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1403235
한자 三甘-
영어의미역 Samgam Village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감리 삼감마을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형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총인구(남, 여) 473명[남 250명, 여 223명]
가구수 192가구

[정의]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감리에 있는 자연 마을.

[명칭유래]

삼감이란 마을 이름의 유래는 감수(甘水)가 솟아나는 세 곳의 샘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도 물통골샘, 복판샘, 아래샘 등 세 개의 샘이 있다.

[형성 및 변천]

삼감마을이 속한 하북면은 685년(신문왕 5)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였을 때 삽량주의 일부였다. 757년(경덕왕 16)에는 삽량주가 양주(良州)로, 고려 태조 때에 이르러서는 양주는 다시 양주(梁州)로 개명되었다. 995년(성종 14)에 영동도에 속하게 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는 1413년(태종 13)에 양주(梁州)가 양산군(梁山郡)으로 개칭되면서 하북면(下北面)은 양산군(梁山郡)에 속하게 되었다. 1897년 이전까지는 하북방이라 칭하다가 1910년 지방제도 개편 때 하북면이 되었고, 삼감리하북면에 속해 있었다. 이 때 하북면사무소답곡리 성천마을에 있었으나, 1918년 현 위치에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삼감리 지역에 사람들이 주거를 형성한 시기에 대한 구전 및 문헌적인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 그러나 인근 통도사의 창건 연대가 신라 7세기 경이고, 인접한 백록리의 고분 및 내원사 인근 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을 고려해 볼 때 거주 시기는 삼국시대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부 마을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신라 때인 7세기 중엽에 연안이씨가 처음 입촌했다고 하나, 현재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 연안이씨 후손들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맹활약한 동면 금산 사람인 첨정(僉正) 금호(琴湖) 이수생(李秀生)의 손자 이로(李櫨)가 1660년 경에 마을에 처음으로 이주해 온 것이 시초라고 한다.

[자연환경]

동쪽으로는 천성산, 서쪽으로는 염수봉 산지에 둘러싸인 곡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마을의 뒷산 능선이 호랑이가 나르는 형상이라 하여 벽호등이라 하고 마을을 중심으로 사방 숲(서당갓, 숲갓, 아랫숲갓)이 마을을 울타리처럼 에워싸고 있다. 평평한 지대가 펼쳐져 살기 좋은 마을로 이름이 나 있다.

양산천이 흐르고 있으며, 다리를 지나면 마을 입구에 소나무 몇 그루가 있고 삼감도예라고 벽면에 크게 쓴 글씨가 눈에 띈다.

[현황]

삼감마을삼감리의 중심 마을로 2007년 12월 31일 현재 총 192세대에 47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살기가 좋아 마을을 농촌건강장수마을로 추진 중이며 양산시 농업기술센터에서는 농사체험장도 임대하고 있다. 근래 들어 생활 도자기를 만들고 있으며, 작은 기업체가 몇 개 들어서기도 했다.

사찰로는 비구니 사찰인 능인정사가 있다. 주요 지명으로는 곤달비골·괭이골·계골·구불등·골논·골각단·당산등·매바위골·번개버등·배다리웅딩이·복판새미·생이지걸·서당갓·성낭골·솔대골·선바위·송골·숭충골·아래새미·앞새들·윗새들·숲갓과 아래숲갓·옥만딩이·외배미·쟁기골·주치밭과 주치바위·외배미·학등·향청논·홈골·보비등 등이 있다.

경부고속국도와 국도 35호선이 지나며, 양산천 건너로 용연마을이 있다. 북쪽에 통도사로 통하는 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동쪽으로는 내원사로 통하는 지방도 1028호선이 지나고 있다.

국도 35호선을 타고 언양 방면으로 진행하다가 보면 양산IC, 석계마을, 내원사 입구를 차례로 지나게 된다. 내원사 입구를 지나면 곧 용연교를 건너게 되는데, 그 앞에 삼감마을 입구를 알리는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마을은 그 앞에서 좌회전하여 삼감교를 지나면 바로 만날 수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