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A020205 |
---|---|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용당들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향토사연구회 |
용신제에 대해서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면 이야기가 막힘없이 흘러나온다. 그것은 용신제를 아끼는 마을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용신제는 조선시대 사독의 하나로 지금까지 계승되는 것은 가야진 용신제뿐이다. 이 때문에 1997년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으며 제사의 형태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용신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이 마을사람들에서 찾아진다.
제례문화로서만 고집하는 것은 용신제를 보존하는 면에서는 매우 중요하지만 현재 이 의식에 참여하는 많은 젊은 사람들을 흡수하기에는 어려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용신제를 새로운 또는 발전된 시각으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것이다.
용신제에서 상쇠를 맡고 있는 박홍기(44세)에 따르면 용신제 때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는 사람은 신곡마을 주민이며, 지금 하고 있는 것은 12년 전 옛날 어르신들의 고증을 얻어서 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용신제에서 하는 소리도 지금은 ‘길 밟기 소리’, ‘지신밟기’, ‘아 가야제’라는 3개 정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원래 소리는 총 4개였으며 지금 마지막 것은 잘 안하고 있다고 한다. 옛날에는 학춤 인간문화재도 있었으나 이제 인간문화재분들이 거의 돌아가셔서 용신제 고증에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박홍기, 양산 거주 회사원, 44세)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용신제에서 앞에 서서 소리를 하신 분
웹사이트 플러그인 제거 작업으로 인하여 플래시 플러그인 기반의 도표, 도면 등의
멀티미디어 콘텐츠 서비스를 잠정 중단합니다.
표준형식으로 변환 및 서비스가 가능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는 순차적으로 변환 및 제공 예정입니다.
선창 이임수씨
또한 원동은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어서 용신제를 알리는 데에도 쉽지 않다고 한다. 다시 박홍기의 이야기를 통해 그러한 정황을 엿볼 수 있다.
“원동이라는 지역은 예전에는 열차로만 다닐 수 있는 고립지역이었어. 그러다보니 인원 동원도 안 되고 또 용신제를 잘 아는 사람이 자문 역할을 해주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잘 안 되고 있어. 큰일이야. 거기다 요새는 마을마다 사람들이 다 떠나가서 사람들 모으기가 쉽지를 않아. 그래도 이곳은 지역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보니까 아직까지는 토속적인 것이 남아 있어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것 같아. 그런데 또 문제는 이러한 지역적인 문화를 중앙에서조차 채록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야. 잘만하면 지역문화제로서 충분한 보존가치가 있는데도 말이야. 또 용신제를 지내는 날짜가 본래는 초 정일에 지내는 것이 아닌데도 2월에 향교에서 지내는 석존대제 이후에 날을 잡다보니까 그렇게 된 것이야. 이렇게 되니 평일에 지내게 되고 문제는 사람들이 많이 보러 오지 않는다는 거야. 전체적으로 한 번 깊게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해. 또 사람들이 보러 와도 여기서 하는 것이 용신제밖에 없다보니까 좀 답답하기도 해. 그래서 내년부터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리기 위해서라도 일요일로 옮기려고 생각 중이야. 가급적이면 여기에 매화가 많으니까 매화꽃이 필 때로 해서, 날짜의 의미는 조금 달라지더라도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끔 하는 것이 어떨까 해. 또 순수한 문화제를 만들기 위해서도 일반 영업을 목적으로 하는 상인은 일체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마을사람들의 말 속에는 용신제를 전승하는 데에 따르는 어려움과 또 책임감을 함께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그러한 현실적 한계 때문에 놀이문화로서 전승해 가고자 하는 바람이 묻어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