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9020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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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赤城津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노원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범호 |
[정의]
조선 시대 전라북도 순창군 적성면 노원리에 있던 나루터.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적성진(赤城津)은 임실현(任實縣) 오원천(烏源川)의 하류이다. 일명 화연(花淵)이라고도 하는데, 적성산(赤城山) 아래에 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다.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데, 세속에서 전하기를 신령스러운 것이 있다고 하며 날이 가물면 기우제를 지낸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적성진과 관련하여서는 여러 시가 있다. 우선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적성강(赤城江)을 건너다」는 다음과 같다.
일엽경주재취옹(一葉輕舟載醉翁)[술 취한 늙은이 일엽 편주에 실었으니]
석양행색화병중(夕陽行色畫屛中)[석양에 돌아오는 행색 그림 속이로구나]
평생문설화산호(平生聞說花山好)[평소에 화산 경치 좋다하기에]
공망연환점벽공(空望煙鬟點碧空)[부질없이 연환을 바라보며 푸른 하늘을 가리키네]
화산최기절 여이일모래도(花山最奇絶予以日暮來到)[화산이 가장 뛰어난 절경인데 내가 마침 저물게 도착했다]
또한 김종직(金宗直)은 「적성진에서」라는 시를 지었다.
적성현지금황구(赤城縣址今荒丘)[적성현의 터는 이제 황량한 언덕이 되었건만]
적성진수일야류(赤城津水日夜流)[적성진의 물은 밤낮으로 흐르는구나]
총사예예은소고(叢祠翳翳殷簫鼓)[으슥한 숲 속의 사당에는 소고 소리 요란하고]
장시훤훤교마우(場市喧喧交馬牛)[시장 바닥에는 시끄러이 우마가 왕래하네]
만목운산장박모(滿目雲山將薄暮)[눈에 가득한 운산은 장차 저물려 하는데]
영주서도정심추(盈疇黍稌正深秋)[전답에 그득한 곡신은 정히 깊은 가을일세]
요견전애삼홀리(遙見前崖衫笏吏)[멀리 보건대 앞 비탈에 삼홀 착용한 관리는]
정기우향대방주(旌旗又向帶方州)[가는 깃발이 또 대방주를 향하는구나].
[변천]
적성진은 지금의 순창군 적성면 고원리로 조선 시대 지리지에 의하면 남원부 서쪽 약 13.75㎞[35리] 되는 서림원에 있었다고 한다. 적성진의 하류가 저탄(猪灘)이며, 다시 동으로 흘러 남원부의 연탄(淵灘)이 된다. 적성진은 1950년대까지도 비가 내려 물이 넘치면 나룻배로 건넌다고 하였는데, 순창과 남원군 대강면을 잇는 길이었다. 현재는 도로 발달로 나루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