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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명산·대천 등의 자연물이나 사찰·그림·누각 등의 인공물에 시구를 적어 넣은 것. 사람들은 절경의 자연물이나 역사적 혹은 문화적 함의가 있는 인공물 등에 제영하여 자연물에 인간적인 색채를 더하고 인공물에 의미를 배가하여 대상물이 지닌 본래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였다. 유명한 장소는 유명한 시인을 불러들이고, 또 그로 인해 그 장소가 더욱 유명해지고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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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이후 김종직 등이 가야진 용당의 풍광과 그에 대한 감회를 읊은 한시. 「가야진 용당 제영(伽倻津 龍堂 題詠)」의 대상이 되는 가야진 용당은 삼국시대부터 박혁거세의 묘를 세우면서 시작된 가야진 용신제를 지내는 사당으로 국가에서 해마다 봄과 가을에 향과 칙사를 보내어 국가의식으로 제사를 올려 장병의 무운과 낙동강의 순조로운 수운과 범람을 막고자 하였다. 가야진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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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이재영 등이 가홍정을 짓고 주변 풍광에 대하여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가홍정 제영(駕虹亭 題詠)」은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있던 가홍정을 두고 읊은 시들을 가리킨다. 가홍정은 천성산 중턱의 홍룡폭포(虹龍瀑布) 주변에 있던 정자로 지금의 건물은 근래에 재건한 것이다. 권순도와 이재영, 그리고 이들의 시에 차운한 김조현과 조긍섭의 시는 칠언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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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정인휘 등이 강학대의 자연 풍경을 감상하며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강학대 제영」이란 경상남도 양산시 명곡동 입구 지역에 있는 강학대를 읊은 시를 가리킨다. 강학대는 건물이 아닌 바위로 사인암(舍人巖)이라고도 한다. 조선 말기의 인물인 정인휘(鄭寅暉)는 「사인암」이란 이름으로「강학대 제영」을 지은 뒤, 최황(崔滉)[1529~1603]이 노닐던 곳이라는 뜻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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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년(순종 1) 유진룡이 서당 귀복재의 기문을 짓고 나서 유순영의 시에 차운하여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따라 문화유씨(文化柳氏) 칠현을 모신 칠현사가 훼철되고 이곳에 딸린 강당도 철거됨에 따라 문화유씨 문중에서 1907년(순종 1)에 칠현사가 있던 자리의 동쪽 기슭에 서당을 세웠다. 그런데 서당이 있는 곳의 지형이 마치 거북이 엎드려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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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정임교가 경파대의 내력과 자신을 최치원에 빗대에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매촌(梅村) 정임교(丁壬敎)는 나주정씨(羅州丁氏)로 자는 남서(南瑞)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있는 임경대(臨鏡臺)에서 수백 보 아래에 있는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낙동강 변에 있던 경파대(鏡波臺)는, 임경대에서 노닐던 정임교가 우연히 발견하고 이름을 붙인 곳이다. 정임교가 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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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이기주가 남유대의 모습과 자신의 삶에 대하여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남유대(南遊臺)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 금정산(金井山) 아래에 있다. 저자 회남(淮南) 이기주(李琪柱)는 고려 후기 문열공(文烈公) 이조년(李兆年)의 후손으로, 선조의 교훈을 이어받아 임천(林泉)에 은거하며 효도와 우애가 독실하였다고 한다. 남유대는 이기주가 만년에 휴식하고자 지은 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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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에 남경희 등이 내원사와 주변 경관에 대한 감흥을 적은 한시. 「내원사 제영」이라 하면 내원사와 그 주변의 경관과 이에 대한 작자의 소회를 적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로는 조선 중기 때의 사람으로 추정되는 남경희(南景熙)가 지은 「여이반계용회양오동유내원(與李磻溪用晦養吾同遊內院)」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는 ‘이반계와 용회, 양오와 함께 내원사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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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안효필이 두연대의 모습과 인간 삶의 무상함에 대하여 읊은 한시. 두연대(斗淵臺)는 양산시 서쪽 어곡(魚谷) 안에 있었는데, 경치가 빼어난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현재 두연대는 무너지고 터만 남아 있다. 작자인 일야당(一也堂) 안효필(安孝弼)[1855~?]은 1882년(고종 19)에 증광시(增廣試)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인물이다. 1~2구는 달도 찾아들기 어려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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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8년(고종 5) 안평중이 소계사를 폐하고 서당 만성재의 편액을 걸며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만성재 제영」은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었던 만성재에 관하여 읊은 칠언율시 형식의 한시이다. 만성재는 광주안씨의 세칭 삼현오충(三賢五忠)에 대한 제향을 받드는 소계사(蘇溪祠)가 1868년(고종 5)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됨에 따라 안평중이 소계사의 강당을 서당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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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유준영이 반산대 주위 경관과 유희의 감회를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반산대(盤汕臺)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 탑산(塔山) 아래에 있다. 반산대는 묵경(墨耕) 유준영(柳準永)과 동생인 유복영(柳福永), 유해영(柳海永) 등 3인이 노닐던 곳으로, 바위에 새기기를 “대가 없으면 반(盤)이 없고 반이 없으면 이름이 없다. 대와 반이 서로 의지하니 주로 그 뜻을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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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김재형이 성정 도야의 공간으로 복룡대를 이야기하면서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복룡대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구소석에 있으며, 삼옥당(三玉堂) 김재형(金在衡)과 김재언(金在彦) 형제가 노닐던 곳이다. 복룡대의 주인은 정인휘(鄭寅諱)로, 대를 조성한 후 자신의 초명인 정인석(鄭寅錫)을 음각하였다. 『양산향교지』 등에는 복룡대의 주인이 삼옥당(三玉堂) 형제로 잘못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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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흡이 삼칠루 주위의 자연 경관을 감상하며 읊은 오언고시의 한시. 삼칠루(三七樓)는 조선 후기 양산 지역 남쪽 감동창(甘同倉)에 있던 누각이다. 삼칠루는 양산군수 권성규(權聖規)가 1693년(숙종 19)에 건립하였는데, 건립 당시 누각 앞에 삼차수(三叉水)와 칠점산(七點山)이 인접하여 삼칠루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작자인 이흡은 1733년(영조 9) 한 해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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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안효진 등이 소계사의 중건 내력과 광주안씨 삼현오충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소계사 제영」의 대상이 되는 소계사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위치한 광주안씨의 사당이다. 소계사는 소계서원에 딸린 건물로 소계서원은 1783년(정조 7)에 광주안씨 문중에서 태종 때의 유학자인 안몽득과 아들 안우(安宇)·안주(安宙)·안택(安宅) 삼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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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극기 등이 쌍벽루의 절경을 감상하며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쌍벽루(雙碧樓)는 양산 관아 서쪽에 있었으며, 누각 아래 푸른 물과 푸른 대나무가 서로 비추어줌으로 쌍벽루라 하였다고 한다. 쌍벽루는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곳이어서 많은 시인들이 시를 남겼다. 특히 김극기(金克己)[1379~1463]와 명(明)나라 사람 장청(張淸)의 시 등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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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정포가 유배 당시 양주객사에서 이별의 감회를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동문선(東文選)』에 「제양주객사벽(題梁州客舍壁)」이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정포(鄭誧)[1309~1345]는 원(元)나라로 망명하려 한다는 참언으로 인해 한때 울주(蔚州)[지금의 울산광역시]로 유배를 당하였는데, 유배 시절 지어진 작품으로 여겨진다. 「양주객사 제영」인 「제양주객사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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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양재두가 어룡대를 건조한 후 주변 경관과 자신의 유유자적한 삶에 대하여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어룡대(魚龍臺)는 벽파(碧波) 양재두(梁在斗)가 건조한 대(臺)로,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 영축산 기슭에 위치한다. 양재두가 어룡대에 새기기를 “사방의 산이 구름과 같으니/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는구나(四山如雲 魚變成龍)”라고 하였다. 칠언율시의 한시이며,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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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오명환이 연구대를 건립하고 명칭 유래에 관하여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연구대(蓮龜臺)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 석장산(石庄山) 아래에 있다. 조선 후기에 죽재(竹齋) 오명환(吳明煥)이 건립하였으며, 병풍 같은 바위와 개석(介石)이 있어서 올라가 소영(嘯詠)하기에 좋다고 한다. 「연구대 제영(蓮龜臺 題詠)」은 연구대라는 이름이 유래하게 된 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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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년(고종 42) 박희영 등이 울산박씨 사당인 용강사를 중건하면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용강사 제영(龍岡祠 題詠)」이란 울산박씨의 사당인 용강사를 중건하면서 지은 시를 말한다. 용강사는 경상남도 양산시 용당동에 있는 사당으로, 1851년(철종 2)에 시조인 장무공 박윤웅(朴允雄)과 지한주사(知韓州事) 박추(朴諏)에 대한 제향(祭享)을 위해 건립하였다. 18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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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박경홍이 용대의 절경을 감상하며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용대(龍臺)는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있으며, 그 골짜기는 깊고 냇물이 길어 용이 놀던 곳이라 전한다. 용대에는 용이 비스듬히 서린 형상이 있으며 폭포도 흐른다.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절경을 만끽하는 정회를 읊고 있다. 용대가 있는 곳은 초목이 늦게까지 시들지 않을 만큼 깊은 골짜기라, 물고기와 새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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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오시유가 우촌정사에서 삶의 자세에 관하여 읊은 팔언고시의 한시. 우촌정사(牛村精舍)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소로(小魯)마을에 있었으며, 우촌(牛村) 정수(鄭脩)가 지은 정사라고 전해진다. 오시유(吳始有)가 우촌정사에서 은거하는 삶의 유유자적함을 노래하였다. 은거하는 삶 속에 고단함이 있더라도 옛 성현의 가르침을 이어 백석(白石) 같은 깨끗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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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박천수가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원효대(元曉臺)에 제영한 한시. 원효대는 원효암(元曉庵)에 있는데, 원효대사[617~686]가 득도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원효대제영」은 박천수(朴天銖)가 오랫동안 인적이 끊어진 듯 칡넝쿨이 엉킨 길을 따라 원효대까지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심정을 읊고 있다. "푸른 산 첩첩하고 물소리는 잔잔한데/ 칡넝쿨 여기저기에 엉켜 당겨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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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김영봉이 율리정사의 모습과 기풍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율리정사(栗里精舍)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으며, 1672년(현종 13)에 죽산(竹山) 안희청(安希請)이 안효필(安孝弼)의 생가에 학문 전념을 위해 지은 정사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현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율리정사의 기풍을 매일 비추는 밝은 달빛과 끝없이 흐르는 차디찬 냇가에 빗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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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권순도 등이 최익현을 추모하기 위해 의충단을 세우면서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의충단 제영(義忠壇 題詠)」은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있는 의충단에 대한 제영시로 칠언율시의 한시이다. 의충단은 일제강점기에 부산 지역에서 권순도 상점이라는 포목상을 차려 재산을 이룬 권순도가 만년에 고향인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로 돌아와 홍륭폭포의 들목 작실개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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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국시대 최치원이 임경대의 풍광과 자신의 심경을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최치원(崔致遠)[857~?]의 문집인 『고운집(孤雲集)』권1과 우리나라 역대 시문선집인 『동문선(東文選)』권19에 「황산강 임경대(黃山江 臨鏡臺)」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임경대(臨鏡臺)는 황산강(黃山江: 낙동강의 옛 이름)가에 있으며, 최치원이 노닐면서 「임경대 제영」을 지었다고 하여 최공대(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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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구경 등이 징심헌의 풍광과 삶의 자세에 대하여 읊은 한시. 징심헌(澄心軒)은 박제상(朴堤上)이 양산태수로 있을 당시 건립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김구경(金久冏)을 필두로, 강희안(姜希顔)[1418~1465], 서거정(徐居正)[1420~1488], 김종직(金宗直)[1431~1492] 등 쟁쟁한 문사들이 시를 남겼다. 이들의 시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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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원진이 창포정의 모습을 보고 감회를 읊은 칠언절구의 한시. 창포정은 양산군수 이여익(李汝翊)[1591~?]이 관가의 창고 옆에 있는 연못 가에 건립한 것이라 전한다. 작자인 이원진(李元鎭)[1594~1665]은 1630년(인조 8)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동래부사로 재임할 때 「창포정 제영」을 지었다. 칠언절구의 한시이며, 1구와 2구에서는 반듯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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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이안눌이 3년 만에 만난 승려를 천성산으로 돌려보내면서 지은 오언절구의 한시. 이안눌(李安訥)[1571~1637]의 문집인 『동악집(東岳集)』에 「원적산으로 돌아가는 경일 상인을 보내며(贈別敬一上人還圓寂山)」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예부터 천성산(千聖山)은 원적산(圓寂山) 혹은 소금강산(小金剛山)이라 불리었다. 이안눌의 「천성산 제영」은 전체적으로 이별의 슬픔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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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김이만이 춘설루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춘설루(春雪樓)는 조선시대 양산군(梁山郡) 관사 서쪽에 있던 누각이다. 「춘설루 제영」은 양산군수였던 김이만(金履萬)[1683~1758]이 정무(政務)를 마치고 관사 서쪽에 있던 춘설루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지은 시이다. 오언율시의 한시로서, 1구와 2구는 정무 이후 한숨을 돌린 상황을 이야기하였고, 3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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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8년(고종 15) 이만도가 춘화당에서 백성들을 걱정하며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춘화당 제영」의 내용으로 보아 이만도(李晚燾)[1842~1910]가 양산군수가 된 1876년(고종 13)으로부터 2년이 지나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이다. 이 「춘화당 제영」은 조선이 일본에 병탄되자 단식으로 생을 마감했던 이만도의 애민 정신을 읽을 수 있게 한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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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5년(헌종1 년) 유공모 등이 칠현사 창건 시에 문화유씨 7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칠현사는 1835년(헌종 1)에 건립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해방 이후 정면 3칸에 측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으로 신축된 것이다. 양산에 있다 해서 양산칠현사라고도 하며, 문화유씨 일문의 사당으로 이곳에 모셔진 칠현은 유자미(柳自湄)·유광선(柳光先)·유정(柳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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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이안눌 등이 통도사의 모습과 주변 경관 등에 대하여 읊은 한시. 통도사는 절의 명성만큼이나 많은 시인 묵객을 불러들였으며, 이에 따라 통도사에 관한 많은 시가 남게 되었다. 시인들은 속세와 절연된 공간의 이미지를 나름의 창작력으로 살려내었으며, 이로 말미암아 통도사의 맑은 이미지가 오롯이 드러나는 많은 작품이 곳곳에 남아 있다. 통도사에 관한 시를 남긴 대표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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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김이만이 양산향교 풍영루에서의 감흥과 학문에 정진하기를 청하며 읊은 오언율시의 한시. 풍영루는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양산향교의 정문으로 김이만(金履萬)[1683~1758]이 양산군수로 있으면서 임진왜란에 소실되었던 것을 1684년(숙종 10)에 낙성하였다고 한다. 또한, 기존에 전해오던 것을 1878년(고종 15)에 양산군수 이민하(李玟河)가 중수하였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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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안종설 등이 환벽정에 오른 감회와 주변 풍광을 읊은 한시. 「환벽정 제영(環碧亭 題詠)」 한시는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었던 환벽정의 주변 풍광과 정자에 오른 감회를 읊은 한시로 양산군수를 지낸 안종설(安鍾卨)과 이에 차운한 동래부사 윤필은(尹弼殷)의 시, 그리고 안행탁(安行鐸)과 안병원의 시 등이 전하고 있다. 환벽정은 조선 후기 헌종 때에 안경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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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정포가 유배 중 황산강에서 읊은 칠언고시의 한시. 시문선집인 『동문선(東文選)』에 「황산가(黃山歌)」라는 제목으로 전한다. 황산강(黃山江)은 낙동강의 옛 이름이다. 작자인 정포(鄭誧)[1309~1345]가 울주(蔚州)[지금의 울산광역시]에 유배되었을 때에 지어진 것으로 보이는데, 정포는 유배 생활 중에도 태연자약하여 활달한 장부의 기질을 잊지 않고 풍류 생활을 즐겼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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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조정융 등이 희청헌에서의 감회와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을 읊은 칠언율시의 한시. 희청헌(憙晴軒)은 조선시대 양산 관아의 춘설루(春雪樓) 뒤편에 있었으며, 양산군수였던 조신준(曺臣俊)[1573~?]이 지었다고 전한다. 1. 조정윤의 칠언율시 조정융(曺挺融)[1598~?]의 「희청헌 제영」은 전란을 딛고 재건한 희청헌에서의 감회를 노래하였다. 7구와 8구의...