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102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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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天臨山烽燧臺烽軍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기도 성남시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조병로 |
[정의]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금토2동 천림산 봉수에서 근무했던 조선시대 군사 명칭.
[개설]
천림산봉수대는 현재 성남시 수정구 금토2동 산35번지, 일명 달래내 고개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 군사통신 시설의 하나이다. 봉수란 외적의 침입을 낮에는 연기, 밤에는 횃불로써 중앙에 알리는 군사통신 수단으로서 1423년(세종 5) 전후하여 천천산(穿川山)봉수를 설치한 데서 유래하였으나 오늘날은 천림산봉수라 한다.
부산 다대포 응봉(鷹烽)에서 출발하여 한양 목멱산(木覓山) 제2봉수대에 전달되는 제2거 봉수노선망의 하나로 내지(內地)봉수에 속한다. 경기도 기념물 제179호이다.
[내용]
봉수대에는 봉군 또는 봉화군(烽火軍)이라 불리는 봉수군이 배정되었는데, 대개 양인 또는 노비가 차출되어 전방을 후망(堠望 : 멀리 살피며 경계함)하거나 연료 채취, 수목 제거, 봉수대 파수, 군사훈련 등의 잡역(雜役)에도 종사하여 매우 고된 일을 하였다.
『중정남한지(重訂南漢志)』에 따르면, 천림산 봉수대에는 봉수군 25명과 봉수군보[일종의 보인(保人)] 75명이 배치되어 교대로 근무하였다.
[의의와 평가]
천림산봉수대에서는 5개의 봉돈터[화덕(火德) : 연조(烟竈)라고도 함], 창고터, 그리고 봉수군의 집터유적과 상평통보, 기와류 등이 출토되어 봉수대 구조 및 봉수군 생활사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