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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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醱酵飮食-天國-淳昌-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현영 |
[순창 발효 음식의 종류]
1980년대 중반, 로마의 명소로 알려진 에스파냐 광장에 맥도날드가 진출하자 전통 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패스트푸드가 가져올 맛의 획일화에 반대하며 바쁘게 움직이고, 바쁘게 생각하고, 바쁘게 먹는 시대에 천천히 걷고, 느리게 생각하고, 즐기면서 먹는 세상을 꿈꾸는 슬로푸드 운동을 전개하였다. 슬로푸드는 말 그대로 천천히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자 하는 것으로 오로지 고기를 얻기 위해 대량 사육된 가축과 비행기로 농약을 살포하는 대규모 기업농이 재배한 곡물 대신 각국의 고유한 가치와 문화가 살아 숨 쉬는 음식 문화를 되찾는 운동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슬로푸드는 발효 음식이라 할 수 있는데, 주요 예로는 김치, 장아찌, 젓갈을 들 수 있다. 실제로 외국에서 격찬한 것으로 야채를 오랜 기간 절이고 숙성해서 발효시킨 장아찌나 김치, 그리고 오랜 기간 준비하고 날을 잡아 만들어서 묵고 또 묵을수록 깊은 맛을 내는 장류는 외국에서도 관심이 증가되고 있다. 이런 장류는 먹을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만드는 과정도 절이고 말리고, 오랜 기간 쑤고 묵히는 등 공이 들지만,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음식으로 널리 알려졌고, 특히 된장과 된장찌개는 외국에서도 장수 음식으로 연구되고 있다.
발효 문화는 조상들의 지혜와 오늘날의 가공 기술이 합쳐져 품질이 개선되고, 그 종류 또한 다양해져 우리 식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장을 만들어온 역사는 장의 기본 원료인 콩이 원시 시기부터 재배되었던 것만큼 역사가 오래되었고 우리의 장류에는 콩을 주원료로 하는 간장 된장, 청국장, 고추장 등이 있다. 특히 이들의 재료가 되는 콩은 예로부터 밭에서 나는 고기라고 부를 만큼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여, 단백질이 부족하기 쉬운 우리 조상들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 식품이 되었다.
[고추장의 기원과 유래]
1. 고추장의 기원
구수한 된장과 짭조름한 간장만으로 맛을 좌우하던 전통적인 식생활에 펄펄 기운 나는 매운맛을 더하며 맛의 일대 혁신을 가져온 고추장. 이런 고추장의 기원은 원료인 고추의 유입과 관련이 깊다. 고추의 유입에 대한 설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중국으로부터 직접 유입되었다는 것과 임진왜란[1592년]을 전후로 일본에서 전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1613년(광해군 5)에 출간된 이수광(李睟光)의 『지봉유설(芝峯類說)』에서 “남만 후추는 큰 독(毒)을 가지고 있다. 처음에는 왜국(倭國)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왜개자’라고 하였다. 지금은 이것을 심는 일이 왕왕 있는데 술집에서는 그것의 매운맛을 이용한다.”라고 적고 있으니, 포르투갈 등지에서 일본에 전래된 고추가 다시 한국에 전해졌다는 설이 강한 힘을 얻게 되었다.
고추가 유입되고 처음에는 그저 고추 자체를 안주로 삼거나 고추씨를 가려 양념으로 사용하는 게 전부였다. 그러다가 차츰 가루로 내어 기존에 쓰던 향신료들과 섞어 쓰는 등 두루 활용하게 되었는데 전국에 걸쳐 고추를 본격적으로 재배하기 시작하면서 간장, 된장에 섞어 쓰게 되었고 이때부터 비로소 고추장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2. 고추장의 유래
“후추처럼 비싸다”는 유럽 속담이 있을 만큼 후추는 조미료로서는 값이 상당히 비싸 때로 화폐 역할을 대신하며 조세로 바쳐질 정도였다. 때문에 왕실에서 고추를 국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값비싼 후추 대신 고추 사용을 적극 장려한 것은 당연지사(當然之事)였다. 입맛을 돋우는 독특한 맛 외에 이 또한 고추의 파급 속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니, 고추의 쓰임은 더욱 빈번해져 고추장의 개발을 앞당기기에 이르렀다.
처음으로 고추장 담그는 법이 소개된 것은 1766년(영조 42)에 간행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였다. “메주를 가루로 만들어 체로 친 것 1말에 고춧가루 3홉, 찹쌀가루 1되를 넣고 간장으로 개어서 담근다.”라고 전하니 초기에는 지금보다 고춧가루가 덜 쓰인, 기존에 있던 장에 고춧가루를 섞은 막장 형태였다. 여기에 말린 생선이나 다시마 등을 섞으면서 어육장, 청포장 등의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였고, 한때 20여 종에 달하는 고추장으로 각양각색의 맛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집집이 요긴한 일, 장 담그기 행사로세/ 소금을 미리 받아 법대로 담그리라/ 고추장 두부장도 맛맛으로 갖추 하소.” 「농가월령가(農家月令歌)」 삼월령(三月令)의 한 대목이다. 볕이 들고 만물이 생동하는 좋은 시절, 장 담그기를 일깨우는 구절이 집집마다 장 담그는 풍경을 눈에 선하게 한다. 이처럼 고추장의 기원은 고추에서 비롯되었다 할 수 있으나, 고추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이 고락을 함께 하며 스스로 일구어 낸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맛이다.
각 가정마다, 또 지역마다 조금씩 색과 맛이 다른 고추장. 그 가운데에서도 유독 빛 고운 색과 은은한 향, 뛰어난 감칠맛으로 고추장 명가로 손꼽히는 고장이 있으니 바로 순창이다. 순창 고추장의 명성은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깨끗한 환경과 맑은 물, 전통 방법을 전수해 온 장인의 손맛이 진상 유래의 영광까지 이어져 오늘날에도 계승되고 있다.
전라북도 임실군 운암면 입석리 옥정호를 둘러보고 나서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에 위치한 만일사로 향하였다. 구림면에서 회문산 만일사로 가는 길은 길안천을 연상하게 하였다. 산은 우거진 숲 위로 솟아오르고 산을 따르던 계곡 또한 잔잔한 물살에 매끄러운 바위를 만들어 놓았다. 구림천의 반쯤에서 회문산으로 올라섰다. 하늘과 가까운 산들이 눈높이에 펼쳐졌다. 겹겹이 산이고 첩첩이 산이었다.
만일사는 백제 무왕(武王) 때 창건한 고찰로 조선 건국 전 승려 무학 대사(無學大師)가 조선을 건국한 태조(太祖) 이성계(李成桂)의 등극을 위하여 중건한 절이다. 무학 대사 이전에도 여러 가지 중건 과정이 있었을 것이지만 기록이 없어 그 내력을 알 수 없고, 정유재란(丁酉再亂)으로 소실된 것을 6·25 전쟁 등 두 차례 소실 끝에 1954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만일사에는 예전부터 고추장과 관련해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어린 시절의 스승인 무학 대사가 머무르고 있는 순창의 만일사(萬日寺)를 찾아가던 일화에서 비롯되었다. 스승을 찾아 떠난 이성계는 허기를 면하기 위해 어느 농가에 잠시 들러 고추장을 곁들인 비빔밥을 얻어먹게 되는데, 훗날 조선을 건국한 후에도 그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해 진상하도록 하였고 이때부터 순창의 고추장이 유명하게 되었다.
태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에 무학 대사와 만일사에서 기도할 때 하루는 산 안 마을 김좌수 집의 초대를 받은 이성계와 무학 대사는 그 집에 가서 점심 대접을 받게 되는데 산해진미가 다 올라와 있는 훌륭한 밥상이었으나 그 중에서도 고추장 맛이 일품이었다. 그래서 식사가 끝나고 나서 수인사를 하면서 고추장 맛이 독특하였는데 거기에 무슨 비결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때 김좌수가 대답하기를 “우리 고장은 산과 물이 많고 토양이 비옥하며 풍향이 완만하여 사람이 나면 명인 달사(名人達士)가 나고 산과 들에는 약초와 채마가 특이하여 보통으로 담가도 그 맛이 담백하고 감칠맛이 난다고 대답하였다.
그로부터 이성계의 밥상에는 반드시 순창 고추장이 올랐으며, 개국 후 아들 이방원(李芳遠)과의 불화로 정종(定宗)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궁궐을 떠나 외유할 때 무학 대사와 함께 또 한 번 만일사를 찾아와 며칠 쉬어 간 일이 있었다. 그때 전에 천일향을 시주한 일이 마을에 걸려 구천일향을 더하여 만일향을 채우고 그 만일향을 시주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절 이름을 만일사로 고쳐 부르도록 해 놓고 함흥으로 떠났다. 6·25 전쟁 당시 회문산에 북한의 남부군 총사령부가 자리하였다. 만일사는 집중 포화로 모든 것이 소실되었다. 이성계와 고추장에 얽힌 사료도 사라지고 훼손된 중수비만 남았다. 순창군은 비바람에 마모된 비문에서 태조 대왕과 무학이란 단어를 찾았고, 순창 고추장 설화를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
4. 전통 순창 고추장 맛의 핵심, 고추장 메주
고추장을 담글 때 가장 중요하게 맛을 좌우하는 재료는 고추장 메주이다. 고추장 메주는 보통 도넛 모양으로 만든다. 고추장 메주는 콩과 맵쌀의 비율을 6:4로 한다. 이는 어른들로부터 배워 왔던 방법이며 가장 좋은 맛을 내는 비율로 알려져 있다. 순창 전통 고추장의 맛을 좌우하는 중요한 재료로 고추장 메주는 보통 음력 처서(處暑)를 전후해서 만든다. 양력으로는 보통 8월 말 정도가 되는데 이때는 고온 다습한 시기여서 고추장 메주를 만들어 발효시키기에 가장 적합한 때라고 알려져 있다.
고추장 메주는 보통 도넛 모양으로 만드는데 그 이유는 시기적으로 부패가 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빠른 건조가 필요하고 또한 이렇게 함으로써 좋은 발효균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의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고추장 메주는 겉마름이 끝나면 짚으로 엮어 바람이 잘 통하는 처마 밑에 걸게 되는데, 짚으로 엮는 이유는 짚 속에 고초균(枯草園)이 많이 있어 고초균을 고추장 메주에 이식시켜 잘 자라게 함으로써 좋은 맛을 내게 하기 위함이다. 또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걸어 부패하지 않고 몸에 좋은 발효균들만 자라게 하기 위한 최선의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고추장의 종류]
1. 찹쌀고추장
찹쌀가루를 주원료로 하고 엿기름에 메줏가루, 고춧가루 등을 넣고 버무려 소금으로 간하여 담근 것으로 경우에 따라서는 구멍 떡을 빚어 익반죽하여 멍울을 풀어 메줏가루, 고춧가루, 소금을 넣고 담고 엿기름을 사용하지 않는다. 윤기가 나고 매끄러워서 제일로 치며, 윤집[초고추장]을 만들거나 색을 곱게 내야 할 때 주로 사용한다.
2. 밀가루고추장
가장 손쉽게 담그는 일반적인 고추장으로 밀가루를 엿기름물로 풀어서 두었다가 불에 올려 노릇하고 맑게 될 때까지 달인 후에 메줏가루, 고춧가루, 소금을 넣어 담근다. 찌게나 무침, 장아찌 등을 만드는 데 쓰인다.
3. 보리고추장
보리쌀을 가루 내어 쪄서 방에서 띄운 것에 고춧가루, 메줏가루를 섞어 소금으로 간하며, 엿기름을 사용치 않는 것이 특징이고 여름철 쌈장으로 많이 이용한다.
4. 수수고추장
소금물과 수수가루로 죽을 쑤고 여기에 메줏가루, 엿기름가루, 고춧가루를 섞은 후 소금으로 간하여 담근다.
5. 팥고추장
멥쌀을 흰무리로 찌고, 콩과 팥은 푹 삶아 절구에 찧어 반대기를 만들어 고추장을 담근다.
6. 고구마고추장
경상도의 화전민이 사는 마천이란 곳에서 고구마를 원료로 고추장을 담근다.
7. 마늘고추장
마늘이 많이 나는 계절에 찹쌀가루, 마늘 다진 것, 고춧가루를 넣어 담근 고추장이다.
8. 그 밖의 고추장
대추찹쌀고추장, 약고추장, 인삼고추장, 과실즙고추장, 호박씨고추장, 키토산 미네랄 고추장, 쌀눈고추장 등 다양한 고추장이 있다.
[순창 장류 산업의 현대사]
순창은 국내 장류 산업의 현황과 마찬가지로 크게 재래식[전통 장류]과 개량식[공장 장류]으로 구분할 수 있다. 공장 장류 산업은 1989년 순창 식품[현 대상]이 순창 고추장을 제조, 판매하면서 시작되었으며, 순창에서 장류가 본격적인 산업으로 시작된 것도 이 시기로 볼 수 있다. 또한 순창 장류 산업은 1990년대부터 지방 자치 단체의 주도에 의해 육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순창 장류 사업의 발전 과정을 장류 업체의 등장을 기준으로 크게 태동기, 형성기, 기반 조성기, 경쟁화 시기·정착기, 도약기로 구분해 살펴볼 수 있다.
1. 태동기
1985년 이전까지를 태동기라 할 수 있는데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어 온 자급자족 형태의 장류 생산이 차츰 잉여분에 대한 판매가 생겨나면서부터 전통 장류의 소규모 개인 경영으로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국내산 고추와 콩, 찹쌀 등을 이용하여 전통적인 방식으로 제조하는 순창의 전통 장류 제조업은 198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이 무허가로 운영되었다[약 23개 정도].
2. 형성기
1985년부터 1992년까지를 형성기라 할 수 있는데, 1985년에 식품 가공 업체의 시설 기준 완화로 순창 지역의 총 26개 업체가 식품 제조업체로 등록하면서 순창 전통 장류의 본격적인 산업화가 시작되었다. 1986년에는 14명의 제조인이 순창 전통 고추장 보존 협의회를 구성하여 과잉 경쟁과 품질 저하를 방지하는 자율 규제를 시작하였다. 또한 순창군은 전통 고추장의 육성을 위한 규칙을 제정하여 규제와 지원을 통해 장류 산업을 지역 산업으로 육성하기 시작하였으며, 1989년부터는 순창 식품이 순창군에서 고추장을 생산, 판매하기 시작하면서 공장 장류 산업이 자리를 잡았다.
3. 기반 조성기
1993년부터 1997년까지를 기반 조성기라 할 수 있는데, 고추장 생산 및 판매 농가가 증가하자 품질 문제가 대두되고 전통 고추장의 맛, 제조 기법 등의 상실 우려가 높아졌으며, 산재된 26개 업체에서는 환경 오염 방지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은 채 운영되는 등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품질 보전 및 환경 오염 문제를 해결하고, 장류 산업을 지역 특화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산재된 업체들을 한 곳에 집단화하여 민속 고추장 단지를 조성하였다. 이를 통해 시너지 효과, 정보 교류, 관광 및 홍보 효과 등의 제고를 도모하기 시작하였다.
4. 경쟁화 시기·정착기
1998년부터 2003년까지를 경쟁화 시기 및 정착기라 할 수 있는데, 당시 민속 고추장 단지에는 각 업체당 거주 공간과 작업 공간을 포함하여 661㎡씩 총 54개 업체에 분양되었다. 이 시기에 장류는 자가 제조 소비에서 구매를 통한 소비로 점차 전환되어 가던 때였으며, 이는 순창 장류 산업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다. 공장제 장류의 소비가 크게 증가하였고, 웰빙 열풍으로 인해 전통 장류의 소비도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2004년에 순창에서 생산한 장류는 전국 시장의 40% 수준으로 성장하였다.
5. 도약기
2004년 이후를 도약기라 할 수 있는데, 순창군은 전통 장류의 판매 증대를 위해 검사 역할 강화, 포괄적인 서비스 제공 등을 수행하는 장류 개발 사업소[현 순창군 장류 사업소]를 설치하였다[2003년 12월]. 군청 내 산재되어 있던 장류 관련 부서를 통합하여 만들어진 순창군 장류 사업소는 2004년 8월 민속 고추장 단지 내 건물에 입주하여 현재까지 지원 업무를 수행해 오고 있다.
순창군의 장류 산업은 순창군 장류 사업소를 통해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고 장류 산업을 타 산업과 연계시키기 위한 다차 산업화를 추진해 오고 있다. 2004년 말에는 순창 장류 산업이 특구로 지정되어[재정 경제부 고시 2004-27호] 업체가 연구비 분담 가능, 농업 진흥 지역 해제 등 절차 간소화, 전통 고추장 표시 가능 등 각종 규제가 완화되었다. 또한 순창군은 전국 제1호 장류 특구의 브랜드 가치와 인지도 등을 통해 정부 각 부처의 산업을 성공적으로 유치하고 있다. 2005년에는 신활력 사업 평가 결과 우수 군으로 선정되었고 신활력 사업 계획의 확정 이후에 발효 산업의 메카, 세계 제일의 장수 고을 이미지를 통한 세계화 도약 계기 마련 등의 방향 설정을 통해 지속적인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순창군은 장류 사업을 육성하기 위해 각 부처의 관련 정책을 상호 연계하여 추진하고 있다. 과거 1993~2010년 사이에는 재정 경제부 지역 특구 산업과 농림부 지역특화 사업을 통해 순창 전통 고추장 민속 마을, 순창군 장류 사업소, 장류 박물관, 메주 공장, 한국 절임, 순창군 발효 미생물 관리 센터 등이 건립되었고, 2010년 이후 옹기 체험관, 토굴형 장류·절임 저장고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