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13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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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武力 |
영어음역 | Gim Muryeok |
이칭/별칭 | 무력,호력,무력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
시대 | 고대/삼국 시대/신라 |
집필자 | 백승충 |
[정의]
고대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개설]
김무력의 이름 표기는 자료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구형왕의 둘째아들 무력(茂力)으로 되어 있다. 구형왕의 셋째아들 무력(武力)으로 표기된 『삼국사기』와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삼국유사』 김유신조에는 호력(虎力)으로 표기되었는데, 이는 고려 혜종의 이름인 무(武) 자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단양적성비에는 ‘사탁부(沙啄部) 무력지(武力智) 아간지(阿干支)’로 되어 있으며, 창녕비·북한산비·마운령비에는 ‘사탁부(沙啄部) 영력지(另力智) 잡간(迊干)’으로 되어 있다. ‘另’의 발음은 ‘령’이 아니라 ‘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아버지는 금관국 구형왕(재위 521~532)이며, 어머니는 분질수이질(分叱水爾叱)의 딸 계화(桂花)이다.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
[활동사항]
532년 금관국이 신라와 합병될 때 부친구형왕과 함께 신라 사회로 진출하였다. 신라에 투항한 후 그의 행적은 『삼국사기』의 기록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구형왕의 자손들은 모두 상등(上等), 즉 진골 신분이 되었는데, 무력은 구형왕의 세 아들 중 유일하게 각간(角干), 즉 제1관등인 서불한(舒弗邯)까지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551년 아간지(제6등) 관등으로, 고두림성(高頭林城) 군주(軍主)로서, 단양적성 전투에 참여했다.
553년 한강 유역을 지키는 신주(新州) 군주가 되었으며, 554년에는 관산성전투에 참여해 비장(裨將) 삼년산군(三年山郡: 충청북도 보은군)의 고간(高干) 도도(都刀)로 하여금 백제 성왕을 죽이게 하고, 나아가 좌평(佐平) 4명과 군사 2만 9600명을 참(斬)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561년 잡간(제3등)으로서 대등이 되어 진흥왕의 어가를 수행하여 창녕에 갔다. 568년에는 북한산과 마운령 등지를 수행하였다.
[묘소]
야사에 의하면 신라 조정에서 김무력의 공훈을 천양(闡揚)하여 경상남도 양산 영취산(靈鷲山) 일대를 사패지(賜牌地)로 하사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사서(史書)와 보첩(譜牒)을 면밀히 고찰한 결과 김무력 부부의 무덤이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경내 영축산 자락에 있음이 확인되어 후손들이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