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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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山里 |
이칭/별칭 | 죽말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양병호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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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 유산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2.23㎢ |
가구수 | 25가구 |
인구[남/여] | 44명[남 19명/여 25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동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나주 임씨(羅州林氏) 임충인(林忠仁)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근 주민 100여 명을 이끌고 만산에 이르렀다가, 임금이 청군에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북향하여 통곡한 후 귀향하여 버드나무 다섯 그루를 심었다. 그 후 유산리로 불리게 됐으며, 지금도 버드나무 네 그루가 남아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는 남원부 성남방(城南坊)에 속하였다. 후에 남원군 아동방 유산리로 불렸으며,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에 따라 동계면 유산리가 되었다.
[자연 환경]
동계면 소재지인 현포리에서 북으로 사자앙천태산(獅子仰天泰山)이 우뚝 솟아 있는 밑에 유산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남원, 순창, 임실이 각각 16㎞ 정도 떨어진 곳이다. 동계면 소재지에서 북으로 연산 고개를 경유하면 관전 마을과 신흥 마을이 나오며, 그곳에서 북으로 향하면 덕치(德峙)를 넘어 이동리와 유산리가 나온다. 황새바위산은 유산리 앞 안산이고, 합미산성의 내룡이 관암산(鸛岩山)이다. 사자산(獅子山)은 유산리의 뒷산으로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사자앙천혈(獅子仰天穴)이 있다고 한다. 사자산의 상봉에 있는 바위가 암석봉(岩石峯)이다. 사자산은 명산이어서 농사철에 가뭄이 극심하면 암석봉에서 기우제를 올렸다. 높이 400m 사자봉과 암석봉은 일명 400고지라고도 불린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유산리의 면적은 2.23㎢로 농경지 59만 8,000㎡, 임야 1.63㎢이다. 인구는 25가구, 44명으로 남자가 19명, 여자가 25명이다. 옛날에는 수정리, 주월리, 신흥리, 이동리, 유산리 5개 마을의 교육 기관으로 서당이 있었다. 매년 꽃이 피고 화창한 날을 택일하여 각 리 학동(學童)을 한자리에 모아 매년 1회 강시(講試)하였다. 그 후 일제 강점기에 교육 기관으로 동계면 소재지에 성동 보통학교가 설립되었는데, 성남방의 ‘성(城)’ 자와 동계(東溪)의 ‘동(東)’ 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었다.
유산리에는 1992년 6월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141호로 지정된 나주 임씨 절도공파 종중 유품(羅州林氏節度公派宗中遺品)이 있다. 유품 중 회림각(會林閣)은 유품 보호각으로 홍패, 교지, 어사화, 일산, 문집 등 유품 58점이 보존되어 있다. 대표적인 품목으로 임문수(林文洙)의 교지, 임복진의 교지, 임형원의 교지가 있다.
이밖에도 유산리에는 전주 이씨 효열문(全州李氏孝烈門)이 있다. 애산 마을 경주 김씨(慶州金氏) 문중에서 대한민국 제2대 국회 의원 김정두(金正枓)가 배출되었다. 1950년경 나주 임씨 집성촌으로 80여 가구가 거주하였으나 현재는 20여 가구만 거주하고 있다. 특산물은 밤, 은행, 매실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