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04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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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梁山兩班- |
영어의미역 | The Dance of the yangban of Yangsan |
이칭/별칭 | 「양반춤」,「양산호걸양반춤」 |
분야 | 문화·교육/문화·예술 |
유형 | 작품/무용과 민속극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오세복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에 전해 내려오는 민속 춤의 하나.
[개설]
우리나라 전통 춤을 구시대의 계급에 따라 분류한다면 왕실을 중심으로 한 궁중무와 민족의 중추 세력이었던 양반 사회의 정통 춤과 무속 그리고 서민층이 즐겨 추던 즉흥 춤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궁중무는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고 무속과 서민층의 춤도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양반 사회의 정통 춤은 양반 계급의 몰락과 함께 거의 사라져 버렸다. 「양산양반춤」은 조선시대 사대부 귀족 출신의 한량들이 관기들과 여흥으로 즐겨 추던 춤이 대대로 전승되어 1930년대 일종의 기생 양성소이자 예술 학교였던 양산권번(梁山券番)에 정착되었다.
[구성 및 형식]
「양산양반춤」은 정갈한 조선조 양반계 호걸들의 모습을 춤으로 재현한 것이다. 갓, 망건, 도포 차림에 손에는 장죽과 합죽선을 든 의젓한 차림이 더 없이 깨끗하며, 춤사위는 꾸밈없고 담백하여 마치 조선 백자와 같이 청초한 맛을 풍긴다.
때로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고담준론에 열을 올리며 천하를 눈 아래로 보는 의기가 넘치고 진퇴와 선회에 절도가 엄연하고 섬세한 선율 하나까지도 절제와 고귀함이 담겨 있다. 「양산양반춤」은 춤의 절도가 분명하고 점잖으며 양반의 풍모를 잘 나타내는 춤이다. 독무 또는 군무로도 적당하며, 다양한 표현성과 동적인 사위가 충만한 품격을 갖춘 대표적인 남성 춤이다.
[내용]
「양산양반춤」은 의젓한 양반이 걸어 나오는 모습을 표현한 후 흥겨운 장면을 엿본다. 울리는 장단에 좋아 으쓱이다가 상대를 가리켜 으스대는 사위를 한다. 흥취에 무릎을 치고 탄복하다가 상대 곁으로 걸어간다. 햇빛을 가려 보는 사위를 한 후, 속으로 즐거운 표정을 짓다가 좋아 주저 앉는다.
뒤로 물러서며 양반 자태를 뽐내는데, 땅을 쳐서 부채를 매고 상대를 가리키다가 돌아서며 부채를 펴고 얼굴을 가려 엿보는 사위를 한다. 아주 흥겨운 춤사위와 함께 양반의 위엄을 나타내며 돌아서서 부채를 펴서 좌우를 돌아가며 가리킨다.
앞을 걸어가며 내려앉는 사위를 하다가 관중의 시선을 집중시켜 스스로의 흥에 상대를 어른다. 이 때 돌며 무릎을 쳐 엿보다가 상대를 고르고 돌아서서 좌우 무릎을 치고 뒤로 물러서며 활개를 펴 걷는다. 좌, 우, 옆 배김사위를 하다가 활개를 펴 주저앉아 양반의 자태를 보이며 일어나서 돈다. 마지막으로 흥에 겨워 무릎을 치다가 인사를 하며 마무리를 한다.
[현황]
의상으로는 조선시대 양반의 평복 차림으로 양반 갓, 양반 망건, 흑색 도포띠, 황색 도포, 백색 바지저고리, 백색 버선에 왼손에는 장죽을 들고, 오른손에는 합죽선을 든다. 음악은 북, 장고, 쇠, 징과 같은 사물장단에 맞추어서 추기도 하고 또는 삼현육각(三絃六角)에 맞추어서 추기도 하였으나, 현재는 주로 사물장단에 현악과 관악을 추가하여 사용한다.
김덕명(金德明)은 양산권번의 고문 이주서, 원장 고수길, 평양의 명기 김농주 사범에게서 유일하게 「양산양반춤」을 사사하여 현재까지 전수하고 있다. 이와 함께 김덕명의 제자 최찬수, 김순임 및 양반춤보존회 회원들이 「양산양반춤」 보존을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