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C0103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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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류명환 |
소토리의 3개 마을에는 소노, 율리, 효충 마을이 있다. 대부분 이장은 소노마을 이장과 같이 남성이 맡고 있지만, 독특하게도 율리와 효충 이장은 여성이다. 마을의 일에 대한 총 책임을 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장을 여자가 맡기에 힘든 점도 많았겠지만, 율리, 효충 이장은 오히려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마을을 오랫동안 이끌어나가고 계셨다.
마을의 이장은 보통 임기가 2년인데, 따로 투표를 통해 선출하지 않고 돌아가면서 한다. 효충마을 이장은 자신이 이장을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어려움에 대해서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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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 이장님
“이장하면서 어려운 점은 별 없는데 당산제 지낼 때가 힘 든다 아이가. 이장이 남자일 때는 이장이 시장을 봐오고 부녀회장이 음식을 맡아서 회관에서 음식을 해서 남자들이 가져가고 했었다 아이가. 그런데 지금은 여자인 내가 이장을 맡고 있으니 장도 내가 봐야 하고, 음식도 내가 하고, 제사도 내가 보러 가야 하니까 이전보다 훨씬 힘들다 안 그러나. 여자가 이장을 하면 부녀회장도 겸해서 해서 일이 정말 많다. 마을 할머니들도 여자니깐 당연히 다 해야 된다고 말씀 하신다 아이가.”
그녀는 당산제 모시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시아주버니가 도와주기도 한단다. 또 당산제 말고도, 우리 마을에서는 노인분이 돌아가시면 발인제(사람이 죽으면 관을 들고 장지로 가는 것) 같은 것을 하는데, 그 제사 음식 준비는 물론이고 산소까지 따라가야 하니, 바깥일, 안 일 모두 다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하였다.
“사람들 인식이 안 바뀌니 여자가 이장하는 것이 피곤한기라. 원래 이 동네도 당제를 모시면 몇 달 동안 궂은 일을 안 보고 그렇게 했는데, 지금은 말은 3일이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석 달은 안 봐야 된다고 안그라나. 혹시나 내가 내 몸을 깨끗이 하지 않아 마을에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어르신들께서 나에게 책임을 돌릴 수도 있어 신경이 많이 쓰인다 아이가. 그래서 나도 조심할 것은 다 하고 있다 아이가. 석 달 동안 초상집을 갈 일이 있어도 안가고, 몸을 깨끗하게 하려고 한다. 당제는 옛날부터 내려오던 대로 9월 9일에 한번만 지내는기라.”
지난 세월 동안 여자 이장으로서 힘들고, 어려웠던 일을 말씀하면서 눈시울을 붉히셨다.
또 다른 여자 이장인 율리 이장도 그 어려움을 토로했다. “내가 이장을 할 때만 해도 주변에 사람들, 깡소주를 좋아하던 남자, 아저씨들이 거의 다 40대 때 돌아가시고 해서 마을에 이장 할 남자가 없었다 아이가. 그 나이대 밑으로는 남자가 있기는 했는데 아직 직장을 다니고 해서, 내가 이장을 했는기라. 이제는 늙어가지고 이장을 할 사람이 없어서, 진주 댁하고 소성 댁이 경로당에 와서 거들어 주고 한다 아이가.”
율리마을 가구 수는 한 38가구가 되어도 세입자까지 합치면 77세대가 될 만큼, 세입자들이 많다. 세입자들은 이 마을에서 살기만하지, 소속감이 없어서 마을 일에는 참석을 잘하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대부분인 세입자들은 낯서니깐 아무리 오라고 해도 오지 않는다. 이제 도시와 별반 다를 것이 없어지고 있다고 한다.
“소노마을 같은 경우에는 자연마을이라 하더라도 대부분 옛날부터 있던 사람들이라서 단합이 잘 되는데, 우리 마을 같은 경우에는 세입자들이 절반을 넘기 때문에 휴일에 마을회관에 나오라고 해도 잘 나오지 않는거라. 그런 반면에 세대로 구성을 해놓으면 일 년에 한 번씩 적십자비가 나온다 아이가. 그런데 세입자들에게 적십자 회비를 좀 달라고 하면 오히려 나보고 다시 달라고 그런다. 적십자 회비 납부 용지를 3, 4번 정도 갖다 주러 가보면 직장이 없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워 내가 도와주고 싶은 집이 많이 있는 것도 사실인기라. 그런 경우에는 동네 돈으로 회비를 주면 되는데 하도 세입자가 많으니 할 수 없이 회비를 내 돈으로 갖다 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이가. 적십자 회비는 장애인 가장, 7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면제가 되는데, 우리 동네는 70세 이상이 대부분이라서 회비를 내는 사람은 열 집도 안 된다. 가령 마을 별로 회비가 10만원이 나올 때, 세입자들에게 잘 받으면 5만원밖에 안되고, 내가 찾아가도 주는 돈이 3, 4만원 밖에 안 되어 내 개인 돈으로 회비를 겨우 맞추는기라.”(최영애, 율리마을 이장, 55세)
이어 효충마을 이장도 자신이 이장을 하면서 겪었던 일들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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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충마을 이장님
“내가 시집을 왔을 때는, 그 때 마침 마을의 4,50대 남자 분들이 많이 돌아가셔서 일할 남자들이 많지 않았다 아이가. 그래서 이장을 할 사람은 없재, 젊은 사람들은 직장 다녀야 되니 할 수 없었다 아이가. 그래서 내가 이장을 97년부터 지금까지 한 15년 동안 죽 하고 있는거라. 우리 친정은 신평 하북면 순지리이고, 우리 애들 아버지와 함께 지금은 농사를 짓고 있다 아이가.”
효충마을과 같이 작은 동네는 오히려 마을 일이 더 섬세해서 여성이 해도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마을은 기존의 자연마을에서 공장이 들어서다 보니, 방송전달이 어려워 한두 집 알아야 하는 내용은 이장이 직접 찾아 가서 바로 전달을 해주고 있다고 했다. 방송이 어렵다보니 하다못해 아침 11시에 민방위 비상소집을 할 때도 방송을 해서 한 시간 내로 와야 되는데, 주야로 시간이 없어 못 나가는 사람들은 미리 이장에게 얘기를 해줘서 싸인으로 대신하고 있다고 한다. (안경자, 효충마을 이장, 57세)
▶ 편견을 넘어 - 이장으로 자리매김하다
소토리의 율리와 효충마을에는 최영애 이장과 안경자 이장이 여성으로서 이장을 맡아서하고 있다. 동족 마을이라서 남성들의 권위가 유지되는 마을이기 때문에 쉽게 여성을 이장으로 뽑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농촌에 살지 않아도 이장을 하는 사람은 대개 남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처음 마을에서 여성 이장을 뽑았을 때는 아무래도 많이 도와주겠다는 뜻이 있어서 선출을 하겠지만, 그래도 막상 여자가 이장이 되면 반발이 생기기도 한다. 이러한 반발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아직 우리나라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러한 벽을 앞에 두고 열심히 자신의 자리에서 마을을 위해서 힘쓰는 있는 효충, 율리 이장을 만나서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율리 이장은 1996년에 가계부를 중앙에 출품해서 최우수상을 받아 메스컴을 탄 경력이 있다.
그때가 마침 IMF였기 때문에 더욱 근검절약을 강조하여 율리 이장은 여성 단체에 가서 강연도 하고 책자에 소개되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마을에 안용옥 씨가 우리 마을에도 여자 이장을 만들자하고 추천을 하셔서 이렇게 뽑혔다.
또한 효충 이장은 부녀회장을 3년 동안 맡아오고 있던 차에 부녀회장이 이장을 하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 때 효충 이장은 그 자리에 없었으나 그렇게 이장이 되었다고 한다.
효충 이장은 여성이장의 장점으로 돈 관리에 충실한 것을 꼽았다.
“내가 해보니 이장은 여자가 해야겠더라. 여자가 하니 마을 살림이 알뜰하게 되어 지고, 필요 없는 돈 잘 안 쓴다. 연말 결산을 할 때에도 아무런 이의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가더라. 지금 내가 맡아서 알뜰히 하니 모두들 잘 한다고 다들 그렇게 이야기 한다 아이가. 공공의 일을 할 때는 십 원 한 장이라도 투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농약이든 석회든 비료가 나오면 농사를 짓는 대로 다 분배를 해서 많이 짓는 집으로 분배를 해서 하였다."(안경자, 효충마을 이장, 57세)
결국 여성이 마을의 돈을 관리하다 보니 금전관계가 깨끗하고 알뜰해진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남성보다 여성이 돈 관리 같은 것은 집안 살림하듯 꼼꼼하게 하는 것이 마을 일에도 적용된 것이 아닌가 싶다. 또한 과거처럼 이장이 마을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하는 일도 많이 없어져 부담도 줄어들었다.
현재 상북면 26개 마을 중 여자 이장은 모두 5명이다. 처음에는 율리마을의 최영애 이장 혼자였는데 이후에 효충마을의 안경자 이장과 내전마을, 또 올해(2008)에 장재마을, 외석마을이 추가되어 5개 마을로 늘었다고 한다.
그런 만큼 이 현상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렇게 여성 이장님들은 사람들의 편견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여성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해내고 있는 것이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