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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날리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1723
한자 鳶-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모정리|금과면 매우리|복흥면 구미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황금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음력 1월 1일~1월 15일

[정의]

전라북도 순창 지역에서 정초에서 정월 대보름까지 바람을 이용하여 연을 하늘에 띄우며 즐기는 놀이.

[개설]

연날리기는 대나무 가지를 가늘게 자르고, 그 위에 종이를 바른 연을 실로 연결하여 바람을 이용해 하늘에 띄우는 민속놀이이다. 연날리기는 전 세계적으로 보편화되어 있으나 순창 지역에서는 놀이를 겸한 액막이 행사로서의 성격을 갖고 있다. 연날리기는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많이 즐겼으며, 연줄을 서로 닿게 하여 다른 사람의 연줄을 끊는 연싸움도 즐겼다. 정월 초하루부터 대보름날에 걸쳐 연날리기가 성행하였는데, 이유는 일 년 중 이때가 연날리기에 가장 적당한 바람이 불었기 때문이다.

[연원]

연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원 수 세기 전 그리스와 중국에서 발명됐다는 기록이 있으며, 우리나라도 삼국 시대부터 정찰용 또는 민심 수습용으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는 『삼국사기(三國史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647년(진덕여왕 1)에 대신 비담(毗曇)염종(廉宗)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월성(月城)에 큰 별이 떨어지자 왕이 크게 두려워하였다. 이에 김유신 장군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연에 달아 띄우니 별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했다.

또한 고려 시대 최영 장군이 탐라 지방의 반란을 평정할 때 큰 연을 많이 만들어 불을 달아 올림으로써 평정이 가능하였다는 기록이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전한다. 이렇듯 연날리기는 놀이뿐만 아니라 전쟁에서도 사용된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연날리기가 민간에 널리 보급된 것은 조선 후기 영조 때라고 한다. 영조는 백성들의 연날리기를 즐겨 구경하고 장려함으로써 민간에까지 널리 전파되었다고 한다.

[놀이 도구 및 장소]

놀이는 대나무와 문종이로 만든 연과 무명실을 꼬아서 자새에 감은 연줄이 필요하다. 연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지만 순창 지역에서 전통 연 중에 가장 많이 띄우는 연은 방패연(防牌鳶)과 가오리연이다. 방패연은 한지와 대나무로 만드는데, 종이 가운데를 동그랗게 오려낸 후 이 구멍을 중심으로 준비해 둔 얇은 대나무 쪽을 쌀 ‘미(米)’ 자 형으로 붙이고, 다른 하나는 머리 부분에 가로로 붙인다. 머리 부분과 중간에 가로 붙여 놓은 대나무를 초승달 모양으로 약간 오그라지게 실로 죄어 묶은 다음, 다시 머리와 아래쪽에 실을 매고 또 꼬리를 길게 붙여 공중에 띄우는 것이다. 이때 각자의 취향에 따라 연을 아름답게 색칠하거나 혹은 여러 가지 그림을 그리기도 한다. 가오리연은 마름모꼴 모양이며, 방패연보다 만드는 방법이 비교적 간단하다.

동계면 구미리 귀주 마을의 한 주민은 어린 시절 연 만드는 방법을 어른들에게 배웠다. 댓살을 얇게 깎을수록 연이 가볍고, 모든 살들의 무게가 똑같아야 균형이 잘 잡히고, 중앙선을 잘 달아야 연이 잘 난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부터 남자아이끼리 겨울철이면 연날리기를 했다. 연만 있으면 바람이 잘 부는 언덕이나 강가 또는 장애물이 없는 논밭 등 공터에서도 날릴 수 있다.

[놀이 방법]

놀이 방법으로는 높이 띄우기, 재주 부리기, 연싸움인 끊어 먹기 등이 있다. 순창 지역에서 가장 보편적인 연날리기 방법은 높이 띄워 멀리 보내기였다. 연을 놀리는 사람의 기술과 경험에 따라 연날리기의 재미가 달라진다. 바람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연실을 조이고 풀어 주기를 조절하여 높이 띄울 수도 있고, 갖가지 재주를 부릴 수도 있다. 특히 청장년층 사이에 성행했던 연싸움을 통해 축적된 기교를 마음껏 발휘한다. 연싸움은 서로 연실을 맞대어 상대의 줄을 끊거나 연을 바닥에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래서 연줄을 강하게 하기 위해 연줄에 사기 가루나 쇳가루 등을 섞은 풀을 먹이기도 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정초에 연을 만들어 높이 띄우고 놀다가 정월 대보름에 그 해의 액운을 멀리 날려 보내기 위해 음력 정월 열 나흗날에 띄워 보내는 연을 ‘액막이연’이라고 한다. 액막이연에는 이름, 생년월일과 송액영복(送厄迎福) 등과 같은 글귀를 쓴다. 이로써 한 해의 액운이 연과 함께 소멸된다고 한다. 금과면 매우리 매우 마을에서는 정월 한 달 내내 연날리기 놀이를 했는데, 보름이 지나고 2월이 되기 전인 정월 그믐에 이름을 써서 날려 버렸다고도 한다.

순창 지역에서는 정월 대보름에 망우리[달집]를 짓는데, 예전에는 서른 명이 두 팔을 벌려도 감싸지지 않을 정도의 규모로 크게 만들었다. 이때 연에다 자신의 소원을 적어 대나무 장대 끝에 매달아 망우리에 끼워 두고 달집을 태울 때 함께 태웠다. 동계면 구미리 귀주 마을의 한 주민도 젊은 시절 연에다 소원을 적었는데, 예전에는 지금의 아이들처럼 공부를 잘 하게 해 달라거나 하는 소원이 아닌, 가족의 건강을 빌고, 농사 잘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현황]

지금은 농촌 지역의 출생률이 현저히 낮아 아이들과 젊은이를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TV나 컴퓨터 오락 등에 몰두하여 연날리기에는 관심이 무디어졌다. 따라서 가족 놀이·마을 놀이로서의 연날리기가 퇴색되고 있으며, 순창 장류 축제 등에서 이벤트성 행사로 행해지고 있을 뿐이다. 또한 산업 구조의 변화로 예전에는 어른들이 직접 만들어 주던 연이 요즘은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되며, 학교 앞 문방구에서 사서 쓰게 되었다. 연 만드는 재료도 종이 이외에 얇은 비닐을 사용한 중국산 연이 많이 보급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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