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0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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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龜巖面 |
이칭/별칭 | 이암방,이암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에 있던 지방 행정 구역.
[개설]
구암면(龜岩面)은 이암방(耳巖坊) 또는 이암면(耳巖面)이라고도 하였다.
[관련 기록]
1758년(영조 34)에 발간된 『순창군 읍지(淳昌郡邑誌)』에는 이암방이 군의 북쪽 약 16.83㎞[43리]에 있다고 되어 있다. 1760년에 발간된 『옥천 군지(玉川郡誌)』에는 이암방이 군 북쪽 약 11.78㎞[30리]에 있으며 리 18개, 민호 370호라고 되어 있다. 영조 대에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서북쪽에 있는 이암면은 관아에서 약 15.71㎞[40리] 떨어져 있으며 민호(民戶)[민가]는 379호에 남자 535명, 여자 757명이라고 되어 있다.
1789년(정조 13)에 발간된 『호구 총수(戶口總數)』에는 이암면이며 통안리(桶安里)·안시천리(安是川里)·안심리(安心里)·산내리(山內里)·괴왕리(槐旺里)·황교리(黃橋里)·국화촌(菊花村)·금산동리(金山洞里)·이곡리(梨谷里)·휴암리(鵂巖里)·이정리(梨亭里)·치천리(淄川里)·학현리(鶴峴里)·율북리(栗北里)·오대지리(五大旨里)·사야곡리(沙也谷里)·이암리(耳巖里)·둔기리(屯基里) 등 18개리가 있다. 호구는 412호, 인구는 1,494명으로 남자 623명, 여자 871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귀암(龜巖)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는 북쪽으로 처음이 약 9.82㎞[25리], 끝이 약 19.64㎞[50리]로 되어 있다.
[변천]
1897년(고종 34)에 방(坊)을 면으로 바꾸면서 구암면이 되었다. 1914년 일제가 행정 구역을 개편하면서 정리한 『신구 대조 조선 전도 부군면리동 명칭 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에 의하면 과거 순창군 구암면의 구암리(龜岩里)·구산리(九山里)·오공동(五公洞)·호치리(虎峙里)·마흥리(馬興里)·입암리(立岩里)가 구산리(龜山里), 사곡리(沙谷里)·둔기리·학현리가 구암리, 회룡리(回龍里)·오룡리(五龍里)·천금동(千金洞)·호곡리(虎谷里)·신덕리(新德里)가 성곡리(聖谷里)로 되었다.
그리고 통안리·율북리·주현리(舟峴里)가 율북리, 안심리·미정리(彌亭里)·낙양동(洛陽洞)·산내리·죽림촌(竹林村)이 안정리(安亭里), 금평리(錦坪里)·치천리·국화리(菊花里)의 일부가 금천리(錦川里), 황학리(黃鶴里)·창평리(昌平里)·금상동(金箱洞)과 국화리의 일부가 금창리(金昌里)로 바뀌었다. 이후 1935년에 구암면은 무림면(茂林面)과 합하여 구림면(龜林面)으로 바뀌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