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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고을을 품은 섬진강 70리길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0020
한자 玉川-蟾津江-里-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윤정준

[물 좋고 풍요로운 고을, 옥천]

조선 초기 문신이자 뛰어난 학자였던 서거정(徐居正)[1422~1488]은 순창을 일러 다음과 같이 찬탄하였다. “순창은 호남의 승지로 산수가 아름답고 논밭이 풍요로우며, 물가의 어장 또한 넉넉한 곳이다[淳(昌郡) 湖南之勝地 有山水之樂 土田之饒 禽魚之富].” 한글 학회에서 펴낸 『한국 지명 총람』은 순창의 명당을 30여 곳 넘게 소개하고 있는데 이는 거의 각 마을마다 명당 하나씩을 보유하고 있는 형국으로, 전국에서 이처럼 많은 명당을 지닌 곳은 순창이 유일하다 할 것이다.

전라북도 최남단 호남정맥의 동쪽 산간 지대에 위치하는 순창은 동·서·북쪽으로 호남정맥의 지맥이 뻗어나가 산지의 기복이 많고 평지가 전반적으로 적다. 그러나 중앙부에 이르러 섬진강의 풍부한 수량 덕분에 남부에는 비옥한 순창 분지가 발달하여 마한 시대로부터 ‘옥천(玉川)’으로 불렸을 만큼 풍요로움과 수려함을 자랑한다. 전라북도 진안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장수, 임실을 거쳐 순창에 이르기까지 절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순창에 이르면 물의 흐름이 밖으로 향하지 않고 순창 구석구석을 돌아 외이리에 이르러 남원과 곡성을 향하는 큰 물줄기에 합류한다.

물은 때로 마을과 마을의 경계가 되기도 한다. 영화 「아름다운 시절」의 촬영지로 유명한 임실의 구담 마을과 장군목이 자리하고 있는 순창의 내룡 마을이 그렇다. 이 두 마을을 잇는 징검다리를 건널 때면 임실 덕치리에서 태어나 섬진강의 아름다움을 노래해 온 김용택 시인을 떠올리게 된다. 시인이 건넜던 진메 마을의 징검다리는 사라지고 없지만 어치리로 이어지는 이 다리를 건너면 섬진강을 끌어안은 순창으로 접어든다. 섬진강 댐으로부터 시작된 섬진강 자전거 길을 이용하는 여행자들은 구담 마을 침수교를 통해 장군목으로 진입하면 된다.

[전설과 역사가 함께 굽이치는 길]

장군목을 가로지르는 현수교는 장군목과 요강 바위를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2010년에 완공된 이 다리를 이용해 도보 여행자들과 자전거 여행자들은 섬진강을 여행한다. 어치리 현수교에서 섬진강 마실 휴양 숙박 단지에 이르는 장군목 유원지는 오백 리 길 섬진강이 만들어낸 최고의 풍광을 자랑한다. 장군목이라는 이름은 그곳이 풍수지리상 두 개의 험준한 봉우리가 마주 서 있는 형세, 즉 장군대좌형(將軍對坐形) 명당임을 뜻하며, 장구목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섬진강 상류의 맑은 물이 호남정맥을 넘나들며 빚어낸 기암괴석은 절로 섬진강이 품은 영겁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물살을 그대로 받아 안은 듯, 바위들은 험상궂기보다는 친근한 모습인데 그중 요강바위가 단연 흥미롭다. 장구목 한가운데 자리 잡은 요강바위는 내룡 마을 사람들에게는 수호신과 같은 존재다. 요강처럼 가운데가 움푹 파인 이 바위는 높이 2m, 폭 3m에 이르는 큰 바위로, 6·25 전쟁 때 이 바위에 몸을 숨겨 화를 면한 사람이 여럿이라 전해진다. 한때는 이 바위가 수억을 호가한다는 소문이 나돌아 도석꾼에 의해 도난을 당하기도 했으나 마을 주민들의 노력으로 지금은 장구목에 예전 그대로 보전되어 있다.

용궐산[지명 변경 전 명칭: 용골산]과 무량산 자락을 벗 삼아 섬진강 마실 휴양 숙박 단지를 지나는 길은 역사와 전설이 함께 하는 길이다. 섬진강 마실 휴양 숙박 단지 건너 구미 마을에는 두 개의 큰 바위인 육로암과 종호암이 있다. 육로암은 여섯 명의 늙은 선인이 둘러앉아 술을 마셨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종호암은 여섯 선인 중의 한 명인 양운거(楊雲擧)가 주전자 대신 술동이로 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양운거는 당대의 문장가로 벼슬에 뜻이 없어 호젓한 곳에서 풍류를 즐기곤 하였는데 예전에는 종호암 부근에 종호정이라는 정자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문(石門)’이라는 글자만이 바위에 남아 있어 당시 선비들의 풍류와 호연지기를 짐작할 뿐이다.

구미교에서 강을 따라 걸어가다 보면 조선 초기 정자인 구암정(龜岩亭)과 만날 수 있다. 구암정은 조선 중종 대의 학자인 양배(楊培)의 덕망을 흠모한 후학들이 1898년에 세운 정자이다. 양배는 일찍부터 학식과 덕망이 높았으나 무오사화(戊午士禍), 갑자사화(甲子士禍)로 인해 어진 이들이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아우 양돈(楊墩)과 함께 낚시로 소일하며 출세의 길을 마다하였다고 한다. 구암정을 지나 다시 강변을 따라 걸으면 섬진강변 가까이로 너른 평야와 강천산 자락이 다가선다. 이 명당에 자리한 또 하나의 정자는 어은정(漁隱亭)이다. 이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문신 어은 양사형(楊士衡)이 세운 정자인데, 정자에 이으러 섬진강 물결을 바라보니 이곳의 풍광에 반해 정자를 세웠다는 양사형의 마음이 절로 느껴진다.

깊은 산과 맑은 물이 빚어낸 전설과 역사는 오늘날을 사는 사람들에게 한 호흡 쉬어갈 수 있는 휴식처를 마련해 준다. 적성면 석산리 일대에 마련되어 있는 마실 휴양 단지는 오토 캠핑장과 실내 숙박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야영객을 위한 취사장과 샤워실, 화장실이 준비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겨울철에도 온수가 공급되어 사계절 내내 캠핑객들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섬진강 자전거 길 인증 센터가 있어 자전거 여행자들의 시선을 끈다. 적성면 일대를 거점으로 조성된 순창 예향 천리 마실길을 둘러보는 것도 순창을 만끽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섬진강 물줄기와 적성면의 산자락을 따라 조성된 마실길은 숲길, 들길, 강변길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이다.

[화산의 아름다움에 취해 강변을 달리다]

자전거 여행자들을 위한 자전거 길이 적성면에서 동계면으로 계속 이어지는데 평남리 강변길을 달리며 감상할 수 있는 화산(華山)은 보는 방향과 때에 따라 산의 형상이 달라지는 명산이다. 산 중턱의 거대한 바위 밑에 큰 굴이 있어 옛날 김돈(金豚)이라는 사람이 이 굴속에 기거하면서 수도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며, 현재는 한자음을 번역하여 '금돼지굴'이라고 부른다.

적성면에 이르러 섬진강은 남서쪽으로 조금씩 돌아나간다. 지북리의 화탄 침수교를 건너 화탄 마을 강변길로 나서면 조선 영조·정조 대의 실학자이자 지리학자인 여암 신경준(申景濬)의 묘를 안내하는 표지판을 만나게 된다. 여암 신경준신숙주(申叔舟)의 동생인 신말주(申末舟)의 10대 손으로, 신말주단종이 폐위하고 세조가 즉위하자 낙향하여 순창에 기거하였으며 그 후손이 대대로 순창에 거처를 두고 번창하였다. 신경준의 묘가 있는 유등면 오교리에는 조선 선조 대에 세워진 화산 서원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화산 서원신경준이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던 곳으로 신말주, 김정(金淨), 김인후(金麟厚), 고경명(高敬命), 김천일(金千鎰) 등 순창을 대표하는 위인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폐 서원이 되어 옛 자취만을 짐작할 뿐이니 안타까움이 앞선다.

화탄 마을을 뒤로 하고 유촌 대교를 건너면 대교 아래 너른 잔디 운동장이 펼쳐진다. 섬진강 군민 체육공원이 그것인데 운동 시설과 편의 시설, 음수대와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까지 살뜰하게 갖추고 있다. 자전거 여행자들이라면 트랙을 한두 바퀴 달린 후 목을 축여도 좋겠고, 보도 여행자라면 가벼운 산책 후 잔디에 누워 잠시 쉬어가도 좋겠다.

[적성강의 끝자락 향가 유원지로]

유등면 외이리에 이르러 강은 넓어지고 깊어진다. 외이리 강변길을 따라 가다가 다시 경천을 거슬러 올라 유풍교를 만난다. 그대로 유풍교를 건너면 섬진강 자전거 길로 들어서고 유풍교를 등진 채 반대 길로 방향을 잡으면 영산강 자전거 길로 진입한다. 그러니 유풍교는 섬진강 자전거 길과 영산강 자전거 길이 맞닿는 접합 지점인 셈이다.

섬진강 자전거 길로 방향을 잡으니 향가 유원지로 가는 길이다. 풍산면 대가리에 위치한 향가 마을은 섬진강옥출산(玉出山)을 휘감아 돌면서 머물러 가는 마을이다. 예로부터 수많은 배들이 드나들던 나루터로서 아름다운 경관 덕분에 항가리(港佳里)로 불리기도 하였다. ‘향가(香佳)’라는 이름은 섬진강을 향기로운[香] 물이라 하고, 옥출산을 ‘가산(佳山)’이라 하여 한 글자씩을 따다 붙인 것이다. 마을 입구의 향가 터널을 통해 향가 마을로 들어설 수 있는데 2013년 국토 교통부에서는 이 터널과 폐교각을 이용한 섬진강 자전거 길을 조성하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남원, 순창, 담양 지역의 쌀을 수탈할 목적으로 철도 건설을 시작하였으나 1945년 패망과 함께 공사가 중단되었고, 이후 마을 통행용 터널로 사용되었다. 향가 터널과 폐교각을 이용해 새롭게 탄생한 길은 섬진강 자전거 길 전체 구간 중에서도 경치가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구간이다.

다리에 올라 섬진강을 바라본다. 순창에 이르러 적성강이라는 이름을 얻은 섬진강향가 유원지에 머물지 않고 남원과 곡성 땅을 차례로 적시며 광양만을 향해 흘러간다. 남해의 큰 품에 안기기까지 섬진강을 잊지 못하리라. 옥천 고을 품고 돈 굽이굽이 사연을.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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