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800628 |
---|---|
한자 | 黃金里鳳谷陶窯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산 160-1 임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윤성준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6년 - 황금리 봉곡 도요지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실시 |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7년 - 황금리 봉곡 도요지 한국 농어촌 공사 무진장 지사에서 1차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9년 - 황금리 봉곡 도요지 한국 농어촌 공사 무진장 지사에서 2차 지표 조사 실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1년 5월 30일 - 황금리 봉곡 도요지 전주 문화유산 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1년 7월 18일 - 황금리 봉곡 도요지 전주 문화유산 연구원에서 시굴 조사 완료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2년 6월 26일 - 황금리 봉곡 도요지 전주 문화유산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시작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2년 9월 6일 - 황금리 봉곡 도요지 전주 문화유산 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완료 |
소재지 | 황금리 봉곡 도요지 -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산160-1임 |
출토 유물 소장처 | 전주 문화 유산 연구원 - 전라북도 전주시 덕진구 전진로32-4[산정동 674-1] |
성격 | 가마터|백자 가마 유적 |
[정의]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에 있던 조선 후기 가마터.
[변천]
황금리 봉곡 도요지에 관한 문헌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따라서 변천 과정은 파악할 수 없다. 발·대접·완·잔·접시 등의 백자 조각이 수습되는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운영되던 백자 생산 가마터로 추정된다. 현재 이곳은 진안 황금 지구 둑 높임 사업으로 인해 발굴 조사 후 수몰되었다.
[위치]
황금리 봉곡 도요지는 전라북도 진안군 부귀면 황금리 산160-1임에 있다. 부귀 교차로를 나와 정천면 방향으로 약 5.5㎞ 가면 두남 사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봉곡 저수지 방향으로 약 6㎞ 정도 올라가면 산기슭에 황금리 봉곡 도요지가 있었다. 현재는 수몰된 상태이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황금리 봉곡 도요지는 전주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제작하기 위해 2006년 실시한 지표 조사에서 발견된 유적이다. 이후 한국 농어촌 공사 무진장 지사에서 시행한 황금 지구 둑 높이기 사업으로 2007년과 2009년에 지표 조사가 진행된 바 있다. 이를 토대로 전주 문화유산 연구원에 의해 2011년 5월 30일부터 7월 18일까지 1차로 시굴 조사가 실시되었고, 2012년 6월 26일부터 9월 6일까지는 2차로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 결과 조선 시대 백자 가마 2기와 폐기 퇴적구 2기와 공방지가 확인되었다. 공방지에서는 수비공 5기와 물레축혈과 난방 시설 및 연토장 등의 공방 시설 일체가 조사되었다.
1호 가마는 경작으로 인해 소성실과 연소실의 일부가 유실되었으며, 지상식 등요이다. 가마의 출입 시설은 퇴적구가 확인되는 동쪽벽을 따라 석재와 함께 둥근형의 출입구 흔적이 확인되었다. 소성부는 4실이며, 소성실 사이에는 불턱을 두었다. 2호 가마는 경작으로 인해 연도부와 소성실의 일부가 유실되었으나, 잔존 상태는 양호하다. 지상식 등요이며, 가마의 평면은 소성부로 갈수록 넓어지는 형태를 띤다. 소성부는 모두 4실이며, 소성실 사이에는 불창을 두었다.
공방지는 내부 시설로 난방 시설·수비공·연토장[점토 다짐]·물레축혈·배수로 등이 남아 있고, 유물은 흑유자기와 백자 등이 출토되었다. 수비공은 모두 5기로 4기는 상단부에 할석이 채워져 있었고 바닥면은 1매 내지는 2매의 석재를 놓아 디딤돌로 사용하였다. 폐기 퇴적구에서는 흑갈유의 자기와 백자 등이 확인되었다. 백자는 발·대접·완·잔·접시 등이 출토되었으며, 흑유자기는 병이나 뚜껑 등이다. 그 밖에 소량의 철화 백자도 출토되었다.
[현황]
황금 지구 저수지 둑 높임 사업으로 인해 발굴 조사 후 황금리 봉곡 도요지는 수몰된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황금리 봉곡 도요지는 진안에서 최초로 발굴된 자기 가마 유적이라는 점에 의의가 있으며, 출토된 유물의 양상을 볼 때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에 걸쳐 요업이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황금리 봉곡 도요지의 가마 생산과 관련된 공방 시설은 장흥 월송리 백자 요지·영광 덕흥리 백자 요지·무안 피서리 백자 요지·청양 대박리 백자 요지·순창 지선리 유적 등지에서 확인된 바 있다. 진안 지역의 조선 시대 백자 제작 방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학술적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