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3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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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村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재순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개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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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천 시기/일시 | 1972년 - 유촌리에서 유천 마을, 책암 마을 분리 |
변천 시기/일시 | 1979년 -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입암리 일부 지역이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책암 마을에 편입 |
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 유촌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3.65㎢ |
가구수 | 120가구 |
인구[남/여] | 223명[남 104명/여 119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유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유촌리(柳村里)는 유촌(柳村) 마을과 유천(柳川) 마을, 책암(冊巖) 마을을 합해서 법정리로 부르는 명칭이다. 유촌 마을과 유천 마을섬진강 변에 버드나무가 많이 서 있었기에 ‘버들’이라고 부르다가 한자음으로 ‘유촌’, ‘유천’이 되었다. 책암 마을은 책 모양의 바위가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지명이다.
[형성 및 변천]
1972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유촌리에서 유천 마을, 책암 마을이 분리되었다. 1979년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입암리 일부 지역이 대통령령으로 책암 마을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유등면 동남쪽에 위치한 유촌리는 북쪽으로는 오교리, 동남쪽으로는 남원시 대강면 월탄리, 북서쪽으로는 외이리, 서남쪽으로는 풍산면 두승리와 접한다. 지방도 730호선을 사이에 두고 유촌 마을과 유천 마을로 나뉘며, 광주 대구 고속 도로가 유촌 마을·유천 마을과 책암 마을 사이를 가르며 지나고 있다. 책암 마을 서남쪽에 중구봉[206m]이 위치한다. 유촌리 동북쪽에 있는 들을 갈거리들이라 하며, 유촌에서 무수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구름 고개라고 부른다. 유촌리 동남쪽에 있는 바위를 책바우라고 부르며 책암 마을이 있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유촌리의 면적은 3.65㎢로, 이 중 논 59만 2,109㎡, 밭 19만 3,257㎡, 임야 2.28㎢이다. 인구는 유촌 마을이 61가구, 113명으로 남자가 51명, 여자가 62명이다. 유천 마을은 48가구, 83명으로 남자가 40명, 여자가 43명이며, 책암 마을은 11가구, 27명으로 남자가 13명, 여자가 14명이다.
섬진강 군민 체육공원 위로 유촌 대교가 놓여 있으며, 유촌 마을과 유천 마을을 연결하는 다리로 유촌교와 유촌 1교가 있다. 또한 유천교와 지방교[군교]인 책암교가 있다. 섬진강이 유촌리 왼쪽에서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있다. 토착 성씨로는 이천 서씨(利川徐氏), 옥천 조씨(玉川趙氏), 평강 채씨(平康蔡氏), 동래 정씨(東萊鄭氏) 등이 있다.
유촌 마을 서남쪽에 조그마한 동산이 있는데, 여기에 수백 년 된 귀목나무[느티나무] 몇 그루가 서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신성시하며 정월 대보름날 마을의 안녕과 풍년 농사를 기원하며 당산제를 지냈으며, 유행병이 돌게 되면 모두가 잠든 후에 디딜방아 몸통을 당산에 세우고 여자 속옷을 거꾸로 씌워 놓으면 유행병이 들어오지 못하였다고 한다. 외지 사람이 들어와 배를 만든다고 이 나무들을 베어가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유촌리 남쪽에 있는 화남사(華南祠)는 1909년(순종 3)에 세운 사당으로,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들을 모집하여 섬진강 변으로 상륙하는 왜군들과 싸워 공을 세운 유계(柳溪) 서영우(徐永佑)를 모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