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0416 |
---|---|
한자 | 金昌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창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호숙 |
개설 시기/일시 | 1914년 - 전라북도 순창군 구암면 금창리 개설 |
---|---|
변천 시기/일시 | 1935년 - 전라북도 순창군 구암면 금창리에서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창리로 개편 |
법정리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금창리 |
성격 | 법정리 |
면적 | 9.50㎢ |
가구수 | 59가구 |
인구[남/여] | 104명[남 53명/여 51명] |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구암면 소속으로 국화(菊花) 마을·황학(黃鶴) 마을·창평(昌平) 마을·금상(金箱) 마을 등 4개 마을을 묶고 금상의 ‘금’ 자와 창평의 ‘창’ 자를 합쳐 금창리(金昌里)로 개편하였다. 자연 마을인 황계 마을은 누런 닭이 알을 품고 있는 황계포란(黃鷄抱卵) 형상이어서 황계촌(黃鷄村)으로도 부른다. 황계촌 뒤 골짜기에 있는 마을은 국화촌(菊花村)으로 국화 마을이라고 하나 달리 구와촌(狗臥村), 즉 개가 누워 있는 형상의 마을이라고도 한다. 황계촌 앞 마을은 이율 마을로 옛날에는 창평 마을로 불렀다. 이율 마을은 원래 두 마리 소라는 뜻에서 이우라고 불렀다. 소툼벙과 소매봉이라 부르는 곳이 있으며, 외와등이라고 하는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란 지명도 있어 소와의 연관성을 보여 주고 있다. 이와 같이 황계촌, 국화촌, 이율 마을 등 세 마을이 황계 마을을 이룬다.
금상 마을은 이 마을 부근에 금(金)이 매장되어 있어 금상굴이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지형상 금반(金盤) 형상이라고도 한다. ‘쇠 금(金)’과 ‘상자 상(床)’ 자를 쓰는 금상굴은 마을 전체가 풍수지리적으로 행주형 지세[배 형국]라고도 한다. 『순창의 살기 좋은 터』라는 책에는 “금상이란 말은 임금을 지칭하는 말이다. 굴이란 혈이란 말이므로 임금이 있는 혈이 있는 곳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나와 있다.
[형성 및 변천]
1760년(영조 36) 발간된 『옥천 군지(玉川郡誌)』 방리(坊里) 신증(新增) 편에 옥천군의 북방 12㎞[30리] 지점에 이암방(耳巖坊)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암방에는 18개 마을[里]에 543호가 거주하였으며, 1897년(고종 34) 방(坊)을 면(面)으로 바꾸면서 이암방을 구암면(龜巖面)으로 개칭하였다. 구암면은 구암리(龜岩里)·구산리(九山里)·오공리(五公里)·호치리(虎峙里)·마흥리(馬興里)·입암리(立岩里)·사곡리(沙谷里)·둔기리(屯基里)·학현리(鶴峴里)·회룡리(回龍里)·오룡리(五龍里)·천금리(千金里)·호곡리(虎谷里)·신덕리(新德里)·통안리(桶安里)·율북리(栗北里)·주현리(舟峴里)·안심리(安心里)·미정리(彌亭里)·낙양리(洛陽里)·산내리(山內里)·죽림리(竹林里)·금평리(錦枰里)·치천리(淄川里)·국화리(菊花里)·황학리(黃鶴里)·창평리(昌平里)·금상리(金箱里) 등 2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0년 일제에 의해 조선 총독부 관제가 제정되면서 면, 촌, 방, 사, 리, 부 등이 면급으로 통일되었고,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으로 구암면은 구산리·구암리·성곡리·율북리·안정리·금천리·금창리의 7개 리로 병합되었다. 이 중 국화리·황학리·창평리·금상리가 금창리로 편제되었다. 1935년 군·면 통폐합 때 구림면 금창리가 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연 환경]
금창리는 동쪽으로 안정리와 인접하며, 솔개재와 농싯들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면 방화리 민재와 가깝다. 서쪽으로 운북리·쌍치면과 경계를 이루며 신광사재와 사실재를 지나며, 북쪽으로는 정읍 산외면과 경계를 이룬다. 큰 산들로 둘러싸인 험준한 고개와 계곡이 많아서인지 많은 전설이 남아 있다. 쌍치면과 정읍군, 구림면의 경계 지점인 신광사재[570m]에서 남쪽으로 산맥이 뻗어 내려 산과 물이 서로 얽히어 싸고돌아 형성한 마을이 금상골이다. 또한 정읍군 칠보면과 경계를 이루는 무너미재와 장군봉 중간 지점에 솟아 있는 매봉[752.6m]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맥이 동남쪽으로 내려오다 방향을 살짝 서쪽으로 틀어 형성된 마을이 황계촌(黃鷄村)이다.
이율에서 서북쪽으로 가는 산이 벌통산[689m]이고 금상골 남쪽에 있는 산이 두루봉이다. 투구봉[706m]은 국화촌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장군이 쓴 투구 형상이라고 한다. 덕가리봉은 이율 동쪽에 있는 산으로 덕가리, 즉 병아리를 가두어 기르는 도구 형상이다. 금창리에는 높은 산만큼 고개가 많은데 매봉재, 물더미재, 당산재, 민재, 뛰엄재, 사실재, 솔개재 등이 있다. 특히 신광사재는 금상골에서 쌍치면 용전리 먹산리로 가는 고개로, 전봉준(全琫準)이 압송되어 넘어간 길이라 하여 임도로 복원하였다.
금창리에서 발원하는 물들이 하천을 형성하며 금상 마을 앞에서 합수된다. 금상리 하천은 옛날부터 금이 채취된다 하여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이 물은 황계와 베틀아우를 지나 안정리로 흘러서 섬진강으로 합수된다. 바위들 지명도 모두 독특한데 꿩 구워먹은 바위, 얼음 바위, 삼형제 바우, 가마 바위, 사모 바위 등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많다. 또한 공구밭굴은 큰 바위가 공처럼 생겨서 설악산의 흔들바위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황]
2021년 12월 현재 금창리의 면적은 9.50㎢이며, 인구는 59가구, 104명으로 남자가 53명, 여자가 51명이다. 면소재지로부터 북쪽으로 5.9㎞ 지점에 위치한다. 현재 금창리의 행정리는 황계리와 금상리이며, 자연 마을로 금상 마을, 황계 마을, 국화촌 마을, 이율 마을이 있다. 지방도 729호선과 농도 308호선이 금상리를 지나간다. 황계천, 과촌천, 이율천, 이게천, 안금상천이 마을을 휘감고 흐르며 안정리를 지나가 치천을 이루고 섬진강으로 합수된다. 과촌에서 황계를 잇는 무등길, 이율에서 속리를 잇는 민재길과 덕가리봉길 등 옛길이 남아 있다. 금창리의 들로 진걸들, 왯동들, 진상골, 농싯들, 동망들 등이 있다.
금상 마을은 평산 신씨(平山申氏), 남원 양씨(南原楊氏), 여진 양씨가 토착 성씨이며, 황계 마을 토착 성씨는 평산 신씨다. 현재 당산제는 지내지 않고 매년 2월 초하루 탑제를 지내고 있다. 금상골 지킴이는 마을 왼쪽 논가에 위치한 1기의 돌탑과 그 주위에 세워진 짐대[솟대]다. 돌탑 위에는 입설 2기가 세워져 있다. 원래 돌탑은 마을 어귀에 영감 돌탑, 할멈 돌탑이라 하여 세워져 있었으나 영감 돌탑은 허물어지고 지금은 할멈 돌탑만 남아 있다.
돌탑 규모는 높이 170㎝, 폭 310㎝이며, 돌탑 위 입석은 각각 높이 70㎝, 폭 20㎝, 두께 25㎝와 높이 50㎝, 폭 25㎝, 두께 15㎝이다. 돌탑 주위로 짐대 4기가 세워져 있고 짐대 위에 새를 얹어 놓았다. 짐대는 매년 짐대제를 모시면서 1기를 새로 세우며, 그 전에 세운 것은 저절로 쓰러질 때까지 그대로 보존한다. 금창리 탑제는 할머니 탑에서 탑제와 짐대제를 병행한다.
춘계(春溪) 양윤숙(楊允淑)이 태어난 곳이 국화촌으로, 박경락(朴京洛) 등 많은 의병이 활동하였던 역사의 격전지다. 또한 피노리에서 잡혔던 전봉준이 사실재와 신광사재를 거쳐 순창 관아와 담양을 지나 나주관아로 끌려가던 압송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