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5007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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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裵憲 |
영어공식명칭 | Bae He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익산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임혜영 |
출생 시기/일시 | 1896년 4월 27일 - 배헌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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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13년 - 배헌 신흥무관학교 입학 |
수학 시기/일시 | 1919년 - 배헌 신흥무관학교 졸업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27년 - 익산신간회 사건 발생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6월 - 배헌 신간회 익산지회 사건으로 투옥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28년 4월 28일 - 제4차 전북기자대회 개최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5월 - 배헌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 |
활동 시기/일시 | 1948년 8월 - 배헌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955년 3월 3일 - 배헌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1년 - 배헌 건국훈장 애국장 수훈 |
출생지 | 주현동 - 전라북도 익산시 주현동 |
거주|이주지 | 하얼빈 -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
학교|수학지 | 신흥무관학교 - 중국 만주 |
성격 | 독립운동가|정치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대한국민당 부위원장|전라북도 상공회의소 부회장 |
[정의]
전라북도 익산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활동 사항]
배헌(裵憲)은 1896년 4월 27일 지금의 익산시 주현동에서 태어났다. 1910년 경술국치로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을 쟁취할 목적으로 1913년 만주로 망명하였다.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에 입학하여 1917년부터 1919년까지 학우회 제3대 토론부장으로 활동하며 혁명정신과 민족의식을 고취하였다. 신흥무관학교 졸업 후에는 길림성(吉林省)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와 연락하는 임무와 군자금 모집, 노령(露領) 자유시(自由市)로부터 무기를 구입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1924년 귀국한 배헌은 『동아일보』 기자가 되었으며, 1925년 2월에는 익산군의 이재 동포를 구호하기 위한 구기회(救饑會)를 창립하여 상무집행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6월 신간회(新幹會) 익산지회 창립을 앞두고 격문을 선포하였다가 간부 8명과 함께 일본 경찰에 검거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배헌은 1928년 4월 28일 전북기자대회의 사회를 맡았는데 개회 순서와 토의안을 경찰에 제출하지 않아 치안유지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검거되었다가 1개월 후 불기소로 석방되었다.
배헌은 광복 후인 1948년 5월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이리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고, 8월에는 반민족행위처벌법 특별기초위원으로 임명되어 활동하였다. 1948년 12월 개최된 사회당 발기인대회에서 부의장으로 선출되었으며, 1950년 1월 무소속 4파가 연합하여 결성한 대한국민당의 부위원장을 맡았다. 전라북도 상공회의소 부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배헌은 1955년 3월 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1년 대한민국 정부는 배헌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