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032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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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本里- |
영어의미역 | Bolli Village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 본리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형분 |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형성 및 변천]
본리마을이 속한 가촌리에 마을이 형성된 시기는 신라시대 이전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사기곡(寺基谷)의 절터, 옷나무골, 새갓 등에서 삼국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수의 기와 및 토기편들이 출토되었다. 특히 가촌리에서 사람이 처음으로 정착한 것으로 알려진 통정곡(桶井谷)에 위치한 옛 집터와 밭들에서는 지금도 삼국시대 토기편들과 고대 농경지 흔적들이 혼재되어 출토되고 있기도 하다. 한편 가촌이란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1600년(선조 33) 『송담선생유사집』’에 가자방(加資坊)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 문헌 기록으로는 최초라고 할 수 있다. 1786년(정조 10) 『양산군읍지』방리(坊里) 조에 가자방리(佳自坊里)로, 1789년(정조 13) 『호구총수』에는 양산군 서면 가촌리(嘉村里)로, 1832년 『양산읍지』방리조에는 상서면 가촌리(佳村里)로 각각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가촌리의 예전 지명은 가자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가자방에서의 가자(加資)는 조선시대 정삼품 통정대부(通政大夫)이상의 품계를 지칭하는 것으로 송담 백수회 공이 1671년(현종 12)에 증 호조참판으로 가자되어 가촌에 거주하였으므로 마을 이름도 역시 가자로 불렸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 뒤 가자(佳自), 가촌(嘉村), 가촌(佳村)으로 변한 것은 절의(節義)를 지키고 예절바르고 착한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고장을 만들고자 하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마을에 집성으로 정착한 씨족은 고려 말기에 분성배씨가 먼저 입촌한 다음 문화유씨, 부여백씨, 밀양박씨, 동래정씨, 파평윤씨 순으로 정착하여 살아왔다고 전한다.
[자연환경]
북쪽은 병풍처럼 펼쳐진 오봉산(五峰山)이 있고, 오봉산에서 가촌의 동쪽으로는 청룡등(靑龍嶝)이, 서쪽으로는 백호등(白虎嶝)이 있다. 산 아래 청룡등의 중허리인 종국고개를 넘어 가촌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지방도 1022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원동가는 길과 물금가는 길이 갈라진다. 그 아래 남쪽으로 메기들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에 자라모양의 증산(甑山)이 자리잡고 있다.
[현황]
본리마을은 가촌리의 중앙에 있는 마을로 2007년 12월 31일 현재 총 476가구의 1,34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 마을 사람들은 농업에 종사하고 있었으나 물금신도시의 영향으로 논이 다 없어져 주민들은 상업 및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 송담서원이 있다.
마을 서쪽으로는 빌라촌들이 즐비하며, 물금신도시의 영향으로 많은 발전을 하고 있는 마을이다. 2007년에 마을 앞으로 물금과 연결된 새 도로가 생겼다.
양산시청에서 국도 35호선을 지나, 양산시 보건소 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삽량교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진행하다 만나는 첫 번째 사거리에서 범어사거리 방향으로 우회전하면 지방도 1022호선을 만나게 된다. 이 지방도를 따라서 황전아파트까지 진행하면 길이 두 갈래로 갈리는데, 오른쪽 길을 택해서 직진하면 마을의 중심부와, 왼쪽 길을 택해 직진하면 마을의 동쪽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