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2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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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細龍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세룡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진성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세룡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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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 세룡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3.95㎢ |
가구수 | 52가구 |
인구[남/여] | 99명[남 50명/여 49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인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세룡(細龍) 마을은 1450년(문종 즉위년) 고령 신씨(高靈申氏)가 맨 처음 터를 잡았다고 한다. 이 마을 앞 냇가에 이무기가 살고 있었는데, 마을 노인의 꿈에 나타나 “뒷산이 보여 승천하지 못하고 있으니 마을 어귀에 나무를 심어 뒷산을 가려 달라”고 하였다. 이에 노인이 마을 주민들과 의논하여 마을 앞에 느티나무를 심었고, 그 후 이무기가 용이 되어 승천하자 마을 이름을 세룡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는 마을 뒷산이 서룡산이기에 서룡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둔기 마을은 세룡리에서 남쪽으로 솟은 장군봉 아래 형성되었는데, 그 형상이 장군이 진을 친 장군둔기(將軍屯基)로 진터란 뜻이다.
[형성 및 변천]
세룡 마을은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선월(仙月) 마을, 둔기(屯基) 마을을 합하여 세룡리라 하였다. 선월 마을은 처음 선달굴이라 부르다 1914년 선월리라 하고 세룡리에 병합하였으나 교통이 불편하고 산간오지라 마을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 버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다. 둔기 마을은 후백제 견훤(甄萱)의 전쟁터였다고 전한다. 후백제 당시 큰 사찰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요즘에도 기왓장 같은 유물이 발굴되고 있다.
[자연 환경]
세룡리는 남북 방향으로 길게 늘어선 손가락 모양처럼 생긴 지역에 동서로 200m 이상의 고원이 펼쳐져 있으며, 그 사이로 지류가 흘러가면서 저수지 및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세룡리는 동쪽에 적성면 석산리, 서쪽에 마흘리, 남쪽에 적성면 대산리, 북쪽에 심초리가 있다. 적성면과 인계면의 동쪽 경계부를 이루기 때문에 그 경계를 이루는 능선들이 두류봉[545.4m]에서부터 시작되어 남쪽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세룡리의 동쪽은 급경사를 이루는 능선들이 적성면 석산리 사이에 형성되어 있으며, 서쪽 역시 200m 능선들이 심초리와 경계를 이룬다. 선월 마을은 이처럼 높은 고도에서 지류가 흐르는 낮은 저지대 사이에 가촌처럼 형성되어 있으며, 세룡 마을과 둔기 마을은 저지대의 도로나 지류 주변에 형성되어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세룡리의 면적은 3.95㎢이며, 인구는 52가구, 99명으로 남자가 50명, 여자 49명이다. 북쪽으로부터 선월 마을, 세룡 마을, 둔기 마을이 있다. 좁고 긴 협곡을 따라 형성된 산간 분지라서 밭농사가 주를 이루며, 세룡지[세룡제라고도 함]가 선월 마을과 세룡 마을 사이에 있어 소하천변의 논농사 지대에 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마흘리에서부터 이어지는 국도 21호선이 주요 진입로이며, 국도 27호선에서 갈재를 넘어 분기된 세룡로가 세룡리의 여러 마을을 연결해 주는 통로로 이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