를 게재하고 20만 번 독송하면 보리의 싹이 나고 30만 번 독송을 하면 오래지 않아 아미타불을 보게 된다고 하였다.
[의의와 평가]
성총은 17세기의 선사로서, 당시 각 사찰의 강원에서 필요한 여러 책을 간행하여 승가 교육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정토보서는 정토 신앙과 관련된 다양한 교리와 극락왕생의 이야기들을 한 권에 집약해 놓은 책으로 정토 신앙의 지침서이다. 하동 청계사 정토보서는 임진왜란 이후의 피폐한 상황에서 개간(開刊)된 것으로 종교적, 학술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