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70006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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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沈孝生 |
영어공식명칭 | Sim Hyo-Saeng |
이칭/별칭 | 부성군(富城君) |
분야 | 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완주군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노석 |
[정의]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전라북도 완주군 출신의 문인.
[가계]
심효생(沈孝生)[1349~1398]의 본관은 부유(富有), 시호는 부성군(富城君)이다. 할아버지는 심종숙(沈宗淑), 아버지는 지금주사(知錦州事)를 지낸 심인립(沈仁立)이다. 외할아버지는 우주황씨 황문용(黃文用)이다. 황문용의 아들이 고려시대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낸 황거중(黃居中)이다. 장인은 전주유씨 유습(柳濕)이다. 심효생의 아들 심도원(沈道源)은 1396년(태조 5) 식년 문과에 급제한 뒤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시호는 경숙(敬肅)이다. 딸은 이성계의 세자 이방석(李芳碩)과 결혼한 현빈심씨이다. 심도원의 손자 심신(沈愼)은 1450년(문종 즉위) 문과에 급제한 뒤 1456년(세조 2) 좌정언(左正言)·이조좌랑 등을 역임했는데, 1456년에 단종복위운동에 가담했다가 처형되었다. 정조 때 신원되고 복권되었다. 심효생은 『태조실록』의 1398년(태조 7) 8월 26일 졸기에 따르면 대대로 전주에 거주했다고 기재되어 있다.
[활동 사항]
심효생은 1380년(우왕 6)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고, 1383년 식년 문과에 급제했다. 고려 말 이성계(李成桂)에게 귀의하면서부터 점차 현직(顯職)에 올라 1391년(공양왕 3)에 문하시중(門下侍中) 이성계의 휘하에서 문하사인(門下舍人)이 되었다. 1392년 6월에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이 되었다. 1392년 7월 이성계를 추대해 개국공신 3등에 올랐으며, 사헌중승(司憲中丞)이 되었다. 이어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를 거쳐 중추부사(中樞副使)가 되었다. 1394년(태조 3)에는 대장군과 첨절제사(僉節制使)를 각각 겸해서 고려 왕의 후손들인 왕화(王和)와 왕거(王琚)를 안동옥(安東獄)에 함께 감금하고, 거제도에서 왕우(王瑀) 부자의 제사를 지내는 등 고려 왕족의 세력을 견제했다. 1394년 10월 딸이 세자 이방석의 빈(嬪)이 되면서 이조전서(吏曹典書)에 올랐고, 아내 유씨(柳氏)는 정경옹주(貞慶翁主)에 봉해졌다. 1395년에는 중추원학사가 되었다. 1397년에는 정도전(鄭道傳)·남은(南誾) 등과 함께 군사권을 장악하고, 공료정책(攻遼政策)을 추진하기도 했다. 1397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서 태조의 서경궁(西京宮) 경영계획을 반대해 그치게 했다. 그 뒤 예문관대제학이 되고, 부성군(富城君)에 봉해졌다. 1398년 8월 무인정사[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남은 등과 함께 세자 이방석 파로 지목되어 이방원(李芳遠)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방석은 1406년(태종 6) 8월 소도(昭悼)의 시호를 받았다. 심효생은 숙종대 복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