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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902293
한자 朴椿浩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전라북도 순창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신영

[정의]

전라북도 순창군에서 거주한 해양법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개설]

박춘호는 순창 공립 농업학교[현재 순창 제일 고등학교]와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해양법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1995년 독일 함부르크에 설립된 국제 연합 국제 해양법 재판소[ITLOS] 초대 재판관을 9년 임기로 선출되어 역임하였다. 2005년에 재선되어 2대 임기로 활동하다가 2008년에 지병으로 별세했다. 한편 그는 1997년 세계 최고 권위의 국제법 단체인 국제법 학회에 '한국인 1호'로 등재됐으며, 동북아 해양법 연구의 권위자답게 독도 및 어업 협정 관련 자문을 하는 등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다.

[활동 사항]

박춘호는 1930년 전라북도 남원시 대강면 평촌리 평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1950년 순창 공립 농업 학교를 졸업하고, 서울 대학교 문리대학 정치학과에 입학하였으나, 6·25 전쟁이 발발하자 학업을 중단하고 참전하였다. 군산 미공군 기지와 서남 지구 전투경찰 사령부에서 통역관으로 복무했고, 휴전 후 서울대 정치학과에 복학하여 1959년에 졸업하였다. 문교부 차관 비서와 문교부 영어 담당 편수관을 역임하다가 대학 재학 시절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한·일간 어업 분쟁에 대한 공부를 위해 해양법 분야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1965년에 영국에든버러 대학교에 유학해 『아시아 지역 어업의 국제적 규제에 관한 법과 국가 관행』이란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3년 제3차 유엔 해양법 회의에 한국 대표단으로 참가했으며, 1977년부터 ‘해양 정책’, ‘해양 개발과 국제법’ 등 국제 해양법 관련 학술지의 편집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또한 중국의 석유에 대한 연구에도 조예가 깊어 1973년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이에 대해 브리핑을 하기도 했고, 이후 미국하버드 대학동아시아 법률 연구소에서 8년간 국제법의 미개척 분야인 아시아 해양 분쟁과 대륙붕, 해저 자원 등을 연구한 그는 미국 해양법 연구소 집행 이사, 국제 해양 법학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이후 하와이대 교수를 거쳐 1982년부터 고려대에서 법학(국제 공법)을 강의하다 1995년 정년 퇴임했으며, 미 하버드대영국의 『해양 정책』, 미국의 『대양 개발과 국제법』 등 국제적인 해양법 관련 학술지 편집 위원도 지냈다.

한편 1984년 발간된 「북한의 해양법 문제」라는 논문은 북한 해양법에 대한 최초의 연구로 평가되고 있다. 아울러 『동아시아와 해양법』이라는 영문 저서는 미국과 중국 등의 대학 교재로 채택되고, 중국어와 러시아어로 번역판이 나올 정도로 동북 아시아 해양법 연구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박춘호는 영어는 물론, 일어, 중국어, 독어, 불어까지 능통해 이들 언어로 30여 개의 논문과 저서를 발표했다.

독일 함부르크에 있는 국제 해양법 재판소[ITLOS]는 1994년 「유엔해양법」 협약 발효에 따라 협약의 해석이나 적용에 관한 분쟁의 사법적 해결 등 해양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1996년에 21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명실상부한 최고 권위의 해양 분쟁 해결 국제 법률 기구로 우리나라는 1996년에 박춘호 가 초대 재판관으로 당선되어 활동해 왔다. 국제사회에서 발생하는 12 해리 영해 문제와 200 해리 배타적 경제 수역 경계 확정, 대륙붕과 군도 관련 소유권 문제 등을 조정 · 중재 또는 재판하는 것이 주요 기능이고, 재판관의 임기는 9년이며, 3년마다 재판관 정원의 3분의 1이 교체된다.

재판관은 자신의 국적에서 독립된 국제 공무원으로 유엔 해양법 협약과 국제 관습법 등에 따라 중립적으로 재판해야 하지만 통상 국제 해양법 재판소에 자국의 재판관을 두는 것 자체가 해양 분쟁에서 국익을 보호하는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 일본과 배타적 경제수역[EEZ]의 경계를 확정하지 못하고 있는 데다 일본이 독도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어서 국제 해양법 재판소 재판관 자리를 유지한 것이 큰 의미를 갖는다.

마잉주(馬英九) 타이완 제12대 총통은 박춘호를 가리켜 ‘아시아 해양법의 개척자’라고 칭했을 정도로 국제적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겼고, 유엔 해양법 회의에 20여 년 동안 40여회 참가, 해양법 체계 완성과 해양법 재판소 출범에 참여했다. 그는 고려대와 건국대 석좌 교수를 겸임하였고, 2005년 국제 해양법 재판소 재판관 재선에 성공하였으나, 2008년 지병으로 별세하였다.

[상훈과 추모]

2006년 제37회 한국 법률 문화상과 5·16 민족상 학예부문을 수상했으며, 금탑 산업 훈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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