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4D02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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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 명동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향토사연구회 |
농청장원놀이는 처음부터 명동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이므로 어느 마을에도 이와 비슷한 놀이는 있게 마련이다. 다만 그 놀이문화의 계승의식 여부에 따라 현재의 농청장원놀이가 재현되는 것이다. 양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양산의 여러 마을에서 농청장원놀이의 재현을 위하여 노력하였지만 현실적으로 사람동원이나 재정 등의 이유로 계승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동안은 마을을 전전하면서 놀이가 근근이 이어졌다. 그러다가 명동마을에서 이를 수용하여 본격적인 놀이의 재현에 들어갔던 것이다.
농청장원놀이가 명동에서 그 계승이 잘 이루어진 이유는 무엇보다도 사람동원이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마을에 비하여 명동은 점점 도시화되어 가는 추세 속에서도 아직까지는 시골의 사람내음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해마다 당제를 지내는 당산나무도 세 곳에 있어 그들의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또 마을사람들은 웅상의 향토문화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를 위해 꾸려진 웅상향토문화보존회의 주체가 되어 자발적으로 놀이문화 재현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정부에서 일정한 지원도 해주고 있어 더욱 조직적인 체계를 갖출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주민들이 생각하는 놀이의 원형 모습에 대해 호기심이 더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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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속력이 깊은 마을
명동장원놀이 보존회장 박장식 님의 말씀에서 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 마을에는 옛날부터 장원놀이라는게 있었는기라. 머슴을 데꼬 농사질 수 있는 부자 집이 두세 채 정도가 있었는데, 그 집에 가믄 술도 얻어먹고 제도 지내고 그랬다 아니가. 요새는 그런기 있나? 마 이렇게 공연하는 걸로만 남아져 있는기지.”(명동마을, 박장식, 76, 명곡노인회장)
인터뷰 내용을 보면 마을사람들이 생각하는 이 농청장원놀이는 옛날 모습 그대로 농사를 짓는 모습을 재현하는 것이다. 참가인들은 주로 60~80대 노인들로서 옛날이나 현재에 장원놀이처럼 직접 농사를 지어본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서 한다고 하다. 이들이 직접 놀이에 참여함으로써 사실감과 구체성을 높이고 있다. 놀이의 순서를 설명하는 것도 보이는 광경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보리타작을 하면서 모판에 담아두었던 것을 옮겨 심고, 농사가 잘되라는 마음에서 사당에 가서 제사를 지내고, 논을 매고 주인집에 가서 술을 먹는 과정이라고 아주 단순하게 이야기 하고 있다. 어찌 보면 마을의 노인들은 농업에 대한 아련한 향수를 느낄 수 있고, 젊은이는 예전에 부모님들이 지었던 농사일, 또 그것으로 자식 바로 자신이 성장했던 아련함을 가질 수 있어서 지금까지 전수되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